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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18. 2022

6월 18일의 성동현의 하루

내가 좋아하는 과자

어린 시절 우리 집 선반에 있는 과자는 건빵뿐이었다. 다른 애들이 먹는 과자 같은 것은 잘 먹지 못했고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과자는 오직 건빵이었다. 

부모님께서 내가 과자를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건빵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TV를 보실 때면 꼭 건빵과 우유를 드셨다. 나도 아빠를 따라서 건빵을 먹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너무 목도 마르고 그다지 맛있지 않아 몇 개 집어먹고 말았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부터 건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나 스스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건빵을 사서 선반을 채웠다. 공부를 할 때도 아버지처럼 건빵과 우유를 간식 삼아 먹었고 TV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소파에서 나란히 건빵과 우유를 먹고 있는 아버지와 나를 보고 그 모습이 신기하다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군대에 가서도 부식으로 나오는 건빵을 굉장히 좋아했다. 짬이 좀 찬 선임들은 건빵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성격이 나쁜 어떤 선임은 자신의 건빵까지 주고 물 없이 입에 건빵을 몇 개까지 넣으라고 강요한 적도 있었다. 그때 너무 목이 막혀서 죽을 뻔했는데 다행히 그 선임보다 선임인 병장이 ‘너 뭐하냐!’라며 그 선임을 때린 덕분에 겨우 살아났다. 이른바 건빵 가혹행위였는데 두 번 다시 그런 미친놈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건빵을 먹을 일이 많이 없어졌다. 과자를 워낙 좋아하는 대표의 성향 덕분에 회사 탕비실에는 언제나 과자가 넉넉히 채워져 있었는데 그때마다 건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나 말고 건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근무하다 보면 입이 심심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건빵을 사 올 필요는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과자를 먹는 날이 많아졌다. 

지금 자취를 하고 있는 곳에서도 건빵을 두지는 않았다. 그리 넓지 않은 곳이라 과자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건빵은 물론 과자 같은 것을 사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주말에는 집을 비우고 데이트를 했기 때문에 과자를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건빵은 내가 한때 좋아하던 과자 중 하나가 되었다. 

얼마 전 평소처럼 인터넷을 하다가 건빵을 검색하게 되었다. 갑자기 건빵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1KG짜리 건빵을 파는 곳을 알게 되었다. 가격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주문을 하게 되었다. 1KG이나 집에서 먹을까 싶어서 취소하려다가 그냥 말았다. 오랜만에 건빵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집에 오니 이 1KG짜리 건빵이 집 앞에 있었다. 막상 보니 후회가 될 정도로 많은 건빵이 있었다.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남은 것은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소량의 건빵을 꺼내 그릇에 옮겨 담았다.  건빵은 역시나 맛이 있었다. 게다가 튀김 건빵이라 목이 그렇게 마르지도 않았다. 안주거리로 딱 좋을 것 같았다. 

일단 먹을 수 있는 만큼 더 덜고 나는 보관할 곳을 찾았다. 엄마가 전에 보내주셨던 반찬을 담았던 반찬통 몇 개가 보였다. 일단 나는 반찬통에 담을 수 있는 만큼 건빵을 옮겨 담았다. 반찬통을 다 썼는데도 여전히 건빵이 남아있었다. 아깝지만 남은 건빵은 어떻게든 먹거나 버려야 할 것 같다. 

우선 오늘 먹을 건빵과 함께 냉장고에 보관해둔 맥주를 한 캔 챙겼다. 그리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며 안주 삼아 건빵과 함께 즐겼다. 먹는 하나하나마다 살이 찔 것 같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먹으니 괜찮았다. 나는 아무래도 회사에서 자주 먹는 초콜릿이나 다른 형태의 과자보다 건빵이 더 맛있는 것 같다. 특별한 기교 없이 만들고 어딘가 못나 보이는 맛을 가진 건빵이 나는 정이 간다. 사실 튀긴 건빵보다는 기본 건빵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이 역시 훌륭하다. 굉장히 많이 산 덕분에 모처럼 간식으로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건빵이 문제였다. 일단 어떻게든 입구를 묶어서 건빵이 있는 비닐을 봉인했지만 오래 못 갈 것 같다. 내가 먹는 양에 비해 너무 많이 시킨 게 화근이었다. 건빵 먹고 싶으면 그냥 편의점 가서 조그만 거 사 올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좁은 집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어서 어떻게든 먹어서 해치워야겠다. 이런 것들을 인간 사료라고 하는데 정말로 나는 당분간 건빵만 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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