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바쳐서 일한 직장'이란 수식어를 들어본 지 오래다
예전에는 평생토록 몸담고 있다는 말이 주는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다. 어떤 단어든 흔히 쓰고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쉽게 소비되기 마련이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말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 3년간의 짧은 직장생활을 마치고 잠시 휴식기에 들어간 나는 언제부턴가 이 말이 주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신호대기에 걸려 정차해 있을 때나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올 차들을 지나쳐 반대차선으로 출근하고 있을 때나. 혹은 사원증을 찍고 커피를 한잔 뽑아 들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올라갈 때 이 말에 대해 생각했다. 평생 한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 일상을 그만큼 지속한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이 같은 패턴의 매일을 나는 그 먼 미래까지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했다.
사실 퇴사 결심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두 번 관두겠다는 의사를 직장에 밝힌 적이 있었으나 나는 그때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인내심을 짜내었다. 한 번은 지금 받는 월급을 포기할 수가 없었고 또 한 번은 출퇴근 시간을 바꾸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월급이 포기가 안되었던 첫 번째 이유는 제법 나의 발목을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지출은 늘어나는 건 금방이지만 줄어드는 건 나의 다이어트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전보다 부쩍 늘어난 나의 화를 바라보며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지금 받는 금액이 주는 만족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기하지 않고 안주해 버리면 진정한 내 모습도 잃고 행복한 일상도 멀어질 테니까. 출퇴근 시간 변경이라는 두 번째 이유는 직장에 버티기에는 너무 힘이 없는 조건이었는데 야간 수당이 빠진 월급은 터무니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같은 액수의 수당을 받는 직업은 많겠지만 이 금액에 안주하기에 나의 일은 너무나 어렵고 위험하고도 힘들었다.
취업을 하고 남편과의 대화 중 8할은 직장이야기였다.(어쩌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이야기 혹은 새로운 이야기여도 결론은 늘 같았을 이야기를 남편은 항상 진득하니 들어주었고 모든 직장은 다 힘들다고 위로했다. 점심을 먹지 않고 일하는 것이 물어보지 않아도 당연한 일상이 되어갈 때쯤 남편은 모든 직장에서 당신의 직장으로 말을 바꾸었다. 하루종일 물을 마시지 않아 변비가 생기는 건 일반적이고 화장실도 못 가고 밥을 거르는 것은 당연하였다. 일하는 모습을 보며 주변에서 "왜 이렇게 바빠? 혼자 일 다하네 매번 보면 제일 바빠"라는 이야기를 백번은 들은 것 같은데 실은 그 말을 해주던 사람들이 나를 바쁘게 만드는 거였다. 염려해 주는 사람 1이 있으면 나머지 9가 번갈아가며 나를 찾아댔고 혹은 빠른 일처리를 위해 불평불만을 늘어놓곤 하였다. 염려해 주던 1이 없으면 2,3이 나와 간식을 주며 얼마나 힘들며 위로하다가 다시 염려해 주었던 1이 나타나 본인의 요구를 늘어놓는다. 2.3도 같은 패턴으로 흘러갔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다가도 본인들이 원하는 답을 내어놓지 않으면 화를 냈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해도 요구사항대로 해주기를 원했다. 이것은 모두 나의 직장에서 고객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 실습을 나갔을 때 보호자 자리를 잠시 내주면서 앉아서 잠깐 몰래 쉬고 가라던 친절을 베풀던 기억 속 사람들은 온데간데없다. 나의 직장은 병원이었고 내가 만나던 고객들이란 '환자'인데 아픈 곳을 돌봄 받기 위해 가는 곳 치고는 고객이란 표현이 너무하지 않나 싶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돈을 지불하는 데는 서비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중간계산 정산을 해보는 환자를 통해 대부분 얼마의 입원비를 치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 정도 병원비를 지불할 때는 나 같아도 당연히 이 정도는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생각을 해볼 것 같았다. 하지만 입원환자들의 서비스 만족도를 채워나가기에 나의 몸은 하나였고 간호사 수는 부족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수고를 치하해 주는 곳도 지지해 주는 부서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 직장에서 얼마나 일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라에서 '간호법'이라는 희망을 던졌다 도로 뺏어간 지금은 이 직업을 얼마나 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일차적 힘은 보수이고 이차적인 힘이 열정일 것이다. 열정은 자기만족, 사회적 인식, 단체가 주는 소속감 등 여러 가지가 똘똘 뭉쳐서 주는 원동력일 텐데 내가 하는 이 일은 보수에 따른 노동 외에도 열정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모르는 것은 계속 공부해 나가야 하고 실수란 것은 하지 않기 위해 계속 확인해야 하는 일. 나의 실수도 경계해야 하지만 타인의 실수도 계속 모니터링해야 하는 일. 다른 사람이 확인하고 알려주어도 나의 눈으로 다시 확인해봐야 하는 일이었다. 상대가 욕을 하고 화를 내도 다독이고 풀어줘야 하는 일이고 돌봄 제공자로서 타인의 입장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지속할 수 있는 일이었다. 퇴사한 지 벌써 보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꿈을 꾸면 근무 중이거나 환자를 대하면서 혼자 해결하기 버거워하는 꿈을 꾸곤 한다. 무의식 중의 기억은 휴식 중인 나의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 장마철이라 비가 올 수도 있지만 여행이라는 것 자체로 마음이 들뜬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하하 호호'였었던 엄마인데 변했다는 딸의 잔소리도 이제는 없다. 나는 이전보다 많이 웃고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고 있으며 쫓기듯 설거지를 하지도 않는다. 저녁 먹고 가족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러 나가기도 한다. 내가 원했던 것은 소소한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휴식이 좀 지나다 보면 바쁘게 일하던 시간도 생각날 것이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없으면 돈이 아쉬운 순간도 올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보면 도달해야 할 곳도 보이겠지. 나는 무계획이 계획인 사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