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냉장고에서
이상하다. 냉장고가 고장이 났나 좀 더운 것 같아. 바람 좀 쐬야겠다. 답답한데 나갈 수 있나. 좀 나가봐야지.
"어, 안녕하세요. 이거 반갑습니다. 다들 나와계시네요"
"어서 오라는 말은 못 하겠네... 어쨌든 방가요"
"어서 오슈. 그래 댁은 나이가 나랑 비슷한 거 같은데... 인사하외다 난 36년 쥐띠"
"아 그래요. 저는 55년 을미년 양띠입니다요"
"나보다 아우님 이구만, 반가워. 저기 누님은 왕누님 25년생이셔 100세 턱걸이하셨지.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저희 어머님보다도 연세가 많으시네요"
"뭐 맛있는 거 없어. 총각 나 배고파"
"누님이 치매기가 있으셔서 이해하라고"
"저기 저 꼬맹아! 야 인사드려라"
"아, 씨~ 내가 왜 꼬맹이예요. 저 26살 이라고요 머리에 피도 말랐걸랑요. 아씨 답답해. 아저씨 혹시 꼬불친 담배 없어요?"
"아니, 나 담배 끊었는데... 미안해"
"저 구석에 쪼그려 앉은 아주머니는 왜 못 일어나는 거지요?"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다네"
"다리가 부러졌는데 왜 여기..."
"다리가 부러지면서 넘어졌는데 뇌진탕도 온 거 같아"
"형님은 그럼..."
"나? 나는 뭐 갈 때까지 갔다가 온 거야"
"네 그런 자네는 너무 젊은데 왜 여기 왔어"
"간암이요, 말기라네요"
"아, 그렇군 고생 많이 했겠네"
"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전 한 3년 전에 MRI 찍다가... 암이 발생한 걸 알았어요. 더 끌고 가면 더 좋을 것도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요새 기술도 좋은데 왜 일찍 왔어"
"저도 뭐 세상 뜨고 싶어서 떴겠어요. 그게 힘들더라고요. 버티는 게... 아니 근데 형님은 어쩌다가...."
"나? 나야 뭐 아쉬울 게 없어. 내가 아들 셋에 딸 둘인데 말여. 새끼들 다 잘 가르치고 좋은 직장 얻고 손주도 6명이여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우리 큰 아들은 말여.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지금 지검장이여! 고놈이 내 머리를 물려받은 겨. 둘째 놈이 큰 딸인디 시집을 잘 갔어. 우리 집사람이 한인물 했지. 큰 딸이 인물이 아주 곱거든. 사위가 삼성전자 이사여 이사라고... "
"아, 대단하십니다. 자식 농사가 아주 대성공 풍년이네요, 형님"
"뭐 아쉬울 게 없어. 자식들 다 잘 나가서 살고 나도 살만큼 살았고..."
그때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던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고일어나 기가 차다는 듯 끼어들었다
"아주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뭐여 이 여편네가 악담을 해도~"
"이 노인은 지금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있다오, 지금 10개월째 새끼들이 시신을 안 찾아가고 있어. 서로 미루면서..."
"치매 할망구는 꺼지시고 이 아줌마는 걸러"
"그리 잘난 새끼들이 그래 장례식장도 안 오고 말여... 거짓말을 해도 유분수지..."
"하 아줌마가 상관 마슈, 지는 뭐 얼마나 똑똑하길래 그래 폐지 줍고 고물 팔고 고생만 직사게하고 말여"
"나는 누구한테 손 벌리고 살지 않습니다. 남에게 굽신거리지도 않았고요"
"형님, 그럼 지금..."
"저 인간 지금 무연고 시신이라 여기서 장기 숙박 중이라니까..."
"남이사! 신경 끄슈. 댁은 자식에게 다 퍼주고
정작 자신은 빈털터리고..."
"형님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 여기서..."
