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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21. 2022

6월 21일 구선우의 하루

이상한 모임

“같이 출근할 사람을 모집합니다.”



며칠 전 인터넷을 하다가 이런 기이한 모임 모집글을 보게 되었다. 출근을 왜 같이 한다는 거지? 처음에는 카풀을 모집하는 글인 줄 알았다. 그래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글의 내용을 자세히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모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1. 매일 아침 (물론 평일입니다.) 오전 8시에 OO역 인근 카페에서 모입니다.

2. 지각을 해도 상관은 없지만 2번 이상 이유 없는 지각 시에는 모임에서 제외됩니다.

3. 카페에 모여 그저 수다를 떨면 됩니다. 어제 있었던 일, 오늘 할 일, 아니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4. 수다를 떠는 시간은 1시간 정도이지만 그전에 가도 상관없습니다. 얼굴 도장만 찍고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5. 이성과의 만남이나 영업을 위해서 오시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수다를 떠는 모임입니다.

6.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아침’ 클럽은 여러분을 위해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이런 식의 규칙이 있었다. 내가 봤을 때는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가 분명했다. 아니면 영화 속에서 나오는 장기 밀매라던가…. 이런 미친 글이 올라오는 걸 보니 세상이 멸망할 때가 머지않은 것 같다.


그렇게 무시하려고 했지만 며칠 동안 모임이 계속 생각났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심심한데 한 번 가볼까? 게다가 OO역은 우리 회사 바로 근처에 있는 곳이잖아? 혹시 회사에 이 모임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볼까?


며칠 동안 고민하던 나는 모임에 한번 연락해보기로 했다.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OO역은 굉장히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이상한 짓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모임장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니 그는 매일 아침 8시까지 오라는 메시지와 함께 주의 사항을 몇 개 보냈다. 모집글에 있는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모임장은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가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모임은 왜 하는 것일까?


아침 6시에 일어난 나는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9시까지 출근이라 8시에 집에서 나가면 됐지만 이 이상한 모임 때문에 일찍 일어나도 빨리 준비해야 했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니 7시 40분쯤 OO역에 도착했다. 일찍 가면 뻘쭘할 것 같아 근처에서 담배를 폈다. 막상 가려고 하니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나 혼자 있으면 어떡하지? 정말 다단 계면 어떻게 빠져나가지? 아니 다단계보다 사이 비종 교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담배만 두 개 피 연속으로 피우면서 나는 긴장을 낮추려고 했다. 모임장이라는 사람이 지정한 장소는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던 카페였다.


그래, 유동인구도 많은 곳인데 설마 무슨 일이 나겠어?


7시 55분쯤, 나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서 모임장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상해 보이는 무리가 7명쯤 모인 테이블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 7명이라니…. 나처럼 정신없는 사람이 무려 6명이 더 있단 말인가?


나는 굉장히 어색해하면서 무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초면인가 싶었다.


8시가 되니 모임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손뼉을 치자,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8시 00분 00초.. 시간은 굉장히 정확했다. 나는 일단 사람들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들은 서로 알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 대해서는 그리 궁금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8시 1분. 또 모임장이 손뼉을 쳤다. 그러니 사람들은 모임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이곳은 종교 집단 모임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칼같이 움직일 수가 있나….



“여러분 안녕하세요. 별다른 이름도 없는 아침 모임입니다. 어제 다들 무사히 퇴근하셨나요? 오늘 오랜만에 새로운 분도 오셨는데 저희 모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번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자, 한번 인사해주세요. 이름은 말하지 마시고요.”


모임장은 손바닥으로 위로 하며 나를 가리켰다. 나는 일어나서 내 소개를 하려고 했지만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앉아서 해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의자에 다시 앉아 그들에게 다시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아 이거 말하면 안 된다고 했죠. 하는 일도 말 안 해야 하나요?


나는 모임장에게 물었다. 모임장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하하.. 말하면 안 되나 보군요. 이 근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이 모임을 알게 되었고 아직 뭐하는 모임인지 모르지만 일단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어색해하며 서둘러 말을 마쳤다. 으... 지금이라도 바쁜 일이 있어서 일어난다고 할까?


“반가워요. 우리 자주 만나서 이야기 나누면 좋겠네요.”


내 옆에 있던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푸근한 인상으로 약간 학자 같은 타입이었다. 나는 눈웃음으로 그의 말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자아.., 여기는 아침 모임이라고 해요. 이름도 없고, 하는 것도 없는 것이죠. 이 모임의 목적은 크게 2가지예요. 먼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죠. 물론 8시가 출근 시간인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8시에 집에서 출발하거나 아직 출발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다들 출근 시간은 전혀 다르지만 아침 일찍 모여 조금이라도 부지런한 루틴을 만들기 목적이 있습니다.”



