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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Dec 27. 2023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모든 틈에 빛이 든다] 류대성 작가 인터뷰 (2)

https://youtu.be/Ju5J34MKrlA?feature=shared

오후 : 여느 작가들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시진 않으셨고 묵묵하게 활동하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용한 걸음이 작가님의 삶을 대하는 태도이신지, 아니면 좀 노골적으로 질문드리면, 노력도 하시고 시도도 하셨는데, 작가님의 목소리가 잘 울려 퍼지지 않는 것인지.     

류대성 : 그런 질문들을 굉장히 많이 받거든요. (아! 정말요? 저만 물어본 것이 아니라?) 아마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거 같아요. 첫 번째는 당연히 불러 주는 데가 없고요. 아주 유명 작가면 방송이나 여기저기에서 난리가 났겠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아닌 거고. 두 번째는 나서기를 굉장히 싫어해요. '저요, 저요' 하는 것도 잘못하고 도서관이나 이런 곳에서 강의를 많이 하다 보니까, 출판사에서 유튜브 활동이나 다른 활동을 제안을 한 적도 있고 라디오나 작은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긴 해요. 그런 (기록들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것들이 '동전의 양면' 같아요.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졌으면 좋겠다, 라는 소망은 있는데, 그렇다고 방송이나 이런 곳에 좀 적극적으로 출연하거나 아니면 뛰어다니면서 알리는 건 또 잘하지 못하는 양면적인 성격이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독자로서 이제 제가 느끼는 거는 똑같습니다.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는 화면으로 자주 비추는 작가들의 책은 제가 신뢰하지 않거든요. 읽고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다 다시 사라지거나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뜸해지면 좋은 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죠.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는데 꼭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학자들도 그렇잖아요. 정치적으로 아니면 방송을 위해서 열심히 하시는 분들의 연구 결과들이나 아니면 컨텐츠들이 뛰어날 가능성이 좀 적거든요. (그만큼 절대 시간이 부족해지는 거죠.) 그래서 양면성이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아니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한곳에 집중해서 읽고 쓰고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하기 위해서 기회가 있어도 그런 것들을 즐겨하거나, 나서고 싶거나, 좋아하지를 않고요. 지금 이대로 저는 충분한데 다만 이제 책이 나왔을 때는 아! 이게 조금 더 알려지거나 많은 사람들한테 읽혔으면, 하는 양면적인, 이율배반적인 욕망이 사실은 있기도 합니다. 

     

오후 : 전 이번 책, 읽으면서 정말 꼼꼼하고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테지만 이번에 <초록비책공방>과 함께 작업하시는 건 어떠셨습니까?      

류대성 : 굉장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는데 그 전에는 뭐 <창비>나 <휴머니스트>나 <현암사>나 조금 규모가 크거나 이름 있는 출판사들하고도 작업을 해봤는데 이번에 글을 쓰면서 혼자서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엉뚱하게도 '1인 출판사' 하고,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어요. 근데 사실, 저 지방에 있는, 멀리 있는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도 해봤거든요, 근데 이제 거절당하기도 하고

(작가님을 거절했다고요?) 

아니 왜 우리 출판사랑 작업을 하시려고 하냐고 이런 출판사도 있었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무명이라고 생각하고 매번 조심스럽고 한데 출판사의 규모나 이런 거 하고 상관없이 제가 의도했던 것들은 책 한 권에 대한 정성 혹은 글은 제가 쓰지만 글을 쓰는 사람 이후에 글을 쓴 다음에 독자들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은 출판사나 편집자나 마케터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근데 그 책에 담겨야 되는 정신이나 방향이나 목적이나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나 이런 것들을 얼만큼 고민하고 작가하고 같이 호흡을 할 수 있는지 저는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어느 출판사인지 아니면 뭐 얼마나 팔렸는지 출판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 그런 것들이 더 소중하거든요. 근데 이번에 작업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의미 있었던 혹은 즐거웠던 기억에 남을 만한 협업이라는 게 무엇인지 아니면 글을 쓴 사람의 의도를 조금 더 파악해서 책을 만들고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너무 마음에 들었던 아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은 그런 작업이었거든요. 