"그렇게 됐어. 난 그런데 여기가 정말 좋아"
"네 형님... 자네 그러지 말고 위에 갔다 와봐
누가 왔는지 가보라고 마지막 이승구경이니까"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아저씨 나도 같이 가요
나 내일 나가는데 너무 따분해서요"
"그래, 가보자"
3호실에 들어갔다. 영정사진은 식당 하는 막내가 코로나 전에 사진관에 데려가 찍은 사진이다. 짧게 깎은 머리에 검버섯. 염색 안 한 흰머리. 웃는 얼굴이 반갑고 낯설다. 저게 내 마지막 사진이었다.
제일 작은 방이었다. 연락이 끊긴 큰 아들의 얼굴은 안보였다. 12년간 연락이 끊긴 아들
이제 60이 가까워 오는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디서 이혼 후 달방을 얻고 경비를 한다고 둘째가 내가 떠나기 전 이야기해 줬다.
집사람은 생각보다 평화로운 모습이다. 3녀간 고생한 아내. 무식한 남자 만나서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 이제 23년 전 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몇 년 후에 집사람도 오겠지.
둘째는 딸인데 이혼하고 제주로 가서 노래방을 한다. 아들 하나 델고 사는데 말이 많고 시끄럽다. 그래도 착한 애다. 저리 이제 배가 나왔네.
셋째는 나처럼 운전일을 한다. 택배기사일을 한다. 셋째의 안사람은 정말 오랜만이다. 베트남에서 온 며느리인데 식당일을 하는데 생활력이 좋다. 근데 막내랑 사이가 안 좋아서 걱정이다. 딱 하나 애가 없는 게 아쉽다. 넷째는 일식당을 한다. 막내도 이혼하고 애들은 혼자 키운다. 큰 놈이 착하다. 지 아빠 일도 돕고 내 기저귀도 잘 갈았다. 대학 건축과인데 아빠 식당일 돕고 공부하며 장학생이다. 막내 손녀는 살을 빼야 한다. 너무 뚱뚱해 걱정이다.
"아저씨! 왜 이리 손님이 없어요?"
"글쎄다. 내가 뭐 그냥 친구도 없고 택시 운전하고..."
"뭐, 문제 있었구나 인간관계가.. 근데 저 육개장 맛있겠다"
더 병원 신세를 지기가 싫었다. 발이 퉁퉁 부었고 이제 숨도 가빠졌다. 자식들 부담을 주기 싫었다. 내 방의 손님들은 나도 잘 모르는 얼굴들 몇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소주 한 병을 나눠마신다.
바로 옆의 여자 방으로 갔다
거긴 여자의 엄마와 아빠가 흐느끼고 있었다.
"은서야.. 이 아빠, 엄마는 어찌 살라고... 은서야.... 흐흐흑..."
썰렁한 방에 들인 깊은 침묵이 들썩였다.
"너는 왜 그랬니, 더 살지"
"아저씨 결혼을 두 달 앞둔 내 남자가 다른 여자랑 자는 모습을 봤으면 어떨 거 같아요?"
"아..."
"이번 생은 망했어요. 뭐 좋은 기억도 없지만
부모한테 미안하지만 나 내가 싫어졌어..."
"에이씨, 보기 싫어 내려갈래 나 먼저 가요"
여자의 부모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두리번 거린다.
삶,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죽음, 또 다른 시작일까. 아니다 그냥 잊히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 같았다. 부디 남은 사람이라도 나보다는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안치실로 내려왔다. 바로 옆에 염이 진행된다. 그 형님이다. 제일 오래 계셨다는 아들이 검사장이라는 형님.
아까 내려온 젊은 은서, 배고프다는 노인, 아주머니가 물끄러미 마지막을 바라보며 배웅을 한다. 장의사 두 명이 삼베옷을 꽁꽁 묶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승의 끝. 그 형님의 얼굴은 눈알은 튀어나왔지만 입은 꽉 다물어져서 있었다. 아까보다는 평온해 보였다. 스님 한 분이 들어와 염불을 해주었다. 나머지 안치실 식구들은 합장을 했다. 관이 닫히고 관이 병원 직원들에 의해 들려나갔다. 우리들도 다시 2,3,4호 각자의 작은 냉동고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