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는 좋았다
“다문화 부부가 다투는 요인도, 아예 이혼이나 별거를 감행하는 이유도 절반 이상은 ‘성격 차이’.”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1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전체 다문화 가구 34만6017곳 중 8.6%는 이미 부부가 이혼 또는 별거에 이른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주요한 이유로 꼽힌 것은 응답자 중 50.7%가 고른 ‘성격 차이’였습니다. ‘경제적 문제’는 14.0%, ‘학대 또는 폭력’은 8.8%에 불과했습니다.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다문화가정 역시 가장 심각한 갈등 요인으로 ‘성격 차이’를 지목했습니다. 그 비율은 무려 56.6%(복수 응답)로 이혼 또는 별거를 택한 이들보다 오히려 높았습니다. 다음가는 원인들인 양육 문제(26.7%)나 경제적 문제(24.7%)는 그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비록 나고 자란 문화권이 사뭇 다르다곤 해도, 만인 앞에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언약했던 부부마저 성격 차이를 극복하기는 이렇게나 어려운 것입니다. 하물며 태반은 회사의 인사명령 이외엔 생애 전부를 걸쳐도 얽힐 계기가 드문 ‘직장 동료’ 관계에선 어떠하겠습니까.
실제로 사람인에이치알이 지난 2020년 5월 직장인 1314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이들 중 44.1%가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에서도 90.3%는 앞으로도 아싸 생활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 답했습니다. 첫째로 꼽힌 이유는 역시나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덜 줘서’(65.2%·복수응답)였습니다. 결이 맞지 않는 사우와 억지로 부대끼는 부담을 질 바에야 차라리 고독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일선 기업 현장에선 성격이나 성향이 아주 딴판으로 다른 인물을 한데 모으는 경우도 이따금은 목격할 수 있는데요. 구성원의 스트레스 증폭을 무릅써 가면서도 이러한 인사 배치를 감행하는 이유는, 대개는 정반대인 사람끼리 어울리는 과정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상승 작용을 바라거나, 조직에 지나치게 특정 성향인 직원들만 몰리는 바람에 생동감이나 비판적 사고를 완전히 상실하는 꼴을 피하려는 목적입니다.
물론 이를 무작정 위태롭거나 무모한 전략이라고만 치부하긴 어렵습니다. 관리과학이나 갈등관리의 관점에 따르면 경미하거나 통제 가능한 수준의 갈등은 집단에 건전한 비판 의식을 함양해 주거나 구성원들의 창의를 자극하는 등 갖가지 순기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제에 충실한, 오로지 ‘경미’하거나 ‘통제 가능’한 상황일 때 성립 가능한 이론입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상호 존중에 기반한 의견 교환을 넘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바람에 대거 충돌이나 분열까지 야기하는 갈등은 필경 조직에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격차 극복은 부부마저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러한 리스크는 한층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비슷하게 격한 대립이라도 아내와 남편 사이보단 직장 동료 관계 쪽이 설득하거나 다독이기도 훨씬 어려울 것이고요. 그러다 끝내 한 쪽이 폭발하거나 폭주해 버리기라도 하면 수습이 참으로 요원해질 수밖에 없죠.
그러한 인사전략의 취약점은 역사적인 사례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나라 천계제 시절에 요동경략으로서 지역 수비를 총괄했던 웅정필과, 그 휘하에서 순무 관직을 맡은 왕화정의 대립이 그중 하나입니다. 요동에서 오래 근무해 현지 사정에 밝았던 웅정필은 후금의 침공을 저지하려면 철저한 수성만이 유효하다는 입장이었고, 실제로 그가 국경을 지키는 동안엔 한창 위세를 떨치던 만주 팔기군마저도 명의 방위 전선을 쉽게 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왕화정이었습니다. 웅정필보다 늦게 요동으로 배치된 왕화정은 본인이 주도하는 비책에 기대 큰 공을 세울 기회를 노리는 타입이었고, 이 때문에 선제공격을 허락하지 않는 상관과 자연히 마찰을 빚었죠.
