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 양평 그리고 강원도 고성 이야기
새내기 부린이는 호기심이 많고 행동력이 강한 편이다. 여전히 한 6천만원 정도면 시골 땅 100평 정도는 살 수 있을거란 생각이었는데, 바닷가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이 1순위였다. 다만, 2주 정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든 생활기반이 서울에 존재하는 입장에선, 직장의 문제나 사회생활 등을 고려할 때 무턱대고 먼 시골로 가는 건 맘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향후 가격이 오를만한 지역을 가는게 좋은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내 기준에 살기 좋은 전원주택의 입지조건은 바다가 가깝거나, 아니면 공기가 좋거나, 이마저도 안되면 주변에 강 혹은 큰 공원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이러면서도 서울하고 가까워서 출퇴근까지 가능하면 더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토지 기준으로는 6천만원, 주택으로는 2~3억원이 내가 생각하는 예산이다.
뭐, 예산에 맞는 곳은 어떻게든 찾겠지
그동안의 내 경험과 모아온 잡지식으로 살기 좋으면서도 합리적인 지역은 다음과 같다. 공기 좋은 전원주택은 상수원 보호지역인 양평, 서울에 가까운 곳은 율동공원을 끼고 있는 경기도 광주의 오포읍, 그리고 바다가 가까운 곳은 강원도 고성이다. 이마저도 안되면 그냥 대출을 끼고 부암동 혹은 평창동 빌라에 가서 살겠다라는게 당시의 마음이었다. 지역을 정했으니, 이제 근처 부동산에 전화해 약속을 잡고 직접 가서 보기로 했다. 오랜 로망을 실천하는 첫걸음에 설레기도 했지만, 내심 부동산 초짜인게 들키면 사기당할까 봐 두려워, 아버지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그렇게 2020년 9월, 1박 2일 일정으로 첫 답사를 떠났다.
경기도 광주의 오포는 10년 전부터 전원주택 단지로 부상하던 곳이다. 이 중 신현리의 위치로 치면, 율동공원 바로 뒤쪽에 붙어 있어 분당의 편의시설을 가깝게 누릴 수 있고 강남권과도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타운하우스, 주택들이 몰려있어 서울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마당이 딸린 주택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많은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지역이기도 했다.
신현리에서 본 주택은 작은 마당을 가진 2층 집이었다. 가격은 5억원에 못 미치는 가격인데 이게 당시 부동산이 가지고 있는 매물 중 가장 낮은 가격의 주택이라고 했다. 대지는 60평 정도였는데 남향에 단열도 잘 된 좋은 집이었다. 잼있는건, 이 집을 보자마자 내 예산, 계획 등은 사라지고 "3천만원 정도 들여서 리모델링을 하면 괜찮은 집이 되겠구나. 이웃들은 어떨까?, 가까운 편의점은 어디지?" 등등 이미 집주인이 할만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6억원이 안되니 은행에서 대출도 많이 해줄테고, 이런 괜찮은 2층 집을 마음만 먹으면 바로 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오포읍에서는 주택과 더불어 빌라, 타운하우스 등도 둘러봤는데 첫 번째 주택이 마음에 가장 들었다. 무엇보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 자산이 10억 정도였다면, 그 집을 오늘 계약하고, 전원주택을 하나 더 구매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길을 떠났다. 일단 오포집 Keep.
점심을 먹고, 양평에 도착했다. 원래 보려던 곳은 양평군 문호리의 주택들이었다. 다만, 내 예산으로는 문호리는 너무 비싼 동네였기에 바로 옆에 위치한 양서면으로 향했다. 문호리의 주택들은 가격도 가격이었고(5억 이하가 없었다), 매물로 나와있는 토지 자체도 없었다. 그렇게 양서면에 도착한 곳은 조용한 마을을 지나 언덕에 위치한 300평 전후의 토지였다.
양서면의 토지도 마음에 무척 들었다. 지하수를 끌어와야 하고, 정화조를 묻는 등 번거로운 작업들이 필요하겠지만 300평의 탁 트인 대지와 남향으로 탁 트인 전망이 다른 근심들을 날리기에 충분했다. "그래, 주말마다 강원도에 갈 것도 아닌데, 거기에 돈을 다 쓸 바엔 공기 좋은 양평이 좋은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하남 스타필드까지 15분정도 걸린다는 점도 마음을 흔들었다. 주변에 허름한 농막이 아닌, 멋들어진 저택들이 몇 세대 보이는 점도 괜스레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역시 예산이다. 문호리를 제외한 양평 근교의 토지는 보통 100만원 정도 했는데 토지에만 3억 이상을 쓰고나면, 정작 내가 살 집은 20년은 지나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중간 무슨 고속도로가 근처에 생긴다는 소문에 호가가 뛰다가 요즘 코로나로 잠시 주춤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어차피 자산상승을 부동산으로는 노리지 말자고 마음먹은 상황에서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낮에 조용한 동네가 밤 되면 정말 무서워질 거라며 애써 마음을 돌렸다. 원래 양평 근교에 2~3군데를 더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부동산 초보의 눈에도 다른 곳은 더 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토지였다는 생각에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 항상 가격이 문제지.