    

오후 : 제가 이 질문은 마케터님한테 부탁 받은 질문이 아닙니다. 독자님들도 책을 나중에 읽으실 때 보시면 책 뒤쪽에 작가님께서 여러 책을 참고하셨던 그런 책들의 목록도 잘 정리되어 있고 책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공존]이라는 장에서 첫 번째 장이 <맨스플레인>이었는데요. 리베카 솔릿이 한 말이죠?

"남자들은 자꾸 나에게 설명하려 든다"고 저는 '평등平等'이란 말보다는 '평권平權'이란 말을 더 좋아하는데, 어쨌든 성평등, 남녀문제 우리 사회의 여러 '차이'를 '차별'로 가져가지 말아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다른 장에 비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지신 것 같았어요. 질문을 많이 던지시고 작가님의 생각이 보이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요? 제가 못 본 건가요?     

류대성 : 못 본 것일 수도 있고요. 어쩌면 그만큼 제가 조심스러웠겠죠.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나 오해들 이런 것들도 굉장히 많거든요. 너 페미야 아니야? 이게 사상검증하고 똑같잖아요

이청준의 <소문의 벽>에 '전짓불' 그 소설 기억하시나요? 한밤중에 시골에 들이닥치는 거죠. 온 가족이 자고 있는데 그리고 이제, 전짓불을 비춰요. 6.25 때니까 누가 와서 전짓불을 들이 비추는데, 총들고 와서는 자다가 일어나서 놀라잖아요. 사상검증하는 거죠. 누군지 몰라요. 전짓불이라는 건 헤드라이트 눈이 부시잖아요. 그럼 북한군인지 아닌지 몰라요. 그러니까 내 답변에 따라서 생사가 좌우되는 거죠. 절체절명의 순간인 거죠. 너 국군 편이야, 북한 편이야? 이건 거예요.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사상검증인데 저는 그 '전짓불'이 떠올랐거든요. 최근에 그 페미니즘 논쟁에 대해서 그러니까 어느 일방적으로 여성 편을 들거나, 남성편을 들거나 역차별이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넓은 관점에서 이게 편견이나 차별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었어요. 일단은!

 논쟁이 너무 심각해지니까 여성에 대한 문제를 커다란 '편견이나 차별'의 카테고리 안에 담아서 일단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잖아요. 근데 범위를 좁히면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극단적으로 무슨 말을 해도 욕이 반, 칭찬의 반이죠. 정치권에서도 이걸 또 편 갈라서 이용하기도 하고요, 선거철에는 그러다 보니까, 여기서 질문이 많아진 건 이 질문들을 각자 가지고 있는 현재의 태도나 생각들에 따라 답을 하다 보면 무엇이 잘못됐거나 무엇인가 스텝이 꼬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라는 의도였던 거죠, 사실은

 제가 던진 질문에 술술술 답이 나오거나, 자연스럽게 생각을 깊이 했던 분들은 논리적인 모순이 없을 거예요. 차별은 나쁜데 여자는 아니야? 이런 문제에 부딪힌다거나 편견은 안 좋다는 걸 모두가 다 인정하는데 여성에 대한 편견은, 괜찮아? 이런 논리적인 모순점들이 스스로 발견된다면 그 지점부터 이제 출발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근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남성혐오'도 마찬가지인 거죠. 극단적인 페미니즘, 편견은 안 되는데 한국 남성에 대한 편견은 괜찮아? 같은 논리인 거죠

 그러다 보면, 논리에 정합성을 따지다 보면, 사실 저희들의 사고력이나 접근 방식 자체가 '전짓불'로 양분될 수 있는 흑백논리로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접근방법이나 정답을 찾아 나가기가 왜냐면 모든 사람은 자기가 놓인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해관계, 쿠이보노Cuibono에 따라서 달리 생각하고, 달리 판단하고 달리 움직이거든요. 그게 인간이거든요. 그런 인간을 비난만 할 순 없어요.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타인도 인정하고, 다만 나와 타인이 다를 때, 그 중간 지점을 어느 지점에서 타협할 것인지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우리 사회는 ‘내가 다 옳고, 너는 틀렸어’ 중간이 없어요. 타협이나, 조정이나 협의가 잘 안 돼요. 이거는 어렸을 때부터 토론 문화 혹은 교육과정이나 정답을 찾는 방식 자체도 잘못됐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객관식이 나쁜 게 정답이 있잖아요. 나머지 4개가 틀린 거죠. <진달래꽃>의 주제가 5개 중에 하나일 수 있어요? 김소월한테 물어봤나요?     

