복돌이 아니 챨리는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방아머리골 매롱리 번화가 그러니까 아랫동네 삼거리의 유일한 중국집 '왕따거' 뒷편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가의 다리를 건너면 지름길인 듯 아닌 듯 질퍽한 그 길을 만날 수 있다. 그 길 중간에 개천을 벽삼아 벽돌과 모래 등 건설자재가 쌓인 오래된 철물점 앞에 고무판을 지붕으로 나무판을 덧세워 만든 낡은 개집이 하나 있다. 어느덧 13년차 직장인. 그런데 올래 월급은 오르지 않았고 감사에서 고속도로 통행료 사적 사용으로 견책이라는 징계를 당했다. 난 윗사람 시중을 들다가 생긴 일인데 덤터기를 썼다는 생각을 피할수 없었다.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는 여름. 나는 종종 지나가다 안면이 있는 복돌이를 만나러 갔다. 분명 믹스견일 것이다. 다리는 짧은데 머리는 큰 개다. 버스에서 내려 이면도로 조용한 곳을 가다가 본 개인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땟국물이 쪄들어 평생 목욕을 안 해봤을 거란 확신이 드는 작은 개는 사실 이름도 모른다. 복돌이는 몇 번 보고 지나친 내가 마음대로 지은 이름이다.
늘 그 길을 지나다가 마주친 개인데 엊그제처럼 비가 내린 뒤에는 잘 있는지 더 궁금해지도 했다. 광고에는 그 종이 영리한 개로 신문도 배달하고 우유도 주인에게 갔다 주고 심지어 청소까지 하는 종류의 견이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챨리가 그렇게 똑똑한지는 모를 일이다. 만약 씻긴다면 찰랑이는 머릿결이 참 예쁠 거 같다고 생각도 했다. 천하태평한 얼굴로 항상 미소를 짓는 녀석은 내가 다가가자 살랑살랑 엎드린 채 꼬리를 쳐서 맞아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눈을 보고 말을 해왔다. 웬만한 아이들의 말은 알아듣는 편이다. 그러기에 이런 낯익은 개와 말하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개랑 이야기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뭔 개소리냐"라고 날 이상한 놈으로 취급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 개들과 말하는 것을 즐긴다. 녀석의 행색이 그리고 천연덕한 달관한 듯한 눈빛이 먼저 말을 걸에 하였다.
"안녕?.."
"야~ 안녕하세유.."
오 이 녀석 봐라 말을 할 줄 아는 녀석이군. 역시!
"더운데 밖에서 지내기 힘들지... 괜찮아?"
"괜찮아유... 시방 여름이쟌유..."
"그래도... 너무 덥더라 요즘...."
"엘리뇨 현상이 심하네유. 근다 뭐 어쩌다 가끔 비가 오쟈뉴...
“그 그래.. 근데 너 이름이 뭐니?” “저유? 전 주인이 챨리라고 졌네유?”
“응, 찰리... 난 이름이 없는 줄 알고 복돌이라고 지었어... ”
“아, 맘대루 해유~ 복돌이도 복시러우니 괜찮네유”
“아니 그래도 그건 예의가 니 이름을 불러야지. 찰리”
“하긴 좀 그렇쥬? 갑자기 이름 바꾸기가...”
녀석은 전혀 위축대지 않고 나와 이야기를 했다. 난 녀석의 목줄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의 행동반경을 1미터도 안되게 제한하는 자유를 구속하는 나일론 소재의 덩치에 비해 조금 두꺼운 목줄 그러나 길이도 짧았다.
"목줄 좀 풀어줄까?"
"괜찮아유..."
"답답하겠어. 힘들잖아.."
"뭐 그래도 할 수 없잖유.."
"그건 그래..."
"지가 개잔유.. 어쩌겠슈.... 그것이 개의 숙명... 몰러유?"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난 살잔유..."
꼴깍 마른침을 넘겼다. 그리고 구석에서 내가 내가 혼자 키우는 반려견 슈가(8살 푸들) 주려다가 챨리에게 던저준 소가죽 우유 개 껌이 잇자국이 있는 채 흙에 버무려져 방치된 것을 보았다.
"저거.. 저 껌.. 있잖아..."
"야, 아저씨가 언젠가 밤에 던져 준 거지요 저도 알아유..."
"왜 안 먹었어..? 너무 질겨요.. 이빨 아작 나는 줄 알았슈..."
"그.. 렇구나.. 미안하다 네가 좋아하는 줄 알고...."
“좀 심했쥬.. 농담이구유 조금씩 아껴먹으려 구유 안도망가잔유”
“뭐 괜찮아... 하하 ”
”실은 그거 먹으면 밥맛 달아나유.... 입맛상실.."
"그래도 그냥... 먹지..."
곧이어 날 보며 말을 이어가는 복돌이.
"저거 먹었다 쳐요.. 밥맛 떨어져서 내 밥그릇에 밥 남기쥬? "
"어어.. 엉 그렇지..."
"그럼 담날 밥 당장 줄어들어요.. 밥 안먹으니께... 우리 주인아줌마가 너 어디 애프냐 아프면 좀 굻으면 된다 하고 걱정하면서유.."
"아!.." 짧은 탄식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모름지기 길게 봐야쥬..."
"아.... 그렇구나...."
"나름 살만해유, 답답하지만유 근디 아자씨도 보아하니 개 키우쥬?"
"응... 냄새나지?..."
"야... 그래유. 근디 너무 잘해줘도 나중에 힘들어유.."
"그래 , 그건.... 왜....."
"분명 나중에 먼저 무지개다리 건너갈 건데 그리 정 주다가 어쩔라구 그래요"
어제 비가 와서 모처럼 빗물에 목욕을 했다고 한다.
"진짜 시원하데유... 어젯밤" "진짜 더웠는데 시원하더라.."
"모기들도 떠내려갔나봐유.. 들 물렸어유 헤헤헤"
“맞아 모기들 나쁜 놈들! 근디 개네두 살아야쥬 뭐"
"니가 그래도 만족 아니 적응한다니 다행이다.."
"워쩌겄슈... 개 같은 내 인생.... 수긍해야죠... 안 그래유? 원망한다고 달라져유?"
녀석은 저 멀리 고압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태재고개를 유유히 바라봤다.
"그래 찰리 내가 괜한 걱정 했나 보다.."
"그래도 이렇게 걱정해 주고 찾아와 줘서 고마워유~"
"응 나도 좋았어. 갈게.. 또 보자..."
"그러유 , 지는 멀리 못 가유~"
난 천천히 능평삼거리 따거 중국집을 지나 누나가 홀닭 반한 닭 집을 통과해 돌아나갔다. 스쿨, 피자스쿨 쪽으로 걸어갔다. 늦으면 아내에게 혼날 거 같아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아차, 녀석과 헤어지고 걸어오면서 주머니에 넣은 오리껌이 생각났다. 주머니에 복돌이 아니 복돌이 줄 오리껌. 다음에 다시 거기 지나칠 때 복돌이 슈가에게 건네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