속초에 도착하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7번국도 옆으로 보이는 동해바다와 파도소리, 길가의 음악소리가 좋았다. 6시간 가량의 운전 피로는 바로 사라졌고 휴가를 온 듯한 기분에 신이 났다. 대포항은 사실상 관광지역이었고, 그 끝에 위치한 라마다 호텔도 마음에 들었다. 대포항 주변의 가게들은 이른바 약간의 눈탱이를 치는 느낌이었지만, 그 역시 바다를 끼고 마시는 일종의 자릿세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기 마련이다. 얄팍한 예산을 가지고 가진 인생 첫 답사는 모조리 예산을 훌쩍 초과하는 성과없는 결과였지만, 전원주택이라는 로망을 달성하기 위해 첫 발을 디뎠다는 설레임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향한 곳은 고성의 위치한 전원주택단지였다. 고성의 경우는 그래도 나중에 값이 오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곳이다. 동해의 서핑 붐이 고성의 해변까지 퍼지고 있었고, 나중에 러시아까지 천연가스 파이프, 철도가 연결되면 고성이 물류단지가 될 것이라는 한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성이야말로 청정지역으로 뒤에는 태백산맥이, 앞에는 동해바다가 펼쳐진 한가한 동네라는 점이 마음에 끌렸다.
둘째 날 정도 되니 슬슬 6천만원이 얼마나 알량한 자금이라는게 체감됐다
다만, 고성은 관련 토지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는데, 속초 위쪽에 위치한 토성면 같은 경우가 그나마 부동산 중개 지역이고, 그 위로 죽왕면부터는 개인끼리 직거래하는 경우도 많다는게 근처 부동산의 설명이었다. 둘째 날 정도 되니 슬슬 6천만원이라는게 얼마나 알량한 자금이라는게 체감이 됐고, 최소 100평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죽왕면에 평당 60만원 정도 되는 토지 아무곳이나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바닷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산기슭에 위치한 주소지로 올라갔다.
"아..만약 전쟁이 나도 북한이 신경도 안 쓸 고성의 산자락인데도 평당 60만원으로는 이 정도가 최선이구나.."
도착한 곳은 막 조성이 끝난 주택지로, 대략 10~12정도 필지로 구성된 곳이었다.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가을 햇살에 기분이 좋아졌는데 "아, 여기는 어제 본 양평보다 밤에 훨씬 더 무섭겠다"라는 생각이 절도 들 만큼 산중턱에 위치한 외진 곳이었다. 보이는 조망은 저 사진처럼 탁 트인 시야와 산자락이었는데, 고성까지 왔는데 산만 보고 있자니 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아..만약 전쟁이 나도 북한이 신경도 안 쓸 고성의 산자락인데도 평당 60만원으로는 이정도가 최선이구나.."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산에서 내려와 고속도로를 타기 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아야진 해변에 잠시 들렸다. 예산을 다시 짜야했다. 토지만 최소 2억은 가져야 했고, 집을 올리려면 2억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내가 본 4억 전후의 집들보다는 더 좋은, 서울에서 기를 쓰고 주말마다 올만큼 애정이 갈 집이 탄생할 것만 같았다. 역시 대출이 필요한 것인가.. 이래서 사람들이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도 못 오는구나, 아직 30대 직장인인 내가 전원주택에 왜 올인을 하려고 하지? 등등 애써 눌러놨던 복잡한 생각들이 다시 올라왔다. "뭐, 이번이 첫 답사니 깊게 생각하지 말자" 이런 생각으로 일어섰던것 같다.
첫 답사의 개인적인 소회는, 부동산을 내가 직접 알아봤다는 설레임, 대출을 끼면 서울 근교인 오포에 작은 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는 성취감, 아버지와 동해바다를 보고 대포항에서 술한잔 했다는 기쁨들이다. 그리고 어찌됐던 세상 물정을 알고, 예산을 다시 설정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성공적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이번 답사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오포 신현리 주택은, 내 다음 직장 위치에 따라 언제든 다시 고민할 만한 집이 될 것 같다. 끔찍한 양재IC를 거쳐야 하고 작고 아담한 주택이지만, 무려 서울 생활권의 주택이 아닌가.
내가 원하는 위치에 땅을 사고, 집을 건축하려면 최소한 4억은 있어야 되는구나..
누군가 땅만 사서 농막을 짓고 천천히 건축하라고 한다. 혹은 천만원 정도 컨테이너 하우스도 많고, 3천정도 컨테이너 하우스면 충분하다고 했다. "아니야.. 그러면 컨테이너에 들어가서 며칠 자려고 몇시간씩 운전해서 안갈거 같애". 향후 십수년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종종 찾아가서 머무는 집이 될 테지만, 그렇게라도 주말에 찾아갈만한, 일상에 지쳐 휴식이 필요할 때 종종 생각날만한 근사한 집을 지으려면 정말 인생을 살면서 모아온 모든 경제적 자산에 대출까지 필요로 한다는 걸 느꼈다. 내가 원하는 입지조건을 갖춘 토지를 구매해, 내 취향을 반영한 집을 올리려면 최소한 4억은 필요해 보였다. 막연한 전원생활이 정말 이정도의 가치가 있나? 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창업해 7년간 운영하던 회사를 휴업한게 불과 6개월이 지나지 않았고, 당장 내년부터 경제활동에 다시 나서지 않으면 생활이 곤란해 질 수 있다는 점에도 답답함을 느꼈다.
고민의 시간을 좀 가졌다. 그러고나니 이건 경제적 인생이니, 전 재산이니 그렇게 거창한 말을 써가며 할 고민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결국 원점에서 생각하면 근사한 전원주택에서 사는건 내가 20살때부터 바래왔던것 아닌가. 이건 내 로망이자 꿈이었다. 이러다 결혼해서 서울에 전세나 빌라 하나라도 사고나면 애들 교육이나, 동반자의 의견에 따라 평생 못가게 될 수도 있으리라.. 인생이야 모르는 거라지만, 훗날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후회를 안할 자신은 없다. 그래! 뭐, 또다시 사업해서 망했다 치자.
가진거 다 걸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