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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대검(1)

by 오후의 책방

“110번 훈련병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군화도 뚫는다는 깔따구 입도 구부러질 논산 훈련소의 8월, 4중대는 서리가 내린 듯 냉랭해졌다. 110번은 연신 땀범벅인 이마를 닦아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가져온 이 무거운 적막에 입이 말랐다. 정신 차려야 한다.

“대검을 잃어버렸습니다.”

“뭐! 이 새끼야?”

4중대장이 되물었다. 누구라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말은 귀에 들어와도 머리에 착상이 안 된다. 4중대장은 대검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관자놀이에 핏대가 서는 걸 느끼며 다시 물었다.

“저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똑바로 얘기해 봐.”

249명의 시선이 일제히 110번을 향했다. 110번은 애당초 이런 상황을 머릿속에서 여러 차례 연습했다. 실수 없이 간결하게 대답해야 했다.

“각개전투 훈련에서 대검을 분실했습니다. 담당 소대장에게 찾아오겠다고 요청했으나,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되니 훈련을 마친 후에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대검은 그 소대장이 찾아두겠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250명 훈련병이 모두 집합해 있던 자리에서 말하고 들었던 내용이었다. 동료들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이었다.

“저 새끼 말이 사실이야? 같이 들은 사람 손들어봐.”

미동조차 없었다. 눈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촤르르륵 파칭코 구슬 소리처럼 귀가 얼얼했을 것이다. 하지만 논뫼면 훈련장은 적막했다. 110번은 마른 흙덩이가 들러붙은 듯 얼굴이 뻣뻣하게 당겨지는 걸 느꼈다.

“야! 이 바보 등신 새끼야.”

4중대장의 고성이 훈련장에 메아리쳤다.

“당장 가서 찾아와.”

분대장이 뛰쳐나와 110번을 불렀다.

“야, 너 따라와.”

110번은 분대장이 껄끄러웠다. 평소엔 눈을 내리깔고 카랑카랑하게 소리치는 조교들도 쉬는 시간이나 생활관에선 실없는 농을 던지기도 하며 친해졌다. 하지만 분대장은 지금껏 웃음기 하나 없는 인간이었다.



“충성, 병장 목진석. 저희 훈련병이 각개전투장에서 대검을 분실했습니다. 담당 소대장님께서 대검을 확보해 놓고 있을 거라 해서 찾아왔습니다.”

“어, 목진석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2중대 1소대장이 사람 좋게 웃었다.

“소대장님 한 번 찾아봐 주십시오. 각개전투장 외다리 건너기 전 바위 위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소대장님이 수거해 놓겠다고 하셨답니다.” 진석은 애살있는 태도로 1소대장에게 부탁했다. 진석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 110번은 그가 스무 살 제 또래란 걸 새삼 느꼈다.

“야, 오늘 대검 주워놓은 사람 있냐?”

복귀를 서두르는 2중대는 부산스러웠다. 천둥이 울렸다. 보슬비였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2중대 훈련병들이 줄지어 육공트럭에 타기 시작했다. 그 통에 소대장의 외침은 묻혀버렸다.

“없는가 보네.”

“소대장님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110번! 너, 그 소대장님 얼굴 기억해?”

“죄송합니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사실이었다. 조교나 장교들은 반쯤 전투모를 눌러쓰고 깔아보듯 내려다보았다. 매일 같이 지내지 않는 이상 기억하기 어려웠다.

“야, 인마. 없다잖아, 말귀를 못 알아들어?”

2중대 1소대장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조금 전까지 사람 좋은 웃음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진석은 여기서 더 말을 해보았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 다시 4중대 집결지로 돌아가는 길에 110번은 진석의 눈치를 살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마.”

화내는 것도 아닌 차갑기 그지없는 단음조였다. 진석은 무엇을 해야 함에도 무엇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2년 동안 겪어온 터였다. 대검을 찾으러 가는 길이 다시 무력감을 확인하는 것임을 진석은 알고 있었다. 말년 병장인 진석이 귀찮을법한 일에 먼저 나선 건, 사람 말을 쉽게 믿은 110번이 딱해서였을 뿐이었다. 되려 110번은 감정 없는 진석의 말투에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대검을 잃어버리는 일 따위는 별일이 아닐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그 부동한 얼굴에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굵어진 빗줄기가 110번의 따귀를 때렸다. 차가운 소낙비가 냉정함을 찾아준 것일까? 진석의 무덤덤함이 어쩌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어서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불안이 부풀어 올랐다. 진작 제대로 끼워지지 않은 대검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면, 혼나든 말든 막무가내로 뛰어가 대검을 찾아왔더라면, 이런 사달은 나지 않았을 텐데. 자기 눈을 회피하던 동기들, 흐릿한 소대장 얼굴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4중대 전원, 각개전투장으로 이동”

4중대장은 나지막이 ‘개새끼들’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멍청한 110번, 진석, 그리고 아무도 손 들지 않았던 249명의 훈련병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4중대장은 250명의 개새끼를 끌고 각개전투장으로 이동했다.

