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얼마 전 남편과 남산에 갔다. 목적은 단풍 구경이었는데 막상 단풍은 아직 덜 물든 상태.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기왕 왔으니 둘레길을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이상했다. 아무리 길이 좁기로서니 저렇게 한참 앞장서서 갈 일인가.
중년의 남녀가 너무 다정해도 부부가 아니라고 의심받는다지만 그래도 좀 다정하면 안 되나? 뒤에서 몇 번 같이 가자고 불러 세우면 잠깐 기다렸다가 이내 간격이 벌어지는 식이었다. 뭐 어쩌랴. 그러려니.
내가 원래 가려고 한 둘레길 구간은 걷기가 무척 편했는데 남편의 주장대로 반대 방향으로 걷다 보니 오르막, 내리막이 변화무쌍했다. 숲길을 걷는데 꽤 미끄럽겠다 싶은 내리막 구간이 등장했고 남편은 이미 그 구간을 통과해 내려간 상태였다.
순간, 남편이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며 “조심해”라고 말을 시작했고 나는 그가 손을 내미는 시늉이라도 하기를 기대했다.
남편은 뒷짐을 지고는 짐짓 엄숙하게 말했다.
“조심해. 똥꼬에 힘 빡 주고.”
아, 어찌나 웃기고 서럽던지.(202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