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읽고 >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들을 한다. ‘문구점에서 어떤 펜을 고를까’처럼 소소한 선택부터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을까’와 같이 인생의 방향을 크게 결정짓는 선택 등 정말 다양하고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 어떤 선택을 했으며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그 목적과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 살아오면서 쌓아 온 경험과 지혜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과 관점 역시 다양하기에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도 같을 수가 없다.
현재 30대 중반인 나도 그동안 많은 선택을 했다. 그 중 가장 중요했고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이 있었다. 학창 시절 수없이 고민한 끝에 선택한 신학 대학을 열심히 다니던 중,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신부님이 되고 싶었던 길을 접고 일반 대학으로 편입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 선택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정말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선택의 주체가 ‘나’ 였고 그에 대한 책임도 오로지 내가 지는 것임을 명확히 알고 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아내와 우리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아이를 키우면서 결정하는 선택들은 결혼 전과 차원이 다르다. 이전에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내 인생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내 선택에 따라 우리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게 되었다. 특히 아이를 혼낼 때 내가 어떻게 훈육하는지에 따라서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도 있고, 아니면 트라우마로 남아서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를 혼낼 때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어떤 방식과 표현 방법으로 훈육을 해야 좋을지 늘 고민이었다. 시중에 나온 아이의 심리를 다룬 책들을 여러 권 읽어보고 실천도 해보았지만, 막상 혼내는 상황이 되면 그때그때 다르게 혼냈다. 아이가 사소한 잘못을 하였지만 나중에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를까 염려되어 세게 혼낸 적도 있었고, 어떤 때는‘지난번에 너무 강하게 혼낸 것 같으니 이번에는 오늘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만 혼내자’하고 약하게 혼내기도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훈육을 하고 난 후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뭔가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책과 영상 매체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었지만, 그럴수록 정리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뜻밖의 책에서 답을 찾았다. 육아서적이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딱딱한 느낌을 주는 ‘고전’과 그 고전에서도 ‘법’을 다룬 내용을 엮은『조국의 법고전 산책』이었다. 이 책에서는 열다섯 권의 고전을 다룬다. 모두 서양의 법고전이다. 그 이유를 책의 서두에 조국 교수님은 현대 한국의 법학, 법 원리, 법체계의 근본은 ‘근대’ 를 연 서양 법고전에서 형성되었기 때문(p.8)이라고 설명하셨다. 책에서 소화하는 주제들은 학창 시절 사회 시간이나 도덕 시간에 이름이라도 어렴풋이 들었던 내용들이다. 사회계약론, 삼권분립, 입법권의 한계와 저항권, 죄형법정주의, 미국독립혁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책인 《페더랄리스트 페이퍼》에서 다룬 소수자 보호와 정당 민주주의 및 사법통제, 존 스튜어트 밀의《자유론》, 권리를 위한 투쟁,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알려진“악법도 법이다”의 진실, 시민불복종, 칸트의《영구 평화론》등을 담고 있다.
내가 답을 찾은 부분은 4장에서 다루는 체사레 베카리아의《범죄와 형벌》이었다. 베카리아는 형벌의 잔혹성과 형사절차의 난맥상을 폭로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이 내용을 담아 집필한 것이《범죄와 형벌》이었다. 베카리아는《범죄와 형벌》하나로 ‘근대 형법의 아버지’ 라고 불린다. 베카리아는 근대 형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천명한다.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에 대한 형벌은 오직 법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원칙이다.(p.176) 또한 베카리아는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고 강조했다.(p.192) 베카리아는 고문 폐지도 주창했는데 이 역시 형벌의 잔혹성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의 연장선이다. 더불어 잔혹한 고문을 받으면 사람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죄가 있다는 허위 자백을 하기 마련이다.(p.195)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번뜩이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훈육할 때 사소한 잘못이어도 세게 혼냈었던 이유가 명확해졌다. 강하고 호되게 혼내면 무서워서 다음에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는 똑같은 잘못을 했고 그 다음에는 더 심하게 혼냈다. 강도를 높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그래서 고민이 생겼던 것이었는데, 내가 했던 방식은 18세기 사람이었던 베카리아가 봤을 때도 잘못된 방법이었다. 훈육의 강도를 높이고 무섭게 하는 건 효과가 없다. 이야말로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안길 수 있다. 대신 ‘잘못을 저지르면 그 부분에 한해서는 확실히 혼난다’ 는 걸 알려주었다.
혼내는 방법도 아내와 상의해서 같은 방법으로 훈육하기로 했다. 아내는 주로 목소리 톤을 평소보다 더 낮춰서 훈육을 했다. 나는 목소리가 더 커졌었는데 아내처럼 목소리 톤을 의식적으로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무섭게 혼낼수록 아이가 잘못을 더 빨리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아이가 그 상황을 얼른 끝내기 위해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준 것이었다. 그래야 내가 그만 혼낼 거라는 걸 아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훈육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이란 무엇이며 다음에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걸 알려주는 데 있다. 처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예방이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혼내는 상황이 오면 나 역시 감정적으로 흥분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아이가 잘못했다고 말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만 매몰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왜 이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잊지 않는 것이다. 베카리아는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형벌 및 그 집행의 수단은, 범죄와 형벌 간의 비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정신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수형자의 신체에는 가장 적은 고통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p.201)
아이를 훈육하는 목적은 아이가 새로운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방지하고, 다른 친구들이 하는 나쁜 행동을 따라하지 못하도록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가’ 를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의 잘못보다 심하게 혼내지 않으면서, 아이의 머릿속과 마음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신체에는 고통을 주지 않는 훈육을 해야 한다.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의 답과 더불어 육아의 나침반을 알려준 베카리아와 베카리아의 저작을 같이 산책해주신 조국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오마이북이 주최한 <『조국의 법고전 산책』독후감쓰기> 대회에 제가 제출했던 글을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