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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Dec 26. 2023

우리를 무기력에 빠뜨리는 '사회구조'를 볼 수 있어야

https://youtu.be/Sj8BLRW-mOE?feature=shared


오후 : 오늘은 류대성 작가님 찾아뵈러 왔습니다.

 작가님은 스스로를 “책과 함께 사는 사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요. 그동안 독서, 글쓰기, 교육 등에 대해 강의도 해오셨습니다.

 『질문하는 삶』,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사적인 글쓰기』, 『책숲에서 길을 찾다』 등을 썼고, 『고전은 나의 힘』, 『마중물 독서』 시리즈를 함께 엮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신간, <모든 틈에 빛이 든다>을 내셨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책을 읽고 난 뒤인지라,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경각소리를 울리는 살아 있는 지성인이란 말을 덧대고 싶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아쉬운데요. 작가님께서 작가님 스스로를 좀 더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류대성 : 아! 이게 제일 난감한데, 자기 안에 있는 정체성이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이런 것들을 잘 녹여내야 되는데 제가 그런 게 좀 부족하고 드러낼 줄 모르고, 부끄러워하고 성격상 그래서 그냥 그래서, 그냥 어디서든지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다, 이 정도 소개가 가장 적절한 거 같아서 더 이상 뭐 포장할 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후 :그래서 이렇게 늘 표현하시는 거군요. 책을 정말 많이 내셨더라고요. 그리고 또 제가 죄송하기도 하고 이때까지 류대성 작가님을 몰랐다는 게 참 부끄러웠어요. 무명작가라서 그렇죠. 제가 독서를 참 편향되게 해왔구나라는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이번 책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류대성 : 책이 나올 때마다 물론 아주 소중한데. 이번 책은 저한테 아주 작은, 개인적으로는 전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까지는 대체로 인문교양서적이라고 해서 표지부터 조금 딱딱하거나 지식을 전달하거나 요약하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번에는 출판사의 의도도, 제목도 그렇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사람들한테 조금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저 스스로도 그런 느낌을 좀 받았거든요. 오로지 "출판사 덕분에!" 그래서 그냥 글을 쓰는 거 이외에 사람들한테 전달하는 과정 혹은 이게 전달되는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목이나 표지나 편집이나 이런 것들이 에세이로 다듬어 주셔서 조금 더 독자들한테 닿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은 많이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기도 했죠.


오후 : '문화비평'이라고 했으면? (안 읽을지도...)

류대성 : 사람들이 손도 안 댄다고요(ㅜㅜ) 예전에는 경수필, 중수필이라 해서 에세이, 미셀러니로 구별하기도 했는데 그건 이론적인 것이고, 사실 에세이의 출발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굉장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글인 거죠.

오후 : 여러분 말랑말랑하진 않지만 꼭 읽어 보세요.

류대성 : 멀리서 보면 말랑말랑한데 손을 대면 딱딱합니다.      

    

오후 : 작가님의 글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챕터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책 전체도 마찬가지고요. 다양한 소재와 생각이 연결 확장되어 나가다, 결론에 이르러 이 모든 소재가 퍼즐처럼 완성됩니다. 서로 동떨어진 분야와 주제 같은데도, 그 연결고리를 찾고 묶어내는 전개가 놀랍습니다. 평소 경험과 사유를 어떻게 쌓으셨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이 자체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 인식을 확장시켜 주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류대성 : 질문지를 먼저 보내 주셨잖아요. 질문지를 이렇게 살펴보다가 '아, 유튜버는 어떤 분이지?'라고 사실 인터뷰하면서 이런 얘기가 적절한지 모르겠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글을 쓴 사람 입장에선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왜냐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제가 개인적으로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이 그 부분이거든요. 제가 읽고 싶었는데 잘 없는 글을 쓰고 싶었던 거죠. 대부분 그렇겠지만 어떤 하나의 생각이나 실마리를 풀어나가다 보면 이게 생물학이나 심리학에서 그쳐 버리는 경우가 있고요.

