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 감독의 <하루>
스포일러: 약함
영화는 도덕적인 품성의 의사 준영(김명민)의 보여주기로 오프닝을 채운다. 잘 나가는 '스타 의사'의 길을 걷던 중 돌연 전쟁지역의 봉사활동으로 발길을 돌렸던 준영은, 의사라면 눈 앞에 죽어가는 자가 적군이라고 할지라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목에 사탕이 걸린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바쁜 와중에도 교통사고 운전자를 살리기 위해 행동한다. UN에도 초빙되고 앵커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되지만 준영은 그저 손사래를 칠 뿐이다.
봉사활동의 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준영의 모습은, 이후 서사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관객으로 하여금 준영이라는 인물의 이면을 보게 만든다. 그는 결국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 셈이었지만, 눈물 섞인 호소로 동정을 구하고,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의사로서의 책무를 간단히 모면하는 그를 도덕적인 인간으로 바라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오히려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모를까.
해를 입은 인간은 앙갚음을 꿈꾸고, 한 번의 이기심에서 시작된 가해와 피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혈전으로 이어진다. 영화가 만들어낸 딜레마는 복수가 다시 복수로 피어나지 않게끔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강제성 앞에서야 비로소 갖추어진 도덕이란 참된 의미의 도덕이라기보다 차라리 의무에 가깝다. 그러는 동안 살인마는 은정 앞으로 다가간다. 어린 소녀 앞에서 강식은 자신의 앙갚음을 거두어들인다. 허무하다. 길고 긴 장정 끝에 영화가 거두어들인 수확이 겨우 '동심'이라니.
일곱 번의 하루의 끝에 그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지만, 관객에게는 따라가지 못하는 감정선을 억지로 따라가야 하는 여정 이후의 피로감만이 찾아올 뿐이다. 영화는 가장 필수적인 부분에 있어서까지 실마리를 남기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은 하염없이 오르지만, 관객은 엉켜진 실타래를 어떻게든 풀어보느라 한참 동안 극장을 나서지 못한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