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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15. 2022

6월 15일 김민서의 하루

스마트워치

“저… 이걸로 주세요.”


“네 고객님. 찾으시는 모델이 이것 맞으시죠? 이쪽으로 안내 도와드리고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점원의 안내에 따라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내 손을 붙잡았다.


“민서야. 엄만 괜찮아 정말. 이거 비싼 거 아니니?”


“엄마, 몇 번을 말해. 나 오늘 엄마 이거 사주려고 왔다고. 그리고 엄마 딸 돈 벌고 이거 얼마 안 해. 괜찮아. 저 여기 카드요. 바로 계산해 주세요.”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할부는 몇 개월로 해드릴까요?”


“일시로 해주세요!”


“얘는 정말! 할부로 사.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기분 좋게 엄마한테 선물하려고 하는 건데 계속 엄마가 옆에서 뭐라고 뭐라고 하니깐 짜증이 났다.


“아 좀!”


내 언성이 높아지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면서 다시 점원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일시로 도와주세요.”


“네. 결제 도와드렸습니다. 어머님. 요새 이런 거 부모님들도 많이 하세요. 저도 저희 아버지께 이거 사드렸는데 굉장히 잘 쓰고 계세요.”


점원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능숙하게 고객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여기 상품이랑 카드 받으시고요. 어머님. 정말 좋은 딸 두셨어요. 고객님도 좋은 선물 되세요.”


“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서둘러 카드를 지갑에 넣고 쇼핑백에 담긴 물건을 낚아챘다. 여기서 언성을 높여서 조금 쪽팔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친절히 나와 엄마를 대해준 점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직원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내가 오늘 엄마에게 선물한 것은 스마트워치였다. 엄마와 따로 살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 바로 연락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같이 살 때는 몰랐다. 집에 가면 엄마가 항상 있었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낮에는 엄마한테 전화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따로 독립해서 살다 보니 알게 된 것은 바로 엄마가 전화를 정말 안 받는다는 것이었다. 

분명 메시지를 보낼 때는 나름 빨리 오는 편이었지만 전화는 세월아 네월아 받지 않았다. 하도 받지 않아서 엄마한테 따지면 자신은 전화가 온지도 몰랐다고 했다. 

엄마가 전화를 정말 받지 이유는 엄마가 핸드폰을 항상 무음 모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핸드폰 벨소리를 울리게 하는 사람들을 항상 욕했다. 


“에이.,.. 쯧쯧. 교양 없게 누가 여기서 시끄럽게 벨소리를 울려?”


나는 엄마의 마인드는 존경했지만 그녀의 행동은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왜냐하면 엄마는 이런 말을 굉장히 큰 소리로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부끄러움과 사과는 항상 나의 몫이었다.


아무튼 엄마의 이런 유별남 때문에 엄마는 항상 무음 모드로 해두고 있었다. 진동 모드라는 곳은 것이 있다고 몇 번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테이블 위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도 싫어했다. 그것 또한 소음이라 생각했고 폐를 끼치는 행동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밖에 있을 때만 무음 모드로 하고 있으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엄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는 것이었고 집에서도 무음 모드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연락해야 할 때마다 엄마와 연락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한번 전화하면 묵묵부답이다가 30분 정도 있다가 메시지로 “왜?”라고 하는 것이 우리 엄마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 것을 대수롭게 넘길 수는 없었다. 회사 위치 때문에 독립해서 살기는 하지만 엄마는 혼자 계셨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식이라고는 나 혼자라서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엄마를 혼자 두고 있는 것이 너무 불안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같이 살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내년에 결혼도 준비 중이라 엄마와 함께 사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스마트워치였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전화가 오면 즉각 알 수 있는 수단. 여기에 엄마가 좋아하는 각종 운동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기능까지! 이것만 있으면 적어도 엄마가 전화를 놓치는 경우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휴가를 내고 엄마와 스마트워치를 사러 온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그렇게 싫다고 말하던 엄마는 막상 내 선물을 받더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스마트워치의 기능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사용하던 모델보다 최신일 뿐 사용법은 별로 다른 게 없어서 나는 무리 없이 엄마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는 내 설명을 버거워했다. 나는 다시 차근차근 기능을 설명했다. 엄마는 내가 5분 전에 말한 것을 다시 물어봤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다. 나는 마음을 차분히 하고 엄마에게 스마트워치 사용법을 설명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무려 2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대략의 활용법을 습득한 엄마는 시계 화면을 바꾸는 것에 푹 빠져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볼 테니 한번 워치의 진동이 잘 느껴지는지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엄마는 손목에 진동이 잘 느껴진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휴.. 이제 다행이다. 이제야 엄마가 내 전화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엄마는 진동 오면 다른 사람들이 듣는 것 아니냐며 진동을 없애는 방법을 물어봤다. 나는 엄마에게 언성을 높이며 내가 이걸 대체 왜 사줬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말했다. 처음에 엄마는 어떻게든 진동 오는 것을 끄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내 감정을 억누르며 엄마를 설득했다. 몇 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말했지만 그런 것은 잘 안 먹혔고 엄마를 설득한 것은 ‘돈’이었다. ‘내가 이걸 사느라 얼마를 썼는데 그 기능을 안 써?’라고 말하니 그제야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좀 허무하네….