 왜냐하면 지식의 생산자들은 대체로 자기 전공 분야나 연구 분야의 한정되어 있는 지식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거든요. 그리고 독자들이 지식의 소비자들이라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지식의 편집자'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작가로서) 제 역할이! 그런데 특정 분야의 지식들이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통섭적으로 모이거나 통합적으로 합쳐져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고민들이나 아니면 어떤 개념에 대해서 접근할 때 전체적으로 아울러서 다양한 시각으로 이렇게 접근해 주거나 좀 이야기해 주는 그런 책은 없을까?라고 늘 제가 찾고 있어요,     

 그런 고민들을 하다가 지금 질문하신 것처럼 하나의 주제를 생각할 때 제가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특정 분야가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의 책들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찌 보면 전문 분야 없이 너무 잡다한 거 아니냐. 이런 얘기도 듣기도 하는데,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왜냐면 어차피 인간에 대해서 들여다보면 과학책을 들여다보거나 심리학 책을 들여다보거나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같이 볼 수밖에 없고요. 그러면 왜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아름답다고 하지?라고 하면 예술 분야의 책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의 개념이나 생각들을 접근하다 보면 거의 모든 영역들 모든 분야의 책들에 대해서 내가 메모했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뒤적거리게 돼요. 그러다 보니까, 이 책 작업을 할 때 처음에 어떤 글을 쓰고 싶은데 하루 종일 먼지만 털고 있더라고요. 필사해 놨던 거 아니면 책꽂이에서 꺼내서 관련된 이야기들을 전부 다 너무나 파편적이잖아요. 퍼즐을 맞추듯이 이 이야기들을 하나로 합쳐서 조금 이야기를 전달을 하고 싶은데, 한편에 글을 쓰고 싶은데 결정적으로 능력이 좀 부족하죠. 그러다 보니까 처음에 글을 쓰고 났는데 너무나 난삽한 거죠. 파편화되어 있고 그러나 그냥, 오늘 현재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런 것들을 적절하게 잘 설명하거나 어울릴 수 있도록 배치하는 노력의 결과물! 근데 그거를 이제 읽어 주시거나 그런 부분들이 재밌었다고 해주시면 글을 쓴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제 정말 더할 수 없는 감동인 거고, '이거 뭐야?'하고 넘어가시면 전적으로 글을 잘못 썼다고 생각을 하는 거고요.      


오후 : 좀 부끄럽긴 한데, 책을 읽다가 울었다고 하면 좀 부끄럽지만 제가 두 번을 울었어요. 그중에 하나를 낭독을 하고 말씀을 좀 여쭙고 싶어요

“한국 사회의 무기력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 기인한 ‘과격한 무기력’이다.” 모든 틈에 빛이 든다 p. 84    

저는 이 장을 읽을 때, 저도 아이를 가진 아빠다 보니까 "노력해야지", 또 "하면 할 수 있어!" 그런 말을 제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장을 읽다가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울컥했어요. 지금도 사실 눈물이 좀 글썽이는데, 이 장을 쓰실 때 작가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류대성 : 비슷하실 거예요. 공감하시는 분들은 글을 읽다가... 저도 글을 쓰거나 검토하다가 울컥할 때가 있거든요. 저는 정말 눈물이 없는 편인데 오히려 나이 들면서 사회적인 문제, 이런 이야기들을 하거나 이런 글들을 쓸 때 이제 울컥할 때가 있어요. 왜냐면 근본적인 문제들을 저희가 모르고 외면하거나 알지 못해서 그냥 우리끼리 '을'들의 전쟁을 할 때 이럴 때 울컥하거든요. '과격한 무기력'이라는 것도 내가 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지 그 원인을 잘 모를 때가 있어요.

 해도 안 된다는 게, 학습된 거죠. 근데 어린아이들 사춘기 때, 전 '세대론'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2-30대라고 할게요. MZ세대라고도 하는데 이분들이 '과격한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반대로, 이 나이 때까지 가장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너 얼마나 축적했니?' '너 통장에 얼마나 있어? 차는 샀니?' 이런 것이 아니라 '성취감'이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 성공감, 무엇인가 이루고 내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그 느낌을 한번 받아본 인생의 성공감이나 성취감을 느끼고 나면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구나!" 이러한 가치나 혹은 이런 것들을 위해서 내가 조금 덜 벌더라도 '재밌구나 인생이! 살만 하는구나!' 내 것을 만들어 갈 수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어야 되는데 사실은 지금 아까도 얘기를 하셨지만 자녀 얘기하셨지만 10대, 20대, 30대까지 이런 성취감이나 성공감을 격려받지 못하는 거죠. 근데 그런 성취나 성공이 오로지 성적 대학 합격 취업 전선에서, 대기업의 취업 이런 정량적인 지표들로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거나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정성적인 평가라고 하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이나 성취감이나 만족감들 이런 것들이 없어지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영화 <리플래쉬>에서 몰아붙이잖아요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까요?

