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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n 14. 2022

6월 14일 정운현의 하루

에어컨

오늘은 이상하게 더웠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는 에어컨을 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운 것을 몰랐지만 집에 오니 달랐다. 바깥바람은 아직 선선한데 이상하게 덥게 느껴졌다. 선풍기를 틀고 더위를 식혀보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방구석에 커버를 씌워놓은 에어컨을 바라봤다. 


아직 틀 때는 아니잖아?


밖은 선선한데 문 열고 자면 되지 않나? 


선풍기도 있는데 무슨 에어컨?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덥다고 생각할수록 더 덥게 느껴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에어컨 커버를 벗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에어컨 리모컨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없어도 에어컨을 켤 수 있었지만 일단 지금 리모컨이 보이지 않는 것이 신경 쓰였다. 항상 리모컨을 두던 자리에도 없었고 근처 선반 위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 넓지도 않은 집인데 오늘따라 갑자기 넓어 보이는 나의 생활공간이었다. 

그렇게 30분 넘게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몸에서는 땀이 뻘뻘 났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지친 나는 방바닥에 누웠다. 천장만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침대 밑이 신경 쓰였다. 혹시나 싶어 나는 침대를 밀었다. 밤이라서 다른 층 사람들에게 민폐가 가지 않게 천천히 들어서 옮기느라 땀이 더 났다. 어느 정도 침대를 밀자 드디어 내가 찾던 리코컨이 보였다. 그리고 어디 갔는지 모르겠던 다른 분실물들도 침대 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리코컨의 먼지를 털고 꿈에 그리던 에어컨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리모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몇 번을 눌러봤지만 리모컨은 묵묵부답이었다. 건전지 뚜껑을 열어 안에 있는 건전지를 몇 번 돌렸다. 이러면 가끔 살아났기에 희망을 가져봤지만 그래도 리모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엔 건전지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오래 찾을 필요는 없었다. 우리 집에 건전지가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건전지를 사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밖으로 나가 집에서 5분 거리의 편의점에서 건전지를 샀다.

마침내 건전지를 교체한 나는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켰다. 드디어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나는 왜 고생을 해야 했을까? 하지만 에어컨은 나에게 바로 행복을 주지 않았다. 에어컨에서 쿵쿵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곰팡이 냄새 같았다. 망할…. 에어컨 하나 틀기가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나는 잠시 에어컨을 송풍 모드로 돌렸다. 냄새는 더욱 역해졌다. 핸드폰으로 ‘에어컨 곰팡이 냄새’를 검색했다. 각종 해결방법이 보였지만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에어컨 전원을 껐다. 

올해 첫 에이컨 개시를 꿈꿨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하도 움직여서 몸에서 땀이 뻘뻘 났다. 나는 선풍기 앞에서 땀을 식혔다. 바깥바람도 제법 시원해져서 꼭 에어컨을 틀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선풍기 바람보다 에어컨 바람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선풍기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이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포기하고 샤워를 하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오히려 땀이 더 났다. 선풍기 앞에서 땀을 식혀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에어컨이 있어야 한다. 나는 혹시나 싶어 에어컨을 다시 켜봤지만 30초도 안 되어서 역한 냄새 때문에 결국 껐다. 정말 짜증 나는 하루다. 

이번 주는 일단 이렇게 버텨보고 주말에 에어컨을 분해해서 청소를 해야겠다. 나의 올해 첫 에어컨 개시는 실패했지만 반드시 이번 주는 성공하고 말 것이다. 야밤에 생쑈를 하느라 지친 나는 방바닥에 철퍼덕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남은 하루의 휴식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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