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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lip Apr 05. 2021

Boy's talk

The Talk | 가끔씩 오가는 질펀한 이야기들, 그리고 말장난

 가끔씩 오가는 질펀한 이야기들. 이미 유부인 내 친구들에겐 다들 말 못 할 고민들이 하나씩 있다. 각자가 가진 섹슈얼리티로 인한 문제, 혹은 섹슈얼 어빌리티로 인한 문제. 가능과 불가능을 놓고 좋은 게 좋은 건지, 혹은 좋기 위해 좋은 건지 모를, 기능과 가능에 대한 언급마저 가미된 관계에 대한 매우 직선적인 이야기들. 여과 없는 유부들의 이야길 듣는 일이 이미 익숙한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표정은 흡사 에일리언을 처음으로 목격한 시고니 위버의 표정과 같다. 어이, 외계인. 아직 자유의 몸인 너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단다, 얘야. 그러니- 너 어디 문제 있니. 그런가- 이젠 좀 어려울 것 같긴 해, 얘들아. 나는 그저 웃음 지을 뿐.


 나의 리비도는 꽤나 높다. 삶의 꽤 오랜 시간을 모종의 결핍을 채우고픈 마음으로 사람들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지내왔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하였을 땐 늘 쉽게 불이 붙곤 하였다. 못난 애들 중 그나마 잘생긴 축에 속하였-다고 자부하-던 그 시절, 금사빠의 정석으로 유명하였던 만큼이나 물불 가리지 않고 그네들에게 접근하였다. (모두들 예상하고 있겠지만) 그리곤 차이길 반복하였다. 너희도 알잖니, 얘들아- 내가 그래도 팔푼이는 아니었단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해졌다. 삶의 외연 또한 넓어져 갔다. 부족하진 않았던 듯하다. 때론 쉽기도, 때론 어렵기도 하였으나 그마저도 즐거웠다. 백반 위에 흩뿌려진 MSG 덩어리와 같은 부조화를 경험한 게 아마도 그즈음이었던 듯하다. 무색무취, 그러나 매우 자극적인 중독의 기억. 오랜 시간 알아온, 너무나 익숙하였던 한 사람이 내 뺨을 날카로이 햙퀴고 지나갔다. 피가 나는지도 몰랐다. 얘들아- 가끔씩 내가 그랬지. 진짜 나쁜 년은 잘 연마된 면도칼 같아. 상처가 난 줄도 몰랐는데 난 어느덧 피를 흘리고 있더라고. 이 곳, 부산에 고이 묻어둔 기억들과 함께.  


 나는 지금껏 내 뺨에 남겨진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나의 20대 후반, 뜨내기의 삶을 택하였던 그 무렵엔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였다. 그리곤 30대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깨닫게 된다. 표피의 상처가 마음 깊숙한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음을. 홀로 정신적으로 거세를 하곤 내 근처에 머물러 주었던 수많은 이들을 놓고 주저하였다. 혹은 사회적으로 거세를 당한 마냥 온갖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의 목을 옥죄었다. 그리고 지척의 이들의 평을 빌리자면, 꼭 화학적으로 거세당한 이들 마냥 나는 그렇게 움츠러들어 있단다. 얘들아- 나에게서 남성성의 말로를 보았다고? 음, 그래.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

 

 불능에 이르러서야 오랜 꿈을 제대로 음미할 줄 알게 되었다. 영원인 줄 알았으나 찰나에 지나지 않았던 내 어린날의 춘몽, 곱씹어봐도 달기만 했던 그 끝맛이 매우 쓰고 짜다. 항상 담백한 줄로만 기억했던 그 풋사랑 맛이 그렇게 자극적이었더라. 얘들아- 과학적 근거는 없다지만 MSG는 몸에 안 좋은 것 같아. 분명 그럴 거야.  


 문득 부정(不定)을 떠올린다. 어떠한 경우에도 성립하는 미지수 x와 y를 갖지 아니하는 불능(不能), 그 대척점에 존재하는 함수적 의미의 부정(不定). 굳이 x와 y를 정의하지 않아도 능(能)한 x와 y가 수없이 많아 굳이 만족하는 해를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견지에서, 얘들아- 특히 용불용설을 들먹이는 너. 나는 불능이 아니라 부정인 걸로 할게.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부적절한 의미의 부정 말고, 아직 쌍으로 존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잠깐, 한 가지 이야기하는 걸 잊을 뻔했어. 부정의 경우에도 결국 특정 x를 만족하는 y는 단 하나여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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