똑같이 몰아붙여도 A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고 B는 그렇게 몰아붙이면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잖아요, 극단적으로 그러니까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몰아붙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게 '네 탓이야!' '노력이 부족했어!' '선택권이 있잖아'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인데?' 이거는 말이 안 된다는 걸 아주 무수한 증거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개인에게 그 비난의 화살들이... 그렇다고 그런 뒤집어서 '다 남 탓이야, 사회 탓이야' '구조적인 문제야' 이래 버리면 되느냐? 그건 아니죠. 그게 아니란 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 전체나 혹은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다수가 나아가고 있다면 구조적인 문제인 거죠. 그러면 뭔가 잘못된 거죠. 그러면 당연히 지금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기득권 정책을 결정하거나 권력이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이걸 운용하거나 작동시킬 것인가의 문제잖아요. 그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 거기에 닿지 못하고 있다는 게 사실은 가장 큰 문제인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다 열심히 살잖아요! 근데 그 결과치가 다르거나 만족도가 다른 걸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리거나 개인 탓으로 하는 거는 정말 잘못된 거죠. 그러면 고개를 들어봐야 되는 거지. 전체를 보거나 다른 원인들은 없는지 그 고민들이 시작되면 변화가 조금 있지 않을까?,라는 아주 소박한 바람인 거죠. 제가 글을 쓰면서 느꼈던 것들은.  

  

오후 :  세 번째 <시선>이라는 장에서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로 시작하세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구원은 연이은 재앙의 작은 틈 속에 버티고 있다.’라는 말로 절망 속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려 놓았다.” - 모든 틈에 빛이 든다 p.140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 작은 틈새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또 한 가지는 책 제목이 <모든 틈에 빛이 든다>인데 이 내용과 또 연결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류대성 : 지금 얘기하시는 부분하고 맞닿아 있는데요. 대체적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조금씩 다르시잖아요. 태어나 보니 살아가야 되는 거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결코 녹록지 않죠. 누구든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저는 비극까지는 아니어도 고통과 슬픔이 밑바탕이 깔려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발터 벤냐민의 이야기도 수많은 좌절, 고통, 슬픔, 이런 재앙 재난들이 우리 인생의 파도처럼 계속 밀려오거든요. 근데 그 사이에 작은 틈바구니에 구원이 있다고 얘기를 한 건 고통이나 좌절이나 혹은 실패와 슬픔 그 틈바구니에 작은 틈들과 희망을 만약에 놓쳐버리거나 그걸 잃어버리면 저희는 살지 못하죠. 매일매일 부딪히잖아요. 그 크기가 다르고 뭐 규모가 다를지언정 매일 좌절하고, 매일 힘들고, 매일 고통스러운데 그 사이사이에 접어 놓은 책장처럼 자기 안에서 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빛이 들어와도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눈을 감고 있으면 환한 지, 깜깜한지 알 수 없듯이 틈바구니에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고 손을 내밀고 여기 빛이 있네라고 그 빛을 만져보는 것도 사실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 모든 순간들 사이사이에서 나의 틈에 비친 빛들을 내가 잡을 것인지, 말 것인지 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후 :  너무 감동적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순서의 상관없이 어느 부분을 자유롭게 펼쳐서 읽어도 된다,라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차 구성이 우리의 생각, 인식이 넓어져 가는 어쩌면 인생의 축소판을 보여주는 것 같은 그런 단계가 느껴지더라고요.      

류대성 : 처음에 책을 구성할 때,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단편적인 글은 파편화되어 있잖아요. 근데 한 권의 책을 엮는다는 거는 집을 짓는 것하고 비슷합니다. 집안에 화장실이나 부엌에 빠질 수 없잖아요. 그것처럼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먼저 있을 거고요. 그다음에 이제 각 부나 장에서 나눠서 담게 되거든요. 근데 이 책은 다른 책과 다르게 처음 쓸 때부터 목적이 그랬거든요. 어느 페이지를 펼치고 한 꼭지를 읽고 또 넣어뒀다가 또 생각나면 또 한 꼭지를 읽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다 읽는다는 것은 독자로서도 굉장히 부담스러우실 거예요. 왜 그럴 수밖에 없냐면 이 책을, 왜 이렇게 어렵게 썼어! 그런 뜻이 아니라, 책의 실린 글을 한편 한 편 쓸 때 정말 많은 시간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거든요. 그걸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조금 곱씹고 음미하고 소화하고 그다음 편으로 넘어가고 이런 책 읽기가 조금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고요.

