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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19. 2022

6월 19일 송윤민의 하루

어느 LP바 이야기

대학교 때부터 친한 형은 2년 전에 가게를 열었다. 한때 누구보다 위대한 뮤지션이 되고 싶었던 형은 오랜 기간 방황한 끝에 자신만의 LP바를 차리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일을 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었다. 

하필이면 코로나 시국에 LP바를 연 형의 가게에는 언제나 손님이 없었다. 하지만 형은 꾸준히 버텼다. 형은 가난한 락커는 아니었다. 형의 집은 꽤나 잘 살았는데 부모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철부지 아들이 원하는 가게 정도는 차려줄 수 있을 정도였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런 형이 부러웠다. 매일 아침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 때려치우고 싶은 욕구를 작은 월급 때문에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 우리와는 분명 다른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말이면 형의 LP바로 갔다. 가게 매출을 올려주기 위한다고 갔지만 사실 형의 가게처럼 부담 없이 술을 즐길 수 있는 가게를 찾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형이 선곡하는 음악들은 모두 다 좋았다. LP바였지만 형은 절대 내 신청곡을 틀어주지 않았다. 내가 틀어달라고 하는 노래는 다 구리다나 뭐라나. 하지만 형이 대신 추천해주는 곡들은 모두 좋았기 때문에 나는 형에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형은 나 말고도 손님들이 와도 신청곡이 별로면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틀어줬다. 그런 괴팍한 주인장의 취향을 좋아하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이상한 사람이라면서 가게를 한 번만 오고 다시는 오지 않는 손님들도 있었다. 이 형은 분명 단골을 만드는 데는 서툰 사람이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형은 그랬다. 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형을 무조건 따랐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두 번 다시 형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전자 쪽이었다.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형이었지만 묘하게 따뜻한 구석이 있는 형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 때부터 형과 노는 것이 좋았다. 

LP바였지만 형은 LP 말고도 카세트테이프나 CD로 노래를 틀어주곤 했다. 바를 가득 메운 CD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LP바는 거의 모두 형이 직접 모은 소장품이었다. 가게를 오픈한다고 어느 망한 LP바에서 잔뜩 가져온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형이 직접 고른 것들이었다. 

형의 음악을 듣는 취향은 CD에서 멈춰있었다. 형은 CD로 음악을 듣는 것까지만 인정했다. 그 외에 MP3나 스트리밍 같은 것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수많은 곡을 원할 때 찾을 수 있다고 형에게 말했지만 그는 그렇게 음악을 듣는 것은 진짜 리스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형은 MP3나 스트리밍을 듣지 않았다. 처음 나왔을 때 몇 번 들어봤지만 자신이 원하는 곡만 찾아서 듣는 것이 우리가 너무 편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그래서 형은 MP3플레이어를 사본 적도 없고 지금도 스마트폰으로 음악은 전혀 듣지 않고 있다. 

형은 음악을 듣는 기기에 대해서만 민감할 뿐 음악 장르에 있어서는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1920년대 음악부터 요즘 아이돌 음악까지 모두 좋아했다. 아주 오래전 클래식 음악도 형은 거부감이 없었다. 국악이나 제3세계 음악까진 형은 가리는 음악이 없었다. 그래서 형이 가진 음악 지식은 굉장히 풍부했다. 물론 아주 깊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 가끔 틀리는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처럼 음악을 그저 듣는 용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것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도 나는 형네 가게로 갔다. 가게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형은 나를 보더니 비싼 술과 안주나 시키라고 했다. 나는 형에게 나처럼 형을 챙겨주는 손님이 어딨냐고 반박했지만 형은 그럴 거면 혼자 오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랑 오라고 했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던 도중 형은 익숙한 듯 나를 위한 음악을 하나 틀어줬다. 꽤나 옛날 느낌의 사운드인데 기분을 좋게 하는 트럼펫 연주가 뒷배경으로 깔리는 노래였다. 그리고 옛날 스타일의 갱스터 랩이 함께 흘러나왔다. 오래된 힙합 음악 같았는데 참 마음에 드는 곡이었다. 이렇게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형은 술과 함께 맛있는 안주를 나에게 가져다준다. 그리고 형은 내 자리에 앉아 이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를 설명해준다.


