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내 운명
외할머니는 늘 색이 없는 하얀 한복과 비녀를 꽂고 계셨다.
가끔 시골에서 올라와 곁에 머물러 주셨는데
엄마는 늘 바빴기에 내게는 그게 큰 위로였다.
바쁜 엄마를 대신에 외할머니 곁에서 낮잠을 자는 날이면
할머니의 목주름은 내게 위안이 되었다.
외할머니의 목주름을 만지면서 잠이 들곤 했다.
목을 만지는 버릇은 아기 때부터 있었던 듯하다.
엄마의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던 버릇이 외할머니에게 고스란히 간 것이다.
엄마는 간지럽다며 못하게 할 때도 있었지만
외할머니는 우리 새끼 하며 기꺼이 간지러움도 참아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외할머니의 품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외할머니는 시골에서 올라오시면 종종 내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셨다.
철없는 어린 나는 책을 읽어 드리면서도 궁금했다.
'외할머니는 왜 글을 못 읽으실까.'
"할머니는 왜 한글을 못 읽어요?"
"내가 가르쳐 드릴까요?
지금 이렇게 국어를 업으로 사는 일의 시작은 바로 이 날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외할머니는 거절하셨지만 내 마음은 늘 그게 안타까웠다.
먹고 사느라 기회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슬펐다.
그 이상의 것을 다 해내시는 분이었지만 한글을 못 읽는다는 게
어린 나로서는 신경이 쓰였다.
어느 날인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외할머니를 보던 날에도
내가 그날 한글을 가르쳐 드렸으면 달라졌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나는 쉽게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노력하나 보다.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고 잘 가르쳐 주고 싶은가 보다.
할머니가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