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자리를 고스톱 쳐서 땄나
“모든 교실에 방망이를 비치하도록 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이들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수단까지 써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2018년 4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인 에리의 ‘밀크릭 교육구’에서, 교육위원장인 윌리엄 홀이 관내 교사 500여명에게 16인치 사이즈 야구방망이를 지급한다 밝히며 남긴 말입니다.
이는 같은 해 2월 미국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벌어졌던 총기 난사 사건의 여파로 도입된 조치였습니다. 당시 범인이었던 니콜라스 크루즈는 무방비한 학생과 교직원들을 향해 일방적인 사격을 가했고, 그 결과 무려 17명이 사망하고 35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밀크릭 교육협회장인 존 캐치온은 “교사들의 무장을 지지한다, 야구방망이는 다른 어떤 것도 사용할 수 없는 순간에 유용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물론 정책 발표 직후부터 각계각층에선 성토와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힐난의 핵심은 역시나, 총구 앞에서 야구방망이 소지와 맨손 대응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존재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7세기 사람인 조선 영의정 허적마저도 당대에 이미 “군대 무기에서 조총(전장식 화승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린아이도 항우를 대적할 수 있게 하는 참으로 편리한 무기다”고 평한 바가 있을 정도로 총의 살상력은 둔기나 도검류를 비롯한 냉병기의 그것과 비교를 불허합니다. 현시대 군에서도 전장에서 소총 끝에 대검을 장착하고 맞붙는 백병전 상황이 도래한들, 결국 이기는 자는 약실 안에 총알이 남은 쪽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죠.
반세기 가까이 검술을 수련한 소드마스터마저도 기초군사훈련을 갓 수료한 육군 이병의 총격을 배겨낼 수 없는, 무예 숙련도를 불문하고 자동소총 앞에선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인 기회균등의 시대에, 나무 방망이 ‘따위’로 호신을 권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지적은 아니 나올 방도가 없었습니다.
밀크릭 교육위원회는 적절한 야구방망이 사용법을 교사 직무 교육 과정에 포함했다 해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거진 논란은 도통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죠. 설사 척준경이나 베이브 루스가 살아돌아 오더라도 화기 상대론 바람구멍 개통을 면치 못할 판이거늘, 몽둥이질 교육 몇 시간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리는 만무했으니까요.
미국 교육계 높으신 분들이 제시했던 ‘황당한 총기 범죄 대응 전략’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 3월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루마운틴 교육구에서 모든 교실에 5갤런(약 19리터) 사이즈 바구니에 돌멩이를 채워 두라는 지시를 내렸던 바가 있었습니다. 블루마운틴 교육구 소속인 데이비드 헬젤 감독관은 주 의회 하원 교육위원회 청문회에서 “총기로 무장한 침입자가 교실로 들어오려 하면 학생들이 돌팔매질을 하며 맞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헬젤은 “학생들이 책상 밑을 기어 다니는 것보다 이러한 조치가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 합당한 근거라곤 없는 그만의 생각일 따름이었습니다. 미국의 공공 안전 담당 행정조직인 미합중국 국토안보부가 공식 배포한 ‘Active Shooter: How to respond’ 매뉴얼에서는 오히려 총기 난사를 피해 달아나거나 숨는 대처를 우선 권하며, 맞서 싸울 각오는 범인이 매우 근접한 상태에서 회피가 불가할 때만 제한적으로 다지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학교 보안 컨설팅 회사인 전국학교안전보안서비스(National School Safety and Security Services)를 운영하는 케네스 트럼프는 “블루마운틴 교육구의 조치는 (학생들이)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는 비이성적이고도 비논리적인 방안이다”며 “감정적으론 그러한 대응 덕에 안전하다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전이 실제로 더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습니다.
논란이 확대되자 헬젤은 블루마운틴 교육구 페이스북을 통해 "돌멩이 바구니 조처와 관련해 전체 맥락을 생략한 오해가 퍼졌다, 블루마운틴 교육구 관내 학교에 보안장치를 추가로 설치할 구상도 했다”며 여론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고작 돌쪼가리를 쥐여 주고선 화기를 든 괴한을 제압할 계획을 진지하게 세웠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질 못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이 대부분은 윗선에서 얼토당토않은 지시나 방침을 ‘전략’이나 ‘전술’이라는 표현으로 치장해 가며 밀어붙이는 광경을 이따금 접하곤 합니다. 현장 사정을 무시한 탁상공론쯤은 필드 경험이 일천한 탓에 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칠 수 있으니 차라리 양반이지만요. 정상인이라면 웬만해선 현실과의 위화감을 느낄 법한 터무니없는 아이디어까지 느닷없이 획기적인 발상이라 추켜 올리며 강행하는 때도 은근히 드물지 않죠.