 목차 순서는 당연히 독자들에게 조금 더 관심이 있거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 그런 주제부터 배열했고요.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당연히 편집자님의 의견도 받아들였고요, 그래서 그 각 부의 구성이나. 부에 속해 있는 각 글들은 이게 인생 전체에 걸쳐서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문제들이거나 아니면 언젠가는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 '내년에 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까?'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난 다음에도 늘 사람들은 고민하잖아요? "내 나이가 벌써?!" 그러면 이제 시간이나 속도 세월에 대한 이야기들을 또 하잖아요. '나이 먹을수록 점점 더 빨리 가는 거 같아!' 그러면 생각을 하는 거죠, 사람들도 "나는 지금?"

 그게 20대든 30대든 40대든 50대든 상관없이 나는 지금 어떤 속도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지? 그 생각을 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살아오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모은 거죠. 책 속에서 읽었던 이야기들과 제 생각들이 모이는 데는 사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잖아요.

 그게 힘들었던 거 같아요. 책작업을 하면서... 혹시 다른 책을 내실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나요? 그렇죠, 네! 차근차근 모았던 생각이나 아니면 글들을 연결하고 시간을 좀 여유 있게 갖고 그렇게 작업을 한 거라 다른 책 보다 애정이 조금 더 많이 가죠.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조금 오랫동안 마음이 쓰일 만한 그런 책입니다.


오후 : 말씀을 듣고 나니까 저도 더 많이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소재들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많은, 정말 성실한 과정이 있었다고 하시는데,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야 될 시간이 우리들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엔 보면 'Shorts'나 '릴스'나 생각을 자꾸 짧게 하는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거든요. 저는 사실 좀 고민이 되고 안 만들고 싶어요. 조금 집중하고,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Shorts'를 만들까?, 하는 유혹은 있어요. 근데 이게 가장 또 여실히 드러나는 문제가 '독서를 하기 힘들어하는 시대'가 아닌가 또 하나는 우리 사회의 해결해야 될 여러 가지 문제들 함께 고민해야 될 문제들도 좀 진중하고 오랫동안 고민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건 너무 쉽게 지쳐버리고 포기해 버리지는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류대성 : 아마, 책과 관련된 유튜브이기 때문에 이걸 시청하시는 분들도 다 고개를 지금 끄덕거리고 계실 거예요. 왜냐하면 이게 관심 있는 분야의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 공감을 하는데 책에 관심이 없거나, 읽지 않는 분들은 '쟤네들 뭔 소리 하는 거야?' 이러거든요. 제가 도서관에 가서 강의를 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자주 하거든요. 사실 도서관의 책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 오시는 분들은 평소에 책을 읽는 분들이잖아요? 근데 안 오셔도 될 분들이죠. 사실 이분들은 어찌 보면 그분은 책으로 충분한 분들일 수도 있어요. 평소에 관심이 없거나 좀 들으셔야 될 분들은 잘 안 오시잖아요. 비슷한 거 같아요.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돈으로(자극적으로) 딱 던져줘야 이해가 빠르잖아요, 쇼츠처럼 근육량 1kg가 대략 한 1,300~1,600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 (1Kg이에요?)     

 근육량 1Kg에 그러니까, 운동을 하라는 거죠. 운동해서 근육량을 늘린 1kg가 나중에 노후에 질병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낮다는 여러 가지 데이터를 통해서 얘기를 하시는 거잖아요. 생각에도 근육이 있다고 저희가 비유를 많이 하잖아요. 운동을 안 하면 근육이 안 생기듯이 생각을 하는 연습이 훈련이 되지 않으면 생각을 할 수가 없거든요. Shorts, 릴스, 틱톡이나 다양한 짧은 영상을 저도 간혹 보긴 하는데, 굉장히 조심스럽고 두려워져요. 왜냐면 제가 그 쇼츠들을 이렇게 넘기다가 봤는데. 어! 10분?, 20분? 뭐 잠깐 뭘 하려고 하다가 보니까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정신적인 마약인 거잖아요. 먹는 마약이 아니라 비슷한 거죠. 계속 이렇게 넘기게 돼요. 그런 알고리즘이나 빅데이터들이 결국에는 수익으로 창출되고 자본주의랑 연결되어 있고 이게 뭐 무조건 비판할 건 아닌데, 순기능도 있겠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대단한 큰 약점으로 다가오는 거죠. 나의 생각의 근육들이 계속 빠져나가는 거고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대할 때 접근할 수 있는 방식들, 사고력이 굉장히 단순해지는 거죠. 쉽게 말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상에 나와서 꼭 필요한 문제해결 능력 학교 다닐 때는 '1+1은 뭐야?' 그러면 '2' 이거 이외에 답이 없잖아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들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외면하고 부인하는 경우도 있고요. 용서를 구하고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요. 자기 잘못에 대해서, 예를 들어서 아니면 돈으로 보상을 하는 경우도 있고, 회피하고 도망가 버리는 경우도 있고 문제 해결 방식이 여러 가지인데 어떤 것들을 선택할 건지는 개인에 따라서 다르잖아요. 근데 생각의 힘이 없어져 버리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걸 어떻게 하지 방법을 모르는 거죠. 여러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된다는 거죠. 제 생각은 그렇거든요.      

