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백일호 Apr 03. 2024

1 - 나는 어쩌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는가

작가 지망생이 대기업 퇴사 후 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까지

연재작 소개의 글: 4년 전, 대기업을 퇴사하고 당당히 전업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 제출한 사직서는 알고 보니 가시밭길 행 급행 티켓이었다?! '퇴사, 그 후'는 그야말로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연명과 풀칠의 나날 그 자체! 정보성 0%. 성공담도, 실패담도 아닌, 실패기(期)를 지나는 중인 5년 차 시나리오 작가의 일상 생존기.


내가 어떻게 대기업을 퇴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쓴 프롤로그(프롤로그 - 대기업 퇴사, 그리고 4년 후...)에 이어, 앞으로는 그 퇴사 이후 4년 간과 현재의 일상에 대해 천천히 공유해 보려 한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나의 글엔 누군가에게 어떠한 길을 제시하려는 목적도, 현재 나의 직업인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도 없다. 그러니 누군가에겐 그저 재미로, 매일 사직서를 품고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들에겐 매달 따박따박 꽂히는 소박한 월급을 위안삼을 수 있는 계기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겐 가벼운 공감거리로, 그렇게 아무렇게나 소비되었음 한다. 



나는 어쩌다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워라밸이 심하게 붕괴 되었던 마지막 직장을 퇴사한 뒤,  나에게는 두 가지 갈래길이 등장했다. 


1. 이직을 한다:  내가 퇴사를 했단 소문이 돌고, 헤드 헌터 및 업계 지인들에게 면접 제안이 왔다. 그러나 당시엔 이미 한 번 직장 생활에 세게 번아웃이 왔던 터라 쉬이 이직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2. 프리랜서로 전향한다: 아무 기반도 없이 대뜸 프리랜서를 하겠다는 건 그저 백수 선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고를 수 없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생산성 없는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나에게 드라마 작가 계약 제의가 온 것이. 



달콤한 꿈, 드라마 작가 계약


드라마 작가 계약이라니. 그것도 지상파라니! 꿈만 같았다. 내가 가장 궁극적으로 가고 싶었던 길이 바로 드라마 작가가 아니던가. 그런 제안을 받게 된 전말은 이랬다. 내가 예전에 작업했던 작은 독립 영화가 있었다. 다소 마이너한 장르였는데, 한 방송국 PD님이 그 작품을 보고 제작사에 드라마화를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제작사가 원작 작가였던 나와의 의리를 지켜준 덕에 나는 퇴사 직후, 운 좋게 드라마 작가 계약을 맺게 되었다.



새로운 커리어의 시작


그렇게 나는 당당히 작가 계약을 맺고 드라마 작가로서 집필에 들어가게 되었다. 집에서, 카페에서, 공유오피스에서, 제작사 사무실에서... 1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머리를 싸맸다. 대본이 오가고, 방송국에 가 회의를 하고, 수정하고. 나름 구색을 갖춘 네 부의 대본이 나오자 드디어 캐스팅고를 돌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희망적이었다. 그땐 몰랐기 때문이다. 작가 커리어의 시작은 작가 계약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 계약은, 대본 집필은, 그저 앞으로 떠나야 할 긴 여정을 위한 짐싸기 단계일 뿐이었다는 것을. 



팬데믹과 엔데믹, 콘텐츠 제작 호황과 불황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의 많은 부분이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 특수를 누린 업계들도 존재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OTT 시장이었다. 팬데믹에서 시작된 OTT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국내 콘텐츠 업계에도 신선한 바람을 불어왔다. OTT 플랫폼이 우후죽순 늘고, 제작 환경이 바뀌고, 제작 편수가 압도적으로 늘었다. 드라마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나 같은 쌩신인 작가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캐스팅은 쉽지 않았다. 제작 편수가 많으니 당연히 모든 배우들의 스케쥴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렇게 대본은 돌고 돌았다. 감독이 붙었다, 떨어지고. 캐스팅이 논의되다, 불발되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엔데믹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팬데믹 호황의 끝은 살벌한 빙하기였다. 이미 제작된 드라마들조차 편성을 받지 못해 묵히는 신세가 되었다. 투자는 얼어붙고 제작은 중단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세세한 이유들로, 개발 중이던 나의 작품 또한 무기한 개발 중단에 들어갔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암담했다. 계약금만 받고 긴 시간을 버텼다. 이제 회사 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판이었다. 입봉을 못 했으니 지난 노력의 시간을 어디 가서 증명할 길도 없게 되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가야 하나? 또 다시 고민의 갈래길에 섰다. 고민의 시간은 길고 힘들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작품 하나 엎어졌다고 포기할쏘냐.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이왕 뽑아든 펜, 뭐라도 써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작품 개발하며 글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도전해 보면 분명 될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또 한번 커리어의 갈림길에서 작가 커리어에 한 번의 기회를 더 줘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0 - 대기업 퇴사, 그리고 4년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