이를테면, 좀 예전 일이긴 합니다만, 중일전쟁 당시 관동군의 전술 중엔 작전참모였던 츠지 마사노부가 창안한 ‘대전차총검술’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병이 전차로 돌격해 관측창에 총검을 찔러 넣어 승무원을 살상하는 작전인데요. 당대만 해도 기동 중인 전차에선 승무원 중 누군가는 유리도 없는 관측창에 얼굴을 대고 있었는지라 그런 공격이 아주 불가한 것까진 아니었지만요. 대전차총검술의 진정한 문제는, 공격자가 전차의 직접 공격이나 엄호하는 보병의 사격을 피하며, 캐터필러(무한궤도)에 말려들지 않고서 본체에 무사히 올라타 적을 겨누는 과정 자체의 어려움을 전혀 고려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연히 군사 교육을 제대로 받은 군인이라면, 그것도 병사도 아닌 장교라면 누구라도 상식선에서 인지할 법한 문제였습니다. 입시나 취업으로 비유하자면 서류전형을 뚫기 위한 공부나 스펙 쌓기 과정은 일절 무시하고 면접 테크닉만 파고든 셈이니까요. 실전에선 이러한 접근법이 먹힐 리 없다는 것쯤이야 암만 변변찮은 교사나 강사라 할지라도 모를 수가 없죠. 하지만 수뇌부는 왜인지 눈에 뻔히 보이는 허점을 온통 무시하고선 대전차총검술을 정식 교리로 채택해 버립니다.
심지어 연합군 전차 대부분이 관측창에 방탄유리를 달거나 아예 잠망경 구조를 채택한 제2차 세계대전 중반기 이후로도 대전차총검술 교범은 거의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기껏해야 총검에 더해 폭발물까지 공격 수단으로 지급했을 뿐, 자살에 가까운 특공을 전술로 윤색해 일선 부대에 강요한 태도엔 변화가 없었습니다. 숱한 장병들의 목숨은 어처구니없는 전술에 휘말려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채 덧없이 스러질 따름이었죠.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길가에 난 풀을 뜯어 먹으며 전진하라’는, 전쟁사 희대의 명언을 배출한 ‘임팔 작전’은 또 어떻습니까.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버마 방면에서 인도로 진공하는 일본 육군 제15군을 지휘했던 무다구치 렌야 중장이 남긴 말인데요. 그는 작전 구상에 보급 계획이 도외시된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저런 답을 내놓으며 9만명 넘는 병력을 인도 국경 부근의 정글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사에서 명장으로 손꼽혔던 인물 중 보급을 등한시했던 지휘관은 기록에 남은 바가 없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한나라 건국 공로를 논하던 시절부터 이미 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운 장수들보다 후방에서 보급을 총괄한 소하의 공적을 높이 쳤을 정도로, 전쟁에 임하는 자라면 먹는 문제를 최우선으로 치는 것은 인류사에 유서 깊은 상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본 중의 기본을 무시한 작전 강행이 원활하게 진행될 가망 따윈 애초에 없었죠. 제15군은 결국 예하 병력 중 60%가 사상당하는 막대한 피해를 보고 말았습니다. 역시나 대부분은 보급과 수송 문제가 초래한 비전투 손실이었죠. 하지만 무다구치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입안했던 작전이 ‘전술’로 포장한 망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언은 이러하였습니다. “나는 잘못 없어, 부하들이 잘못했어!”
사고를 치기 전의 이력만 보면, 츠지나 무다구치나 그 시절 일본군 기준으론 나름 엘리트 대접을 받을 만은 했습니다. 이 둘은 모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육군대학교를 졸업한 이력의 소유자인데요. 당시 육군대학교에 입학 가능했던 인원은 장교 중 상위 10%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범한 실책은 감투를 잘못 쓴 무능력자라도 어지간해선 저지를까 싶은, 상식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었는데요.
한때나마 유능했던 인물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자 돌연 재능을 잃고선 헛소리를 뿌리는 기이한 현상은, 역시 ‘피터의 법칙’에 의거해 풀어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겠죠. 승진은 후보자의 진급 후 직책 관련한 능력보다는 현재 직무 수행 능력에 근거해 이루어지며, 결국 대다수는 무능해지는 순간까지 출세를 거듭하게 된다는 그 이론 말입니다. 물론 아무리 존귀하고 무거운 자리를 맡더라도 언제나 역량이 뒤처지는 법 없는 탁월한 인재도 세상 어딘가에 존재는 합니다만.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유형까진 아니니까요.
‘승자의 아집’ 측면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나름의 능력과 방식으로 상당한 성취를 거둬온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본인이 어떤 생각을 하건 일리와 승산이 있다 생각하기 쉬울 테고요. 그러다 보면 주변에서 제기하는 문제 따윈 ‘부족한 작자들의 기우’ 정도로 흘려듣기 일쑤겠죠. 설령 얕잡아 보는 타인의 염려 쪽이 훨씬 현실적이고 이치에 합당하더라도 말입니다.
