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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16. 2022

6월 16일 한성철의 하루

라면

어젯밤부터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잠을 자려고 집 창문을 열었는데 라면 냄새가 너무 맛있게 났다. 순간 라면을 뜯어 끓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이미 늦었었다. 이 냄새를 풍기는 누군가는 밤에 라면을 먹고 있다지만 나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막상 라면을 먹으면 후회할 것이 뻔했다. 속은 안 좋아 잠자는 내내 힘들어할 것이다. 또한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라면의 유혹을 뿌리치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아침 식사로 라면을 먹기로 하고 선반에 놓인 라면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딱 하나 있었는데 유통기한이 벌써 1년이 지났다. 잠시 먹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집에서 라면을 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라면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밖에서 라면을 먹자.


나는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고작 라면 한 그릇이었지만 어제부터 먹고 싶은 충동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우리 회사 근처에는 굉장히 낡은 분식집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동네 슈퍼인데 라면을 끓여주는 곳이었다. 이름은 슈퍼인데 과자 같은 것은 전혀 팔지 않고 오직 라면만 파는 곳이었다. 라면의 종류는 제법 다양했다. 일반 라면부터 짜장, 짬뽕 라면, 짜파구리까지…. 나름 취향껏 고를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라면을 시키면 공깃밥을 같이 줬는데 이 모든 가격이 3500원 정도였다. 원래는 더 저렴했지만 버티다가 최근에 500원 정도 가격이 올랐다. 그래도 다른 분식집에 비해 저렴한 편이라서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점심 때는 물론 아침, 저녁 장사도 하는 곳이었다. 

라면 맛은 다른 분식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나는 종종 아침 식사를 이곳에서 했다. 낡은 가게에서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와 라면이 제법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름 저렴한 가격에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신 날이면 꼭 이곳을 들렀다. 


오늘도 나는 낡은 분식집으로 갔다. 사장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밝게 웃어주셨고 내가 특별히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내가 먹을 것을 끓여주셨다. 내가 항상 먹는 것은 일반 라면이었기 때문에 사장님은 가끔 더 비싼 라면 좀 먹으라고 농담도 하셨다. 비싼 것이라고 해봤자 겨우 500원 정도 차이뿐이었다. 

이곳 라면은 기본적으로 계란과 떡이 항상 들어갔다. 보통 분식집에서는 떡라면을 따로 팔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만약 떡이 싫다면 뺄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가격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이곳은 치즈 라면은 팔지 않았다. 치즈를 공짜로 주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돈을 받기에도 애매하다는 것이 사장님의 논리였다. 사실 치즈 한 장을 공짜로 주는 것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 그랬으면 정말 남는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사장님이 손님들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가 가장 선호하는 형태로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나의 경우는 굉장히 꼬들꼬들한 라면이었다. 손님이 제법 많은 곳인데 이렇게 단골들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서비스 차원에서 나오는 공깃밥은 부족함 없이 한 그릇을 가득 채워주셨다. 덕분에 아침을 굉장히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원래 사장님은 공깃밥 추가에 500원 정도만 받고 있었는데 손님들이 라면만 먹고 가는 게 안쓰러워서 적당히 가격에 버무려서 라면의 서비스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다른 가게에 비해 저렴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물가가 올라 자기 가게가 가장 저렴한 분식집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맛있게 라면 한 끼를 먹고 사장님에게 돈을 드렸다. 나는 항상 이곳에서 계산할 때마다 현금을 냈다. 카드를 안 받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이곳만큼은 꼭 현금으로 냈다. 나름 괜찮은 가격에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는 내 나름의 감사 표시였다. 정작 사장님은 누가 요새 현금 들고 다니냐며 핀잔을 주시기는 했지만….


여하튼 오늘도 라면 한 끼를 먹고 회사로 갔다.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라면을 먹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어젯밤에 고집부려서 있지도 않은 라면 먹는다고 난리 치는 것보다 이렇게 좋아하는 식당에서 라면 하나 먹을 수 있는 것도 내 일상의 작은 행복인 것 같다. 한 달에 2~3번 정도는 가는 곳인데 앞으로도 이 분식집이 오랫동안 장사를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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