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에 갔다. 위치에 비해 고급스러운 사장님의 취향이 돋보이는 곳. 얼핏 보면 공장 같은 창고형 건물에 여러 개의 팬이 돌아가고 높은 천장 안쪽에는 넓은 단체석이 있다. 가게의 인테리어는 대부분 블랙. 사장님 내외도 블랙의 옷을 맞춰 입고 있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은 반쪽짜리 브라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데 까만색으로 맞춘 옷과 잘 어울린다. 패널로 된 건물에서 와인잔 모양의 가벼운 컵에 물을 따라준다. 살짝 이질감이 든다. 저녁에는 수제 맥주를 파는지 맥주 기계도 있고 한쪽에는 커피를 판매하는 곳도 따로 있다.
원래는 고기를 파는 그곳은 특이한 종류의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이다. 여러 가지 소금과 함께 나오는 소고기와 맛 구별이 되지 않는 돼지고기는 저녁에 가서 먹었을 때도 예사롭지 않은 집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저 편하게 밥이나 먹으러 갈 수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졸업을 할 때 친구에게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해볼 것을 추천했고 그날 친구네 세 식구는 그곳에서 졸업을 축하했다. 특별한 날과 저녁 메뉴로만은 특별한 승부를 보지 못하셨는지 사장님은 점심식사 메뉴를 개발하기 시작하셨다.
버섯이 들어간 탕이 개발되었다는 연락에 한 번은 남편과 같이 먹어보러 그곳에 갔다. 버섯이 잔뜩 들어간 탕이었는데 대화하는 내내 버섯향이 뱃속부터 올라왔다. 사장님은 버섯의 질과 신선도를 강조하셨지만 내 평생 한 끼에 그만큼의 버섯을 먹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기억에 남는 식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점심메뉴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아직 손님을 끄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신 것 같다. 심기일전하셨는지 이번에는 다른 메뉴를 개발하여 이벤트를 하고 계셨다. 기대를 하고 갔으나 솔직한 마음에 실망을 안고 돌아온 나는 괜히 그 식당의 매출에 대해 걱정해본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러 갔다가 타인의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한다. 다행히 자본력이 있으신 분 같았고 무언가 해보려고 노력하시니 장사를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걱정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밥을 먹고 바람을 쐬러 자주 가는 옛날 학교 건물에 갔다. 그곳은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학교 건물은 공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원은 빨강머리 앤이 다이애나랑 소꿉놀이라도 할 것 같은 낭만이 있고 작은 숲이 연결되어 있다. 종종 가는 곳인데 나는 숲을 느끼러 가는 것인지 공방 하시는 분들의 예술혼을 조금이 나마 묻혀오고 싶어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과 연극을 보러 가본 후로 그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둘러보다 보니 안내문이 눈에 띈다. 목공 클래스가 있었다. 얼마 전 원데이 클래스로 배우러 갔던 곳은 집과 거리도 있고 시간도 맞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등록을 할 수가 없었는데 이곳은 집과 가까워 오는 것도 편하다. 게다가 토요일 오전부터 수업이라니.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어 안내문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젊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주변은 조용하다. 안내문을 보고 전화드렸다고 수업에 대해 물었더니 아직 듣지 못하셨냐고 묻는다. 목소리가 반기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무언가 반대의 상황이 있다는 것인데. 안내를 못 받으셨냐면서 사업자를 접어 공방도 접었다고 한다. 아마도 수강생이 적었었나. 사라져 버린 수업을 아쉬워하며 사업자를 접은 공방 선생님의 먹고사는 문제도 잠시 걱정해본다.
공방을 접은 그분은 어찌 되었을까. 외딴곳에 있는 집 앞마당에서 목공 작품을 만들어 팔고 계실까. 이번에 새로 구입한 우리 집 식탁은 저 멀리 베트남에서 온다고 다음 달이나 돼서야 배송이 된다던데. 대형 자본 앞에서 어떻게 꾸려가고 계실까. 공장화는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수고를 쉽게 잊도록 만들겠지 등등의 생각들. 그래도 베트남 공장이 있다는 것은 베트남 사람들의 일자리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고 나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걱정들.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친구들은 퇴직을 앞두고 걱정을 슬슬 하기 시작한다. 월급이 꽤 괜찮아서 퇴직금과 모아둔 돈들을 생각하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는 대기업 임원 친구도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어떤 친구는 저녁에는 학원을 꾸려가며 미장일을 배워보겠다고 낮에는 공사현장으로 돈다. 한 친구는 이미 퇴직을 하고 피시방을 차렸는데 알바를 고용하지 말자니 너무 힘들고 고용하자고 생각하면 인건비가 아깝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런 반면 정말 퇴직이 닥치면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 해답이 서지 않은 분들도 많다. 사람의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짧다. 제 2의 인생을 계획하기엔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해결하느라 바쁘게만 달려올 수 밖에 없었다. 인생에 너무 의미를 두지 말라지만 세상은 먹고 사는 문제로 우리들을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우리집의 경제상황도 장차 어디를 향해 갈지는 알 수 없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판매쪽이라 퇴직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지만 먹어가는 나이 앞에서 불안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의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걱정인데. 오늘도 오지랖 넓은 걱정들로 이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