실제로 독일의 주간신문인 디 차이트가 ‘노벨상이 수상자의 삶을 크게 바꿔 놓는다’며 상을 받은 인물의 변화 유형을 4가지로 분류해 소개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성격이 나빠진다’였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예시로 든 인물은 199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캐리 멀리스(DNA 복제 방식인 ‘중합 효소 연쇄 반응’ 개발)였는데요. 그는 다른 학자가 자기 학설을 비판하자 “노벨상을 받고 나서 반박하라”며 쏘아붙인 적이 있다 합니다.
멀리스는 사실 노벨상을 받기 전에도 연구 도중 환각제인 LSD를 흡입하는 등 모범이나 성실을 논하긴 어려운 양반이긴 했습니다만. 원래 그런 기질이 있던 인간이 과분한 영예까지 누리는 바람에 고질병이 더 심해졌다는 게 보도의 취지이긴 했지요. 남다른 지경에 이른 성공 경험은 사람을 도취하며 이성의 마비나 지나친 자만을 유발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지난 2020년엔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 발표도 있었습니다. ‘Journal of Management’에 게재된 미국 오리건 주립 대학교 연구팀의 ‘When and Why Narcissists Exhibit Greater Hindsight Bias and Less Perceived Learning’ 논문이 바로 그것인데요.
연구팀은 자기애 성향이 강할수록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고민하는 대신 '누구도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여긴다고 설명했습니다. 본인 탓에 일을 그르치더라도 자신의 판단 착오나 역량 부족만큼은 어떻게든 원인에서 배제해 버리는 셈이죠.
물론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보호적 사고를 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이 성향이 특히 강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간주하기 때문이죠. 타인의 조언에도 도통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뭘 어떻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까요?'라는 질문에도 '당시로선 최선이었기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고 반응할 뿐입니다.
연구팀은 “이러한 유형의 인물들은 엄청난 자신감을 무기로 자신의 과오는 남에게 돌리는 대신 타인의 성과를 가로채며,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조직에 큰 해를 끼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경쟁에서 밀려 도태될 듯한 두려움 또한, 지체 높은 분들이 무심코 주워 뱉은 말을 차마 실수나 생각 없는 발언이었다며 순순히 털어 놓진 못하고 막무가내로 우기게 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적 있는 고위직마저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무한경쟁 사회의 단면이라는 것이죠.
지난 2020년 시장 조사 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자영업자를 제외한 전국 만 16~65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5.2%는 요즘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했고, 56.3% 직장에서 오래 잘 버틸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응답했습니다.
우려의 근원은 ‘경쟁’이었습니다. 무려 83.3%가 요즘 직장생활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느끼고 있었습니다. 직급이 높을수록 공포는 깊었습니다. 실제로 요즘은 선배들보다 실력 있는 신입사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생각한다는 답변이 62.7%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풍토에선 ‘실패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만연하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입니다. 응답 중 73.7%가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으며, 한국 사회에 실패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16.8%)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인물일지라도 수많은 선택을 하다 보면 실수나 지식 부족으로 인해 때론 엉뚱한 길을 짚어 내기 마련이고요. 두 번의 기회는 없는 잔혹한 시대에 유능한 부하들이 뒤를 바짝 쫓기까지 한다면, 본인마저 이내 아차 싶을 헛소리를 했더라도 차라리 억지를 쓰는 편이 섣불리 잘못을 자인하는 ‘확정적 자충수’보단 처신 면에서 아무래도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자연히 ‘똑똑한 상사’라 할지라도 잘못된 결정을 애써 합리화하는 ‘멍청한 소리’를 입에 담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다만 이러한 사정은 어디까지나 윗분들의 입장이고요. 아무튼 상사가 명백하게 불합리한 주장을 무작정 고집할 때 부하들도 그것을 내내 참고서 받아내 줄지는 별개 문제이긴 합니다. 이직이 활성화된 요즘 같은 시대엔 ‘떠난다’는 선택지도 고려에 넣기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죠.
사람인이 지난 2019년 3월 직장인 3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중 81%는 ‘일vs사람’ 중 퇴사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이라 답했으며, 상사와의 갈등(79.1%)이 후배와의 갈등보다 4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갈등을 겪는 이유로는 ‘업무 분장 등에서 자기에게만 유리한 비합리적인 결정이 잦음’(44%·복수 응답)과 ‘자기 경험만을 내세우는 권위적인 태도’(40.4%)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상사와의 갈등은 ‘스트레스 증가’(80.7%·복수 응답)는 물론 ‘퇴사 및 이직 결심’(53.5%)으로 이어지며, 실제로 이 때문에 퇴사나 이직을 경험한 사람도 54.4%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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