형이 들려준 곡은 구루의 “Loungin’”이라는 노래였다. 그리고 이런 음악을 재즈 힙합이라고 한다고 형은 설명했다. 형이 들려준 자세한 이야기는 이랬다.


재즈 힙합이라는 장르는 실험적인 장르로 마일스 데이비, 허비 행콕 등이 시도하던 음악이었다. 단순히 재즈 선율을 샘플링하여 랩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 재즈 연주가와 함께 하는 경우도 많았다. 구루는 그런 노력을 평생 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갱스타는 데뷔 초부터 재즈 힙합을 시도하던 그룹이 있었는데 이들의 데뷔 싱글인 “Words I Manifest”라는 곡은 “A Night In Tunisa’라는 재즈 명곡을 샘플링하여 이목을 끌었다. 구루는 이 갱스타의 멤버였고 1993년 재즈 힙합 프로젝트인 [Jazzmatazz] 시리즈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첫 번째 앨범인 이른바 [Vol.1]은 명반으로 알려져 있는데 재즈 기타리스트 로니 조던, 트럼페터 도널드 버드, 색소포니스트 코트니 파인, 개리 바너클 같은 당시 유명한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이 중 형이 들려준 노래는 “Loungin’”이라는 곡으로 우리말로 하면 “어슬렁거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멋진 트럼펫 연주와 함께 낮게 깔리는 구루의 랩이 묘하게 어울렸다. 지금 내가 있는 LP바에서  마치 담배 하나를 멋들어지게 피면서 음악과 술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가 났다. 물론 지금은 실내에서 담배를 필수는 없지만 90년대에는 충분히 가능했을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나는 몇 번이고 이 노래를 듣고 싶어서 형에게 더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형은 이 앨범의 다른 곡도 좋다며 이제는 다른 곡을 들려줬다. 하여튼 형은 절대 내 신청곡을 틀어주는 법이 없었다. 

다른 노래들도 매우 좋았다. 앨범은 어느 재즈 클럽에서 구루가 1시간 동안 토크를 하고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노래 하나하나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앨범의 콘셉트를 시종일관 유지했다. 왜 형이 이 앨범이 명반이라 부르는지를 알 수 있었다. 형은 노래를 들으며 구루의 다음 앨범들이 이 앨범만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Jazzmatazz] 시리즈는 시리즈라는 네이밍에 걸맞지 않게 전작을 능가하는 경우가 없었고 구루마저 2010년에 사망하면서 시리즈는 [Vol.4 : The Hip-Hop Jazz Messeanger : Back to the Future”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재즈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것은 첫 번째 앨범뿐이었다. 형은 구루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래도 언젠가는 이를 능가하는 앨범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도 괜히 구루의 음악을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워졌다. 


형이 구루에 대해서 더 설명하고 있을 때 마침내 가게에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형은 다른 음악으로 바꾸며 나를 위한 청음회를 서둘러 끝마쳤다. 손님들은 형에게 신청곡을 줬고 형은 그들의 선곡이 마음에 들었는지 군말 없이 노래를 틀어줬다. 그들이 신청한 곡은 클래식 락이었는데 오늘 나는 구루의 앨범에 취해서 그 음악들이 그리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형은 싫어하겠지만 집에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구루의 음악을 더 듣고 싶다. 

그러고 보니 “Loungin’”이라는 노래가 나와 제법 어울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이 가게에서 “어슬렁” 거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술을 마시고 손님들이 제법 온 것을 확인한 나는 형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형의 가게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가며 나는 “Loungin’”을 다시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골목을 누비니 마치 90년대의 갱스터 래퍼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좋은 곡을 추천해준 형에게 감사하면서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Loungin', loungin', mellow out and just loungin'

어슬렁거리지, 어슬렁거리지, 난 느긋하게 어슬렁거릴 뿐이지



https://www.youtube.com/watch?v=j_tBymadv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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