“야, 110번, 여기가 대검 잃어버린 데야?”

4중대장은 바위에 올라섰다. 빗줄기는 장대가 되어 쏟아졌다. 우의를 입은 4중대 훈련병들이 외나무다리 코스에 일렬로 줄지어 섰다. 산기슭을 쓸고 내려오는 빗물이 황토를 머금고 와그르르 모여들어 외나무다리 아래에 누런 계곡물을 만들었다. 계곡은 각개전투장의 우에서 좌로 허리를 가르듯 세차게 흘렀다. 비에 젖은 검은 청동상처럼 서 있던 4중대장이 고함쳤다.

“멍청한 110번, 뛰어 들어가서 대검 찾아낸다. 실시!”

110번은 생각이란 걸 하지 않았다. 명령이 떨어지자, 무릎반사처럼 뛰쳐나와 계곡물로 뛰어들었다. 거친 물살이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철모를 벗어 계곡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철모의 수만 배나 될 양이 초 단위로 밀려왔다. 110번이나, 그를 보고 있는 이들이나 이 우스꽝스럽고 무의미한 행위의 부당함에 대해 침묵했다. 입대 전, A선배가 한 말이 이명처럼 귀를 울렸다.



‘난 말이야, 한국 남자들이 저지르는 모든 부조리와 악덕은 군대에서 배워 온 거라 생각해.’

낙엽이 길바닥을 덮던 지난 11월, 영장이 나왔다는 말에 복학생 선배들은 그를 학교 후문 먹자골목의 호프로 데려갔다. S대 인문학부인 그들이 학과사무실보다 더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9월에 막 제대한 A선배는 ‘군에 안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찾아보라’고 했다가, 한숨을 쉬며, ‘뭐 다 가는 군대 그냥 건강하게만 다녀오라’고 했다가 갈피 없이 말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선배들이 몇 명인지도 헷갈릴 만큼 오고 가던 중, 취기에 말꼬리가 감기는 A선배가 술잔을 내밀며 문득 말했다.

“거긴 말이야. 빗자루를 잃어버리잖아? 그러면 새로 사는 게 아니야. 옆 부대에서 훔쳐 오라고 시켜. 못 훔쳐 오잖아? 그럼, 병신 취급당해.” 그도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그래도 이래저래 빠져서, 군대 안 가는 놈들이 더 나쁘지 않아요?”

“야! 그러니까, 그게 모순이란 거야. 나쁜 짓은 그놈들이 더 하잖아. 우린 같이 빽없는 놈들은 뒤치다꺼리하면서 서로 치고받고, 뺏고 빼앗긴단 말이야. 그 꼴을 처음 보고 배우는 곳이 군대라고.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가 군대에서 배워온 게 폭력만은 아닐 거야. 정말 서글픈 거는 군대란 곳이 강제로 부조리를 학습하는 곳이란 거야.”

A선배의 부릅뜬 눈이 술기운에 더 붉게 빛났다. 그는 선배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그래요? 내년 여름에 입대하니까, 그전에 미리 세상을 좀 배워야겠네요.”


이듬해 봄부터 일자리를 찾았다. 처음에 한 일은 일용직 건설 노동이었다. 번 돈보다 파스값이 더 나간다는 말이 조금 과장이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었다. 하루씩 번 돈은 하루 만에 나갔다. 호기롭게 쓴 후배들 밥값에 하숙비를 내고 나면, 남은 돈은 0으로 수렴되었다. 마침, 때 이른 봄장마가 시작되며 출근이 들쑥날쑥하게 되자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쯤 문득 눈에 띈 구인 광고를 보고 홀린 듯 찾아간 곳은 시내 중심가의 주유소였다. 그는 야간 근무를 하기로 했다.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꼬박 12시간 일하지만, 밤 2시 이후론 손님이 거의 없고, 동료와 교대로 두어 시간씩 잘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소장은 ‘과외를 하면 더 나을 텐데,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물었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머뭇대는 사이 소장은 ‘너 같은 애들만 일했으면 좋겠는데….’라며 미묘한 말을 했다.

