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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Dec 24. 2019

메리 크리스마스

일상생활

 올해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싶다는 친구와 이브를 만끽했다. 소박한 그녀는 거창하게 선언해봤자 스타벅스 시즌 음료 한잔이면 충분한 즐거움이 되었다. 평소에는 마시지 않는 곳의 음료를 그것도 크리스마스 메뉴를 주문한다는 건 어찌 보면 흔한 일이 아니니 나름의 특별함이라면 특별함이었다.

 해가 바짝 드는 창가에 앉아서 점심 대신 휘핑크림이 산처럼 쌓인 커피를 마신다. 성탄절처럼 붉은 레드벨벳 케이크를 먹는다. 작년의 크리스마스는 생각도 나지 않게 지나갔고 올해는 즐기고 싶은 이유를 그녀가 휴직 중이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결론지었다. 휴식은 삶의 여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겨울의 햇볕이 전보다 따스해졌다. 북극곰의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다가 우리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한다. 어떤 준비를 하는 중인지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 노트북으로 무언가 작성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어디에 취업자리가 생겼고 어떤 고민이 들었는지 서로 나누다가 어쩌면 올해의 크리스마스에 온전히 누릴 수 있는지 모를 이 여유를 잃을 뻔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지금 당장의 행복을 눈앞에 두고 아직 손안에 쥐어지지 않은 시간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올해의 일 년은 눈엣가시 같은 걱정거리들이 나를 괴롭혔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쌓여 불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에 먹었던 마음처럼 문제를 대면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던 나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음을 깨닫고 안도의 숨을 돌렸다. 현실의 문제보다 두려운 건 변화하는 나의 모습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작아지는 마음이라던지. 쉽게 겁을 집어먹는 모습이라던지. 늙음은 그런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행히 나는 늦깎이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남은 인생이 충분히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티타임을 마친 우리는 이브의 저녁을 가족들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음식재료들을 구입하러 마트에 갔다. 오후부터 북적이는 카트들 안에는 집집마다 다른 저녁시간들이 들어있다. 여러 종류의 파티용 술. 푸짐한 크기의 즉석요리들. 스테이크를 해먹을 집도 있고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들을 한 보따리 사가는 집도 있다. 각자 보이지 않는 즐거운 시간들에 대한 상상이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닌다. 나는 그것을 슬쩍슬쩍 훔쳐보다가 나도 모르게 즐거워졌다.

 아이와 전주에 미리 사두었던 과자집 재료로 헨젤과 그레텔 같은 집을 만들고 남편과 스테이크를 구워 저렴한 와인도 한잔 마셨다. 산타를 기다리지는 않지만 일상 속의 이런 반짝이는 날들이 있어 우리의 삶들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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