 실제 사례예요. 신경림 시인의 詩가 수능에도 출제가 됐었는데 신경림 시인한테 그 문제집에 나와 있는 문제를 강연 오셨을 때 풀어봐 달라고 요구했던 짓궂은 선생님이 계셨어요. 신경림 선생님은 몇 문제나 맞쳤을까요? 본인이 썼는데 본인 詩로 낸 시험 문제를 절반 정도 맞추셨답니다. 쓴 사람도 모르는 문제들을 고3 아이들은 정확하게 찾아내거든요. 이게 맞다, 저게 틀렸다. 그러다 보니까 정답이 있는 거죠, 어떤 문제든지!

내가 틀릴 수 있다거나, 상대방도 모를 수 있다거나 저 사람도 나도 다 틀렸고 새로운 답이 있을 거라는 그런 기본적인 태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에 나오다 보니까 '야! 이렇게 해야 돼!' '이럴 땐 이렇게'

      

오후 : 저도 반성이 많이 됩니다. 

류대성 : 그럼요. 근데 이 태도에서 벗어나는 건 정말 힘들거든요. 보통 노력 갖고는 안 되고요. 그 첫 번째 단계가 저는 '자각'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들이 그걸 자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해요, 잘... 그 문제를 나는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죠.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라고 자기가 잘 모르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기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들을 굉장히 많이 하는 거죠. 잘 알고 있잖아요? 나는 굉장히 복잡한 사람이고 타인들은 굉장히 단순한 사람이에요. 

 나는 복잡한 정답을 찾아가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단순하게 오답을 찾아간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거기에서만 벗어나도 우리 사회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근데 그거는 사회적인 관계뿐만이 아니라 지금 얘기하셨던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연인 사이의 관계, 일차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오후 : 정말 맞는 말씀이에요. 저는 항상 아이들이 질문하면 제가 뭔가를 대답해 줘야 된다. 생각을 하기도 하고 아이가 대답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지만 아빠가 이야기하는 걸 좀 들어줬으면 하는...     

류대성 : 당연히 부모의 교육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들이 자식들에게 전이 되거든요. 그런 문화적인 토양이 사실 그 집안의 '아비투스HABITUS'가 되는 건데 그것도 일견 나쁜 건 아닌데, 그래도 정답이 계속 그 아이에게 주어지기 시작하면 아이는 이제 정말 편견을 갖고, 또 하나의 정답을 갖고, 사람들을 보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가 흔히 '젊꼰'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젊은 꼰대'들 그분들이 대체적으로 '정답'을 갖고 있거든요.      

'이때는 이렇게 해야 돼!', '이건 이건 거야' '너는 이게 잘못됐어' 대부분 이거거든요. 나이의 문제가 아니에요. 근데 대체적으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정답이 많아져요. 자신의 경험치를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경험을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저희가 잘 알고 있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거든요. 한 개인이 80억 인구 중에 몇 명을 만나고 죽을까요? 의심하고 질문하는 그 태도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정말 어려운 태도인 것 같아요.     