첫날, 함께 일하게 될 선임에게 야간 근무 요령을 익혔다. 지역 유류 판매를 총괄하는 본사에 딸린 큰 주유소라 관공서 차량도 많고. 인근에 주유소가 없어 배달 오토바이도 숱하게 드나들었다. 며칠 뒤, 새벽 5시쯤 구청 청소차가 떠나자, 선임이 그를 불렀다. 비밀 한 가지를 알려준다고 했다. 어느새 슬쩍 존댓말을 생략하고 말이 짧아져 있었다.

“형, 여기 계기판 보면 8과 0이 애매하게 잘 구별되지 않거든?”

“아, 얼른 고쳐야겠네요.”

“이 형, 순진하네. 그게 아니지. 기름은 0에 맞춰 넣고 장부에는 8이라고 적는 거예요. 그만큼 남는 돈으로 간식이라도 사 먹는 거지.” 그보다 두 살 어린 선임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사무직들은 기름때 묻은 저들의 고충을 모른다며 이렇게라도 소소하게 빼먹는 재미로 버티는 것이라 했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자신과 낮 근무를 하는 친구밖에 없다고 말했다.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선임의 ‘규칙’에 맞추기로 했다. 이게 뭐라고 옳고 그름을 그리 따진단 말인가. 희극인 전유성의 말처럼 조금 비겁하면 인생이 즐거울 수도 있는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불편했다. 넝쿨식물이 볕이 드는 쪽으로 줄기를 뻗어가는 것처럼, 그의 마음은 반대로 흘러갔다. 불편했기에 도둑질이 서툴렀다. 그는 관공서 차량이 올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그가 주유하는 동안 운전사가 뒤를 지나가면 화들짝 놀라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날 하루는 청소차 운전사가 그의 뒤에서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

“구청 담당자 잘 보라고 하더라고. 왠지 기름을 속이는 것 같다고. 어떻게 주유 끝자리가 8로 끝나는 날이 그리 많으냐고.”

그가 선임에게 이 말을 옮기자, 선임이 낯빛을 바꾸며 소리를 질렀다.

“형, 미쳤어? 어쩌다 한 번씩 해야지, 그렇게 하면 당연히 들키지. 아, 미치겠네. 그런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설명해 줘야 해?”

선임은 그를 펜대나 굴릴 줄 알았지, 요령은 전혀 없는 놈이라 생각했다. 좀 더 지켜보고 아니다 싶으면 쫓아내야겠다 싶었다. 이런 샌님들이 저 혼자 나가떨어지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 있었다. 선임은 월급날이 되자 그에게 술이나 한잔하자고, 그리고 2차도 가자며 꼬드겼다. 짧은 순간 그가 선임을 혐오하듯 바라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을 굳혔다. ‘개새끼, 지는 뭐 얼마나 깨끗하다고.’


그날부터였다. 선임은 교대 시간을 어기기 시작했다. 한 번 휴게실로 들어가면 두세 번을 깨워도 나오질 않았다. 처음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어느 날엔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12시간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건 힘든 일이었다. 잠깐 의자에 앉아 눈이라도 붙이려 하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난 배달 오토바이들이 신경질적인 경적을 울렸다. 낮 동안 쉬지 못하면 24시간을 깨어 있는 꼴이 되었다. 한 달 하고 28일째가 되던 날, 그는 소장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혹시 선임이 교대근무 안 해주더냐? 솔직히 말해볼래. 너 앞에도 한 달이 안 돼 그만둔 사람이 있어서 그래.”

소장에게 그런 문제가 예전부터 있었다면 선임을 해고하면 되지 않냐고 물었다. 소장은 2년 넘게 근무한 정직원을 해고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했다. 해고 사유를 찾고 있지만 확실한 근거를 잡지 못한 듯 보였다. 자신은 그들에게 녹아들지 못했으니, 왕따를 당한 셈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크게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 자신이 말한다고 해서 바뀔 건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이 어린 친구들을 A선배가 보았다면, 한국 남자들의 부조리는 군대에서 처음 배운다는 말을 취소하지 않을까? 그는 소장에게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이라 말했다.



강제로 부조리를 학습해야 하는 곳, 110번은 소대장 말을 믿었던 자신을 탓하다가도 누구를 믿는다는 것이 왜 잘못된 결과로 돌아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 걸까? 누군가의 허점을 더 노골적이고 거칠 게 노리는 건, 군대 안이나 밖이나 다르지 않은 걸까? 차오르는 계곡물만큼이나 생각이 차올랐다. 먹구름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굵어진 빗줄기가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 계곡물이 와글대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오보에 A음에 조율하기 전의 불협화음 같았다. 4중대장은 전투모 창에 맺혀 처마 끝처럼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고 있었다. 이 시끄러운 폭우 소리에도 지루함이 느껴졌다.


'첨벙'

그때, 갑자기 누군가 물 속으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대검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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