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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20. 2022

6월 20일 김지유의 하루

반찬 배달

결혼을 한 후 우리 부부는 집에서 밥을 해 먹는 날이 드물었다. 자취 한번 해본 적 없이 결혼한 우리는 음식이 영 소질이 없었다. 물론 남편이나 나나 큰 마음먹고 인터넷에서 조리법을 찾아봐 음식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실패했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직접 밥을 해 먹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또한 서로 워낙 바쁘다 보니 회사에서 저녁까지 먹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은 서로 챙겨 먹지 않고 점심은 회사, 그리고 저녁도 회사…. 우리 부부가 평일에 얼굴을 보고 밥을 먹을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주말이 되어도 우리는 음식을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찾거나 배달 음식으로 때우는 날이 더 많았다. 결국 음식 솜씨는 키울 새도 없이 계속 제자리였다. 어쩌다 다시 요리를 하면 결과에 실망하고 다시 배달과 외식에 의존했다. 그렇게 우리는 바깥 음식에 더욱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어느 날 가계부를 정리하다 보니 식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었다. 아이가 없기 때문에 부부의 월급으로 여유롭게 살 수는 있었지만 식비의 비중은 너무 높았다. 나는 이를 조금은 줄이고 싶었고 거의 유일한 방법은 주말에라도 음식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이나 나나 서로의 요리 솜씨를 믿지 못했다.

다른 대안을 찾다 보니 반찬을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매주 원하는 반찬을 골라 담아 원하는 날짜에 받을 수 있는 서비스였다. 평일 저녁은 거의 회사에서 먹어서 이런 걸 주문해봤자 쓸모없을 것이라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야근도 야근이지만 집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밖에서 먹는 경향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로 아무리 음식은 못해도 적어도 밥은 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을 시켜놓고 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적어도 한 끼는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토요일에 배송을 받아 주말 밥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남편은 계속 반대했지만 나는 서비스 후기를 찾아보고 꽤나 괜찮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남편을 설득했고 남편은 결국 나의 말을 듣기로 했다. 일단 월요일에 음식이 도착하는 일정으로 반찬을 신청해봤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 첫 반찬이 도착했다. 그날은 모처럼 부부가 일찍 퇴근한 날이었다. 남편은 밥을 준비했고 나는 반찬을 몇 개 뜯어 상을 차렸다. 남이 해준 반찬이지만 그럴싸한 집밥이 완성되었다. 반찬 몇 개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보니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이런 반찬을 왜 시키냐고 투덜거리던 남편도 몇 개 집어먹더니 음식 맛이 괜찮다고 칭찬했다. 그날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평일 저녁을 즐겼다.

한 달 동안만 시키자던 반찬 배달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매주 월요일, 반찬이 도착하면 남편은 일찍 일어나 저녁에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반찬을 소분했다. 나는 밥을 미리 올려놓고 출근 준비를 했다. 가끔 남편은 반찬을 도시락통에 담아 점심으로 먹기도 했다. 덕분에 반찬은 항상 모자랐다. 그래서 조금 금액을 늘려 반찬을 더 시켰다. 나중에는 정작 주말에는 먹을 반찬이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국 외식을 또 해야 했지만 언젠가부터 남편은 집밥이 더 좋은지 동네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더 사 오거나 스스로 요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보고 나도 덩달아 요리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가벼운 반찬 배달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우리 부부에게 끼친 영향은 꽤나 굉장했다.

오늘은 새로운 반찬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항상 시키는 메뉴는 불고기와 오징어 볶음이었다. 남편과 나의 최애 메뉴였다. 여기에 밑반찬류는 항상 변화를 줬다. 어떤 주에는 나물류로 도배한 적이 있었고 어떤 주는 고기 메뉴에, 어떤 주는 버섯류에 집중한 적이 있었다. 이번의 선택은 낫지젓과 느타리버섯, 구운 어묵, 연근 조림, 장조림 등이었다. 사실 밖에서 먹는 것에 비하면 아쉬운 반찬들이었지만 그래도 집에서 가볍게 먹기에는 부담 없는 반찬들이었다. 나나 남편도 의외로 이런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남편은 이제 지금 먹는 반찬들이 지겨워졌는지 새로운 반찬 가게 몇 개를 나에게 보여주면 다음에는 이곳에서 시켜보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내가 처음 시킬 때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는데 이제는 꽤나 더 그럴싸한 반찬을 보내주는 곳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남편이 추천한 가게 중에는 집에서 꽤나 가까운 곳도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배달이 아니라 퇴근하는 길이나 금요일 저녁에 가서 주문해도 될 것 같다. 다음에는 반찬을 배달하는 곳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반찬 배달로 우리 부부는 끼니를 때우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항상 시켜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 부부는 요리를 해서 밥을 먹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언젠가 태어날 자식이나 그들의 친구, 그리고 언젠가 그들의 가족이 될 사람들에게 맛있게 밥을 먹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그리고 조금은 여유로워질 때까지, 우리 부부는 반찬 배달 서비스에 잠시 더 의지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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