대체적으로 정글에서는 의심하고 조심하잖아요. 부스럭 소리에도 고개가 돌아가고, 생존을 위해서 익숙해져 있는데 이 문명사회에서는 부모들이 걸어온 길 쌓아놓은 자산을 지키는 방법들이 그 노하우들이 전수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의심하고 질문하기보다는 대체적으로 정답들이 보이는 거죠. 저 직업, 저 정도의 자산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들이 이미 답이 나와 있어요. 저기를 가려면 어느 대학에 가야 된다는 게, 답이 나와 있어요. 정답이 정해져 있는 사회는 별로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잖아요. 변화 가능해야 되고, 역동적이어야 되고 나중에도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있어야 되고, 근데 이제 그게 없어지면 굉장히 견고(사회구조, 계층 등)해지는 건데. 그게 위험한 사회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이나 생각들이 제가 조금 한 가지 질문에 답이 좀 길어지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얘기를 한 권의 책에 다 담지 못해서 그래요. 사실 그런 이야기들이 문장 하나의 꼭 눌러 담다 보니까 질문하셨던 부분 중에 이제 어렵게 느끼시는 분이 없냐는 이야기도 당연히 있죠. 그러다 보니까 이제 문장이 조금 어려워지거나 생략되거나 이런 부분들이 아는데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은 생각과 숙고의 시간을 거친 생각을 ... 막 꾸겨 놓다 보니까, 그래서 이제 편집자님들한테 매번 비슷한 욕을 좀 많이 먹어요. 설명을 자세하게 '쉽게 풀어주세요'라고 그럼 책이 두꺼워지는 거죠. 제가 이런 인터뷰 처음이라 이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오후 : 작가님께서 뭘 하나를 딱 고집하고 '이게 옳다'라고 하시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준이 되는 큰 의미와 가치를 두고 있는 생각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류대성 :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겠다는 건 내가 그만큼의 시간이나 노력을 투자하지 못했지만 그 사람이 지혜를 빌리고 싶은 거잖아요. (저도 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이제 다른 분들의 책을 읽는데 현재까지 앞으로는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느낀 것은 사람이 한평생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공부의 양 혹은 흡수할 수 있는 지식, 정보의 양이 아무리 인터넷이 늘어나고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차적으로 느낀 거는 계속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겉으로 어떤 스탠스나 태도의 문제가 '저 사람 조금 겸손하게 보이네' 이런 뜻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끼는 것은 ‘아! 이제 바닥을 향해 간다’는 그런 느낌인 거죠. 아는 게 없다는 걸 끊임없이 확인하는 정말로 이게 어떤 선언적인 의미가 아니라, '무지無知의 지知'를 깨달아가는 과정 저는 독서를 그렇게 표현하기도 하거든요. 왜냐면 특정 분야의 책들을 혹은 특정 분야의 공부들을 깊이하다 보면, 대체적으로 지금까지 산출되어 있는 지식의 총량들을 흡수할 수는 있는데, 조금 범위를 넓혀서 그 옆에 인접영역들이나 다른 분야의 책들이나 공부를 이렇게 하다, 보면 끝이 없는 거죠. 그래서 바닥에 닿을 순 없겠구나라는 정도를 깨닫는 정도이기 때문에 결국에 제가 돌아오는 것은 '인간'이더라고요. 친화력도 굉장히 떨어지고 사회성도 부족한데 사람이 갖춰야 되는 기본적인 태도나 자세들, 살아가면서 그게 뭘까?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 결국 책읽기에 시작이자 끝인 거 같거든요. 그래서 인간의 문제인데 사람들은 '인간' 그러면은 지금까지 뭐 생물학이나 과학적으로 인류학이나 아니면 심리학이나 궁금할 때마다 자기가 찾아 읽는 분야의 책들이 있잖아요. 근데 대체적으로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보다 인간의 성장 속도나 진화 속도는 굉장히 더디잖아요. 그래서 '털 없는 원숭이 수준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했다'고 얘기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저는 사고의 기준이 되는 게 근대거든요. 

 10년, 20년, 100년 후 쯤에도 인간이 크게 변할 것 같진 않아요. 결론적으로는 그래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 혹은 인간이 인간에게 갖춰야 되는 기본적인 예의들 그거는 정답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근대 이후에 당연히 가장 중요한 정신 중에 하나가 '개인'이잖아요, 개별성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개별성은 '다양성의 존중'으로부터 오는데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잘 인정하지 않잖아요. 산업사회나 자본주의 사회나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늘 알고 있는 '자본주의 매몰된다'는 것은 욕망들이 대부분 이렇게 하나로 모아지잖아요. 비슷한 방향으로 그래서 이 책에서도 계속 강조를 하고 있는데 <질문하는 삶>에서도 마찬가지고 자기만의 길이나 자기만의 방법들 삶의 방법들, 자기만의 관점 이걸 굉장히 강조하고 있거든요. 근데 그거는 정답이 없는 거잖아요. '내가 보기에 이렇다' '그러니까 읽는 분들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저는 이런 책은 절대 아닐 거거든요.

