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아다닐 때 늘 행복하고 자유로웠다
추적추적 장맛비가 일주일을 내렸다. 지긋지긋했다. 편대장님은 이 시기에는 비행을 하지 말라고 했다. 언제든 갑자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했다. 이 시기는 날개를 정비하고 무엇보다 가을 코스모스 비행을 위한 정비와 충전의 시간으로 만들라고 지시했었다. 그러나 난 그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 날아다니는 게 우리의 목표 아닌가. 다음, 다음, 더 좋은 기회만 기다리고 그때 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게 나로선 제일 불만이 컸다. 날개가 있는데 왜 날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나는 날아야 좋았고 날아다닐 때 나는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관제탑이 잠든 깊은 밤. 비가 그치자마자 나는 혼자 단독비행을 했다. 아무 교신도 없이 나갔다.
비 그친 뒤의 싱그러운 공기가 나의 코끝을 자극했다. 강가의 비린 내음도 역시 좋았다. 내가 이 지역에서는 제일 잘 비행을 했다. 제일 높게 빠르게 고공비행을 즐겼다. 남들도 그랬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많은 장맛비가 내릴 예정이니 비행을 멈추라고 했지만 곧이듣지 않았다. 따가운 햇볕이 구름이 밀려가자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 따사로움 나는 날 수 있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갑자기 해가 사라지고 구름이 검은 구름이 갑자기 몰려왔다. 산안개가 다시 끼기 시작해서 모든 산등성이들을 잡아먹을 기세로 넓게 퍼졌다. 그리고 갑자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기체가 비에 젖고 시야가 흐려져서 당황했다.
난 오후에 달맞이꽃이 흐드러지게 핀 강 상류 쪽으로 단독비행을 하기 위해 기수를 돌렸다. 그러다 비바람과 이상기류를 만나 세차게 내리는 여름 어젯밤 장맛비를 피해 강가의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 창문과 빛이 있는 건물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한 비바람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들어간 곳 거센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아침이 되어 나는 다시 격납고로 돌아가려 했으나 나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서 당황하였다. 여린 빛과 공기가 새어 나오는 투명한 곳으로 날았는데 내 몸이 벽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전에는 그렇게 위로 고공비행을 하면 어디든지 탈출할 수 있었었다.
내 커다란 두 눈과 머리는 자꾸 산과 나무가 보이는 그쪽으로 향했고 상승기류를 이용해 힘차게 날아올랐으나 자꾸 그 망에 걸려 다시 튕겨 나오길 반복했다. 나는 서서히 힘이 빠지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자포자기하고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는 걸까. 이대로 집으로 가지 못하고 엄마와 헤어지는 걸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난 다시 힘을 내서 날아야 했다.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자꾸 부딪혀서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살던 강과 산과 숲으로 가는 어떤 탈출의 돌파구를 만들어야 했다. 다시 날아올랐다. 밤새 멈추지 않고 답답한 공간에서 나가기 위해 비행 중이었다. 계속 유리에 부딪혀 몸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날기는커녕 서 있기도 힘에 부쳤다. 그냥 어딘가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죽는 걸까.
그때 한 여행자가 들어왔다. 난 긴장해서 얼어붙었다. 난 무슨 일이 일어날 걸 직감했다. 그는 볼일을 보고 창틀에 얼어붙은 채 떨고 있는 나를 단번에 날 발견했다. 그는 손을 씻고 나가려다 다시 돌아와 나를 잡아가려고 했다. 난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는 "저런, 가만있자... 갇혀 있구나 이 방충망을 열어줄게... 기다려봐" 하면서 손을 쭉 뻗어 힘을 썼다. 방충망이 움직이자 난 그 손길을 피하려다 작은 유리창과 방충망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다시 필사적으로 날개 짓을 했다. 아니 몸을 움직였다. 난 그때 생겨난 아래쪽에 작은 틈이 보였다. 거의 기절할 뻔했지만 잠시 정신을 잃는 찰나 그때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다시 힘차게 날개 짓을 했다. 이번에 아래로 저공비행을 한 것이다. 그리고 땅바닥으로 부딪히려는 순간 다시 나는 박차고 올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상승을 위해 탈출을 위해 처음 하는 단독강하 저공비행이었다.
무조건 높이 오래 날아야만 멋지고 아름다운 비행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주위를 살피며 낮게 천천히 나는 저공비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깨우쳤다. 땅 위를 낮게 수평으로 날아가는 저공비행으로 힘을 비축하여 나는 다시 힘차게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땅과 더 최대한 가까이 떨어져 봐야만 했다. 그래야 하늘을 나는 감사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간혹 힘든 저공비행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래야만 하늘 높이 비상하는 고공비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강천섬에 사는 아니 날아다니는 나는 오늘 운 좋게도 마음씨 좋은 초록별 여행자를 만났던 것이다. 버티고 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시 저 푸른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나는 저녁노을을 닮은 눈이 큰 왕눈이 고추잠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