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계를 만들고 다가가기
아이러니하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승무원은 슬림하고 불편해 보이는 옷을 입고 있고 획일화된 스타일을 유지한다. 유명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가면 부담스러운 존대와 함께 직원은 식탁 높이에 눈을 맞춰 주문을 받는다. 형식과 격식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과하다 싶을 때가 있다. 서비스는 결국 소비자를 위한 행위지만, 한국의 서비스는 '손님이 왕'이라는 명제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대학생이 되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생활비를 위해 틈틈이 경제활동을 하며 지냈다. 내 나름대로 상황과 조건의 맞는 일을 찾아 선택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서비스 업이었다. 그렇게 내가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여전히 서비스업을 비교적 하찮은 직종으로 여기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을 하면서 손님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갑을 마주한다. 대뜸 반말을 하는 사람. "어이"하며 손짓으로 부르는 사람. 강한 컴플레인으로 무리한 요구하는 사람. 동료 직원들에게 신고당하지 않을 정도의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더 큰 문제는 서비스를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것에 대한 기쁜 마음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덜 대접받았다고 생각하면 분노와 함께 폭발한다. 땅콩 회항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이럴 때 나는 머리가 순간적으로 마비가 된다. 그 당시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거울을 통해 보고 싶다. 물론 다행히 이런 경우가 잦지는 않지만 그들의 무례한 태도를 통해 나는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단순히 '좋은 경험이었다'하면서 정신 승리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결국 내가 경험한 알바 형태의 서비스 업은 최전선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물론 서비스 가이드 라인은 존재하지만 비교적 날것의 형태였으며 어떤 사람이 올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람을 상대하고 그들의 요구를 듣고 행동, 말과 같은 형태로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이 내가 해 온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내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하고 새로운 사람의 유형을 학습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점은 타인의 짜증 나는 행동은 내 감정과 달리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무례한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행동이 유치해 보이거나 재밌을 때도 있다.
이렇게 쓰면서 내 행동도 돌이켜 보게 된다. 모두가 의도치 않게 타인을 짜증 나게 하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살면서 겪게 될 수많은 무례한 상황과 사람들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요즘은 나를 진심으로 대하고 응원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무례한 사람들과 나 사이에 경계를 만들고 다가간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친절하게'를 의미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내 감정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