 무슨 뜻인지 정답이 없는데 그걸 정답이라고 우기는 건 그건 안 되는 거고요. 저는 그냥 사기에 가깝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정답이 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항상 좋은 책의 기준이 뭐냐, 라고 물어볼 때도 저의 기준은 '질문이 있는 책', '생각하게 하는 책' 다른 책을 찾아보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지 스스로 찾아 나서게 하는 책이란 거죠? 책을 읽고 났더니, '뭔가 좀 보여!', 이런 책은 사실, 나쁜 책일 가능성이 굉장히 많거든요. 제가 자주 인용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사람은 책을 안 읽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 도그마에 빠지면 그게 정답인 줄 알거든요. 아예 읽지 않은 사람은 나는 모른다는 걸 인정을 하는데, 특정한 분야에 대해서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들이 들리지 않잖아요. 책읽기나 살아가는 태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 나이 때는, 사춘기 때는 이걸 해야 돼' '2-30대 때는 이거 안 하면 큰일 나!' SNS에 끊임없이, 쇼츠나 짤로 돌아다니잖아요. 이때는 이걸 해야 되고, 결혼할 때는 이런 사람을 만나야 되고,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런 준비를 해야 되고, 아니면 노년을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니까.

반드시 갖춰야 되고 근데 그건 그게 정답이더라도 나한테 맞아야 되는데 나한테 맞지 않는 정답일 수도 있잖아요. 책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자기 길을 찾아가는,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쓰는 글들도 정답을 제시한다기보다 생각을 유도하는 그냥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요, 지금도.  

   

오후 : 제가 그래서 작가님 팬이 된 거 같아요. 정말 생각을 많이 하고 또 질문도 많이 하고 메모도 많이 하고 그랬거든요. 제가 책을 보면서 잘 적지 않아요. 근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렇게 많이 줄 그엇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조사를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평균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데요. 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책에서 우리는 평균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만의 중앙값을 설정해야 된다고 하셨어요. 흔들리면서 살아가지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자신의 기준, 중앙값을 찾으려고 하는 분들게 작가님께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류대성 :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책에 한 구절이긴 하지만 '평균값'하고 '중앙값'은 다르잖아요.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나는 중간이 안 되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건 대한민국 사회가 그만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실제로 대한민국의 한 가운데 평균값이 아니라 중앙값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만하면 됐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굿잡이라 얘기하듯이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 중앙값에 해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그 외부에서 보는 시선도 그렇고 우리가 '잘 산다' 혹은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얘기를 하는 건 중산층 이상, 상류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항상 우리 삶에 '눈높이'거든요.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죠.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 그건 인간의 본성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혹은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자기 욕망을 확인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데 다른 사람들하고 그 욕망에 눈높이를 맞춰서 나도 저만큼, 너도 저만큼, 얘도 그만큼 이래 버리면 이제 얘기가 달라지는 거죠. 나는 능력이 요거밖에 안 되니까 요만큼만 욕심낼 거야, 이러라는 뜻이 아니라 진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나 원하는 삶의 형태들이 있을 거거든요. 근데 그건 자본, 돈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 직업이나 어떤 영역에서의 성취감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점검하거나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걸 확인하지 않고 그냥 외부적인 시선 혹은 대다수 사람들이 지향하는 목적지만을 같이 바라보면서 걷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이야기들을 좀 썼던 것 같습니다. 


오후 : 너무너무 귀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책에서도 '티핑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티핑 포인트를 통해서 더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음을 확인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책이 여러분들께서 많이 읽으시고 작가님의 목소리가 멀리 퍼지는 티핑 포인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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