왕화정은 그의 지휘로 명군이 공격을 개시하면, 후금에 항복해 있던 명의 장수가 다시 창을 거꾸로 쥐며 내응하고, 평안북도 철산군의 가도에 진을 치고 있던 모문룡은 적의 후방을 유린해 주고, 몽골에선 군대 40만을 보내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웅정필은 “근거 없는 꿈 같은 소리”라 일축했지만, 왕화정은 작전을 감행하고선 공적을 단독으로 취할 욕심에 윗선에선 그의 구상을 반대했다는 사실을 오히려 널리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반목을 눈치챈 후금군이 공세에 나선 때, 배반하며 상대편에 붙은 쪽은 오히려 왕화정의 부하였던 손득공이었습니다. 병력 6만명만 주어지면 후금군을 일소할 수 있다 장담하던 왕화정은 막상 적이 밀려오자 반격 한 번을 변변히 해 내질 못했습니다. 목숨만 겨우 건져 도망쳐 온 왕화정을 보며 웅정필은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 조정은 패전의 죄를 물어 웅정필을 참형에 처했습니다. 왕화정은 당대의 권신이던 환관 위충현에게 뇌물을 바친 덕에 잠시나마 목숨을 부지했으나, 저지른 실책의 규모가 너무나도 원대했던 탓에 몇 년 지나지 않아 형장에 서는 신세를 아주 면치는 못했습니다.
물론 관료 둘을 처단한들 이미 잃은 땅이 명나라 영토로 되돌아올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왕조의 깃발이 영영 사라지는 때까지, 명은 그렇게 내준 산해관 동쪽을 다시 찾지 못했습니다. 지휘 책임이 있는 상관인 웅정필과 직접 사고를 친 왕화정 중 어느 쪽에 일을 그르친 잘못을 물어야 옳은지는 의견이 갈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가장 근원이 됐던 문제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성향이 완전히 다른 둘을 한 데 묶은 인사 배치였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조화’나 ‘상호 보완’을 추구한답시고, 완충재나 촉매 하나 없이 극명하게 다른 직원을 한 조직에 몰아넣는 인사 배치는, 그저 요행에 기대는 도박 수준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운 좋게 시너지가 터지는 상황도 아주 없을 것이라 그어 말할 수는 없긴 합니다만. 인간관계에서 상호 간에 성격이 도통 맞지 않는데도 어떻게든 절친이 되는 사례가 몇이나 있나를 헤아려 보면, 종국엔 화합과 갈등 중 어느 쪽으로 기울기 쉽다 짐작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겠습니까.
학문으로서 갈등관리를 연구하는 분들께서 상반되는 성품의 인물을 맞붙이는 인사 조치나 의도적인 조직 내 갈등 조장도 때론 필요하다 말하는 동시에, 갈등을 해소하거나 다스리는 방안 또한 다양하게 제시하는 것도 결국엔 그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불꽃도 잘 관리하며 적절히 이용할 때나 조리와 난방 등의 측면에서 삶을 윤택하게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지, 통제를 상실하는 순간 모두를 파괴하는 화마로 돌변하는 것과 흡사한 맥락이죠.
그렇기에 갈등이 예측되는 곳에는 그것을 다스리고 조절할 역량과 권한이 있는 중재자를 배치해, 분쟁의 조짐을 일찍이 감지하며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20년 11월 저서 ‘The Collaboration Effect: Overcoming Your Conflicts’를 발간한 갈등·분쟁 해결 전문 컨설턴트인 마이클 A. 그레고리는, “조직이 갈등을 내버려 두는 것은 직원 간에 다툼이 벌어져도 상관없다는 시그널을 주는 행위나 마찬가지다”며 “매니저는 잠재한 갈등의 싹을 발견하면 즉시 직원들에게 알리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상당수 조직에선 ‘리더’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 주길 기대받습니다만. 서구권, 특히 미국에서는 아예 중립적인 조정 전문가를 조직에 내재화해 두고서 분쟁을 관리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이른바 대안적분쟁해결(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라 일컫는 방식이죠.
1970년대 즈음 소송에 의존하는 전통적 분쟁 해결 방식의 대안으로 주목받은 ADR은, 1980년대에 이르러선 공적인 분야 전반에 걸쳐 널리 운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민간 기업 중에도 ADR을 받아들여 HRD 라인에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 불리는 사내 중재인을 두는 곳이 꽤 있고요.
퍼실리테이션 역량이 출중한 기업이라면 구성원이 대립하며 갈등을 빚는 상황은 오히려 조직의 발전을 도모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HR 컨설턴트이자 ‘The Balance Careers’의 저자인 수잔 M. 히스필드는 “퍼실리테이터는 리더가 아닌 가이드로서 중립적으로 토론을 진행하며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한다”면서 “퍼실리테이터는 분쟁 때문에 낭비되기 십상인 시간과 비용을 아껴 주는 것은 물론, 그룹이 효율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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