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감각 있는 사람들이 인기가 많은 진짜 이유
4~5년 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나는 친한 언니 두 명과 함께 살았었다. 그러던 어느 휴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세 명 모두 집순이가 되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 셋은 색깔만 다른 땡땡이 패턴의 수면바지를 입고 tv 시청과 수다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그때, tv에서는 한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그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 개그맨이 한 명 있었다. 역시나 그 개그맨은 내 웃음 코드에 딱 들어맞는 개그를 선보이며 내 웃음보를 빵빵 터트렸다.
그리고 나는 언니들에게 말했다.
"언니들! 저 개그맨 진짜 웃기지 않아요? 저는 저 개그맨 좋아해요!"
여기서 내가 말한 '좋아한다'는 의미는 남자로서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개그를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언니들은 내가 그 개그맨을 정말 남자로서 좋아한다고 이해했는지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어? 우리 슬기.. 이렇게 눈이 낮았었나?????"
tv에서 보이는 그 개그맨의 이미지와 특유의 캐릭터를 보았을 때 언니들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개그맨을 좋다고 말한 이후로 우리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로 이어졌다. 언니들은 그 당시 내가 만나고 있던 남자 친구를 포함해서 갓 스무 살이던 재수 시절 때부터의 내 연애사를 모두 알고 있던 사람들이기에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언니들은 내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았다. 내가 몇 년 전에 했던, 나 조차도 잊고 있던 전 남친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때 보여줬던 사진도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렇게 언니들 두 명은 내 과거를 샅샅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슬기가 만난 사람 쭉 보니까 공통된 점은.. 키 큰 거밖에 없네.. 어? 그러고 보니까 오래 만났던 J는 키 별로 안 크지 않아? 그럼 키도 아니네.. 뭐지? 그렇다고 막 외모나 능력 이런 거 엄청 따지는 것도 아니고.. 근데 취향은 또 까다롭긴 엄청 까다롭잖아."
그러자 그중에 나를 더 오랫동안 알아 온 첫째 언니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보기엔 슬기는 그냥 웃긴 사람 좋아하는 것 같아! 쟤는 웃기면 거의 반은 넘어가는 것 같아."
언니들이 하는 얘기를 그저 재미로만 듣고 있었는데, 첫째 언니가 한 말을 듣는 순간 '엇?!!' 싶었다.
'웃긴 사람이라..' 나조차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정말 딱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이 모두 유머 감각 있고 재미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내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마음을 열었던 순간과 그 장면을 돌아보면 나는 대부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들은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남자 친구뿐만 아니라 여자 친구들을 사귈 때도 재미있는 친구들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나는 남자 친구든 여자 친구든 유머 감각 있는 사람들, 웃기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걸까.'
사람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본 유머 있고, 재미있는 사람들은 타고난 순발력이 좋은 것도 있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항상 배려하는 마음이 하나의 성격으로 형성된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타인에게 웃음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마음이 넓고 단단하기에 가능한 것 같았다. (남을 비방하거나 조롱하면서 웃음을 주는 사람은 완전히 예외다.)
만약 마음이 좁고, 약한 데다가 자격지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유머 감각이나 센스를 타고났다 할지라도 그 장점을 100%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누군가와 나누는 이야기 자체를 자기 마음의 크기와 모양에 맞게 받아들이고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머를 유머로서 받아 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유머라 할지라도 상대방에게는 유머가 아니게 될 확률이 높다.
이렇듯 유머 감각 있는 사람들 곁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 유머와 재미 때문이라기보다 함께 하는 상황과 사람을 배려하는 그 마음을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재밌는 사람들을 찾고,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 아닐까.
+) 결론적으로 저 재밌고 웃긴 사람 좋아하는 거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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