전에 듣기로 모임 중에는 서로 아침에 깨워주는 곳도 있다는데 그걸 생각하면 이 모임의 명분은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두 번째는…. 여기 대부분은 아마 직장인이실 텐데, 뭐 꼭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상관없고요. 여하튼 이곳에 와서 어제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거나 좋은 일을 공유하거나, 서로 위로도 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제일 크고요. 저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이 있을 때, 비슷한 동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이런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충분히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적어도 저는 다른 뜻으로 모임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냥 출근하기 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같이 커피 마시고 쿨하게 사라지는 모임입니다. 새로 오신 분도 이곳을 편하게 이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모임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모임이 내가 생각한 곳이랑은 많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 아침에 모여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위로를 얻는다는 생각이 굉장히 순진한 것 같으면서도 신기한 발상이었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오신지 조금 된 분들이에요. 통성명은 안 해도 그래도 친밀해진 분들도 계신데요. 그래도 새로 끼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아… 이제 편하게 다들 돌아가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새로 오신 분도 있으니 이 분이 적응할 수 있게 다들 조금만 배려를 해봅시다.”



모임장은 또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다음 행동을 유도했다. 저 박수 소리만 아니면 꽤나 괜찮은 모임 같아 보일 텐데 말이다. 저 박수가 문제다. 저 박수가 모든 의도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어제, 전에 말씀드린 과장님께 용기 내서 한마디 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조언하신 대로 정말 시원하게 제 안에 있는 말을 말씀드렸습니다. 과장님이 화를 내거나 제 말을 무시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과장님이 제 말을 묵묵히 듣고 계시더라고요. 말없이 담배만 태우시더니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하셨습니다. 내가 왜 당신이랑 먹어야 해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참았습니다. 하하….”


내 옆에 있던 남자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직장에서 힘든 일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가 말하자 사람들은 그의 말을 굉장히 집중하게 들으면서 이야기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몇몇은 남자에게 추가로 조언을 했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해서 위로를 얻는 것일까?


“아… 저는 오늘 퇴사한다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오늘 잘 이야기할 수 있겠죠?”


내 옆 옆에 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퇴사를 하고 싶던 그녀는 최근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퇴사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옆의 남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에 대해 편하게 답변을 해줬다.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한 사람당 5분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먼저 가봐야 한다며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말이 끝나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시간은 어느새 8시 50분이 되었다.


“저는…. 음….. 하하 그냥 평범한데요. 어….. 저 혹시 저는 오늘은 듣기만 하고 다음에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사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나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모든 것이 나를 드러내는 말 같아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물론이죠.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그냥 근처에서 일하는 형, 누나, 동생, 혹은 그 위의 분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본인 이야기를 하기 어려우시면 꼭 안 하셔도 됩니다.”


모임장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잠시 숙였다.



“자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할 말 있으신 분은 내일 더 말씀해 주세요. 자아! 그러면 여러분, 오늘 퇴근 잘하십시오.”



“퇴근 잘하십시오”



모임장은 이번에도 손뼉을 치면서 모임을 마무리 지었고 ‘퇴근을 잘하라’는 특이한 인사말을 남겼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따라 했는데 기이한 모습이었다.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묘하게 사이비 종교스러운 면모가 있어 거부감이 들었다.



인사를 마친 사람들은 각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가 각자의 일터로 향했다. 카페 테이블에는 모임장과 나뿐이었다.



“많이 어색하시죠? 다들 그랬어요. 저도 그랬고. 이상하다 생각하시면 안 나오셔도 됩니다. 저희 이상한 약 팔거나 누구 믿으라고 하는 사람들 아닙니다. 적어도 그런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임장은 내 마음을 정확히 읽고 나를 안심시켰다.


“아무튼 내일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평범한 직장인이라 이만 회사로 사라져야겠네요. 그러면 오늘도 퇴근 잘하십시오!”


“아…네 안녕히 가세요.”


모임장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에게 그 기이한 작별 인사를 시도했다. 나는 평범하게 그에게 인사를 고했다.


카페는 여전히 북적였다. 하지만 우리가 있던 테이블은 조용해졌다. 도대체 이 모임은 뭐하는 곳일까? 위로를 준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모임장의 말대로 이곳이 이상한 곳이 아닐 수는 있지만 아직 내 눈에는 이상한 곳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다시 안 나오고 싶은 생각이 더 들지만 그래도 내일은 한번 더 나와봐야겠다. 나와서 마지막으로 판단하고 이 이상한 모임을 빠져나가던가 해야겠다.


그렇게 나의 첫 ‘아침’ 모임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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