쩔룩거리고 있습니다

그녀와 헤어진 다음 날부터 비가 계속 오고 있습니다.

by 황규석

저는 지금 발을 조금 쩔룩거리고 있습니다.

오른쪽 발바닥에 물집이 크게 잡혔는데

그걸 떼어 냈더니 쓰리고 아픕니다.

왜 그렇게 되었냐고요?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랬습니다.


사흘 전이군요,

제가 사는 도봉구에는 X -게임장이 있거든요.

암벽 타기, 인라인 묘기, 스케이트보드 묘기를

연습하고 시합하는 곳이거든요.

그 옆에 농구장이 있는데 거기서 아는 동생이랑

농구를 하다가 다섯 명씩 편을 갈라 풀 코트로 농구를 했어요.

원래 시합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바람도 쐴 겸 슬리퍼를 신고 슛 연습을 하러 갔다가

거기서 운동하던 사람들과 편을 갈라

시합을 하게 된 것이죠.


오, 그 친구들 농구 참 잘하는 사람들이더군요.

마치 선수들 같았어요. 자유자재로 볼을 드리블하고

레이업슛에다가 중거리 슛 패스 그리고 리바운드까지

모두 기본기가 보통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판은 없지만 공이 아웃되거나 접촉이 있어서 파울이 되면

우리는 스스로 상대편에게 공을 넘겨줍니다.


특이한 농구 기술이 없는 전 주로 수비를 보았습니다.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수비를 하고 속공을 연결하고

하여간 악착같이 뛰어다녔습니다.

현란한 드리블과 터닝, 점프에 이은 고공 패스,

개인기를 펼쳐 좋은, 고난도의 멋진 슛이 나오면 같이

"오~ 나이스 플레이!" 하며 박수를 쳐주고요.


해가 떨어진 시간에 옆의 X -게임장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열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숨을 고르며 바람같이 코트를 뛰어다녔죠.

금세 땀이 납니다. 웃통을 저도 벗어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어느덧 한 팀이 되어 우리는 점수를 내기 위해 애썼죠.

온몸이 땀에 졌습니다. 호흡이 좀 가빠집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습니다.

기술은 없어도 뛰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습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0점을 먼저 넣고 후반 중간이 되자 전 발바닥이

뭔가가 뜨겁게 마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뛰기가 불편했습니다.

발바닥이 아파서 도저히 뛰어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을 30분 넘게 맨발로

정신없이 뛰어다닌 게 탈이 난 것입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발바닥이 걸레처럼 되었지만

모처럼 참 즐거운 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취방에 힘겹게 조심스럽게 비틀거리며 걸어왔습니다.

비좁은 화장실 옆에서 찬물로 서둘러 샤워를 했습니다.

새살이 돋으려면 좀 멀었지만 상태가 좋아지면

전 다시 또 몇 시간을 걸어 다닐 것입니다.

도봉산에도 다음 주에 다시 오를 생각입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근처 운동장에 와서

미친 듯이 뛰며 땀을 쏟을 수 있어서 지금 행복합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린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 이별의 상처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걸 잊으려고 애쓰던 중에 머리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훌훌 털어 버리려고 무지 애썼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웃기도 했습니다.

가슴속에는 한동안 진득한 상처로 남아있었어요.

한발 빼고 그 아팠던 흔적을 바라보면

그것이 나의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학적인 쾌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영화라는 어찌 보면 허황된 꿈을 잡으려고 애썼습니다.

마땅한 직업도 수입도 없었습니다.

30대 중반이 되었는데 하루 벌어 하루 살았습니다.

시커멓고 파란 멍이 아마 들었을 겁니다.

한 사람과의 이별로 인해서 말입니다.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내가 가야 할 길을 간다고 생각합니다.

뭐 인생 사는 것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약한 듯 하지만 전 아주 씩씩합니다.

아마도 체질인가 봅니다.

더욱 당당합니다. 더욱 초롱초롱합니다.


며칠간 계속 흐리고 비가 오는 날입니다.
전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혈액형도 B형입니다.

남들은 싫어해도 지금처럼 매일 비가 와도 즐겁습니다.



서울 강북 외곽의 1호선 도봉산역에서 나와도 좀 걸어야 합니다.

좀 외진 곳에 작은 지하 월세방에 살지만 이곳이 점점 더 좋아집니다.

멋진 도봉산도 눈앞이고 산에는 계곡도 있고

바로 옆에는 농구장도 있고 멋진 1호선 도봉산역도 있고 시원하고

커다란 7호선 통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새벽의 한강 한밤중의 한강도 바라보고요.


나에게 좋은 날은 언제일까요?

지금 뭔가 허전하지만 가슴 아픈 지금 같은 때인 것 같습니다.

무작정 좋아하다가 헤어지고 하염없이 그리워하다가 슬퍼지고

또 아픈 가슴으로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좀 비틀거리지만

또 달려가고 걸으며 내 방식대로 살면서

이젠 추억이 된 그녀를 생각하며 하얀 미소 짓고....


상처를 받아서, 아니 내가 상처를 주었다면 더 주었을지도 몰라요.

사랑했으므로, 아니 내가 사랑을 받았다면 사랑받을 수 있었기에

얼마 동안은 진심으로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사랑으로 추억으로 남은 지금이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많이 가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땀 흘릴 수 있어서

쩔룩거리며 좀 천천히 걷고 주위를 바라볼 수 있어서

지금이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느리게 걸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발을 조금 쩔룩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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