저녁에는 오랜만에 엄마를 위해 된장찌개와 반찬을 만들었다. 밥을 먹던 엄마는 갑자기 진동이 왔다며 워치 화면을 잠시 보더니 ‘삼촌 전화네?’라며 워치로 바로 전화를 받았다. 워치로 바로 받은 것이라 삼촌의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 


“어. 현식아.”


“누나가 웬일이래. 바로 전화를 다 받고?”


“오늘 민서가 나한테 워치! 그 스마트워치인가를 사줬어. 이거 신기하네. 시계로 전화도 받고 오는 것도 바로 알 수 있고 말이야.”


“아이고. 누님 좋겠수. 민서가 내년에 시집간다더니. 효도하고 가네. 지금 민서랑 있어?”


“어.. 바꿔줄까? 민서야 이걸로 받을 수 있냐?”


엄마는 내 얼굴 바로 앞으로 워치를 들이밀면서 말했다. 나는 입으로 씹고 있던 밥알을 겨우 꿀꺽 삼키고 엄마의 손목 쪽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조금 민망했다.


“네.. 삼촌. 잘 지내시죠?”


“민서야. 엄마한테 그 스마트시계인가 사줬어? 우리 아들은 그런 거 안 사주던데.. 부럽다 야.”


“에이 삼촌. 승현 오빠는 더 좋은 거 사드렸잖아요. 나중에 한번 찾아뵐게요.”


“승현이 그놈이 뭘 대단한 걸 줬다고… 그래 민서야. 내년 결혼 준비 잘하고 있고?”


“네.. 아직 멀었는데요 뭘…”


내가 말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자신의 손목을 빼고 자신의 귀에 가까이 댔다.


“야 이놈아. 남의 딸 시집 가는걸 왜 이리 관심을 가져? 그리고 네 아들이 안 사준걸 뭐 어쩌라고. 네 아들한테 사달라고 해.”


“아니 누님은 정말…. 내가 뭐 민서한테 사달라고 했나? 그냥 민서가 반가워서 그런 거지. 그거 사준 것도 칭찬하고.”


“에휴 됐어. 왜 전화했어?”


“민서도 있으니깐 따로 연락할게.”


“너 또 돈 빌려달라는 거냐? 나 돈 없어.”


“아니 또 말이 왜 그렇게 돼. 나중에 연락할게! 끊어!”


남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한다는 엄마지만 엄마와 삼촌의 대화처럼 시끄럽게 말하는 남매도 없을 것이다. 워치의 스피커폰으로 들으니 나이를 먹어도 티격태격하는 남매의 대화는 더욱 듣기 힘들었다.


“민서야. 이거 정말 좋네. 고마워 우리 딸.”


엄마는 워치를 다시 한번 보더니 쓰다듬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흐뭇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방금 전까지의 짜증이 모두 사라졌다.


“내가 고맙지. 엄마. 아무튼 그거 비싼 거니깐. 잃어버리지 말고. 충전도 매일 하고. 내 전화 꼭 받아. 아 그리고 전화는 스피커 말고 엄마 핸드폰으로 받을 수도 있으니깐. 어디 밖에 있다고 해서 남한테 소리 들릴까 봐 걱정 안 해도 되고.”


“우리 딸. 정말 고맙다.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한테 이런 선물도 주고 든든한 사위 데려와서 결혼도 준비하고 있어. 대견하다 우리 딸.”


사실 엄마한테는 더 비싼 선물도 했는데…. 엄마한테는 이런 기기가 더 신기하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엄마가 좋아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스마트워치로 앞으로도 엄마와 자주 통화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자주 찾아뵙고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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