오후 :  (고정관념, 이념에 따른) 제일 손쉬운 방법을 선 택할 수도 있겠네요.      

류대성 :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이거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책을 읽었으면 당연히 좋겠으나, 책을 읽지 않더라도 사고하는 연습이나 생각하는 훈련과 연습을 하지 않으면 Shorts나 이 짧은 동영상에 익숙해지면 이게 주범은 아니지만 생각하는 힘을 끊임없이 떨어뜨리게 된다는 거죠. 사고력이 저하되면 문제해결 능력이 없어지는 거죠.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는 거죠. 내가 불행한데 혹은 내가 불편한데, 내가 짜증이 나는데 내가 화가 나는데 내가 고통스러운데 그 이유를 찾지 못하는 거죠. 이게 마치 내 동료들이나 옆 사람이나 내 부모 탓인 거 같은 거죠. 이제 조금 깊은 얘기로 넘어가야 되는데 전체가 안 보이는 거죠. 구조가 안 보이는 거죠.

 내가 왜 힘들지? 내가 왜 퇴근 시간에 이렇게 멀리 다녀야 되지? 근데, 이 안에는 부동산 문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지방분권 문제까지 다양하게 얽혀 있는데, 내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고통이나 고민이나 슬픔들이 주변 사람들 때문인 것 같은 거죠. 그분들한테 자꾸 화를 내는 거죠. 이야기가 조금 과격해지는데 동료를 죽이고 싶은 거잖아요.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부딪힌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거잖아요. 사실 조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출퇴근을 할 필요가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점.점.점.입니다. 길어지면 2, 3시간 얘기를 해야 돼서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것들은 전체를 보는 눈 혹은 관점의 다양성 이 책에서도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런 사고 능력들이 조금 길러지면 내 고민에 분노의 방향도 깊이도 달라질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내 어깨를 친 저놈을 주먹으로 칠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있는 지금 이 일과 직장과 혹은 10, 20년 후에 내 삶의 모습까지도 같이 고민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그런 능력들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아예 없진 않겠으나


오후 : 지금 2030 세대, MZ 세대들이 결혼 문제, 취업 문제, 자신의 장래 문제 모든 것들이 두렵고 어떤 선택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라는 얘기도 하고 뭔가 가슴속에 분노가 좀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포기를 하든가. 지금 말씀이 굉장히 와닿을 것 같아요.      

류대성 : 이 책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굉장히 많이 쓰여 있잖아요. '세대론' 자체를 저는 부정을 하거든요. 세대론에 관련된 책들도 굉장히 많아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회복 탄력성> <세컨드 찬스> 자체가 없잖아요. 여기서 한번 잘못되면 근데 이거는 사회에 나와서 공정하게 경쟁했을 때의 문제고 내가 태어났는데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미 결정돼 버렸다면 결정론적 세계관인데 민주주의 사회고 자유와 평등의 보장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순간 신분이 결정되어 있다면, 그것처럼 불행하거나 그것처럼 불공정한 일이 없잖아요.

 근데 그런 세상이 점점 되어가거나 그게 고착화돼 버리면 그걸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죠. 그러다 보니까 지금 MZ세대들이 생각하는 그 고민이나 선택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선택 자체가 이게 망설여지는 이유가 기본적으로는 우리 사회, 대한민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나 기본적인 틀, 이런 것들이 있을 거고요. 또 한 가지는, 당연히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을 거예요. 아까 앞에서 우리가 얘기했었던 사고력이라든지 아니면 생각하는 힘이라든지 아니면 삶의 목적이나 방향 같은 것들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하고 좀 다른 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향해야 되는 방향이나, 목적들 이런 것들은 당연히 교육이나, 주변 어른들과의 관계 이 안에서 다시 한번 고민을 해봐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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