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우 Aug 02. 2021

아무튼, 혼술:고깃집 혼술로 고수 인증

신논현역 1인 화로구이 미요 MIYO

 하루 종일, 그러니까 말 그대로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다. 조금 전까지는 기분이 별로 였다. 비 오는 날 마음먹고 한 잔 하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빗속을 뚫고 택시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바로 눈앞에 블로그에서 자주 소개되던 모 이자카야가 보였다. 그래서 단골인 양 반갑게 뛰어들어갔다. 포근한 외관과는 달리 문전박대 수준의 불친절을 경험하고는 그냥 뒤돌아 나왔다. 사장님 마인드가 저 정도 인가... 이런 연유로 내리는 비처럼 기분이 눅눅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원래 계획대로 전부터 눈여겨보던 미요 MIYO라는 고깃집에 들어왔다. 여기는 1인 화로를 표방하는 소고기 화로구이 집이다. 그러니 혼자 한 잔 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점찍어 놨던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일단 사람이 없다. 5시니까. 이렇게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들어왔다. 혼술로 몇 년을 수련한 나도 고깃집은 쉽지 않다. 나름 우회한 것이 사람 없을 때 방문하는 전략이었다.

 

 조금 쭈뼛거리며 주문을 한다. 혼자 왔다는 소심한 마음에 3명은 먹을 듯한 양을 주문한다. 혼자지만 정당하게 당당해지기 위한 선포라고나 할까. 일단, 차려진 기본 찬이 마음이 놓인다. 내가 좋아하는 오이 고추와 부추 겉절이가 있다. 오늘 선택이 좋았다. 괜찮은 전조인 것이다.


 오늘 선택한 메뉴는 모둠 300그램이다. 과연 충분할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한라산 21도를 마셔야 하니까. 이제 시작한다. 1인 화로 속에 놓여있는 숯이 좋아 보여 일단 신나는 기분이 든다. 참숯향이 입혀지는 소고기의 맛이 벌써 기대감을 심어준다. 연남동 뱃장보다 가성비가 훨씬 좋다. 이 얘기는 고기는 뱃장의 고기가 훨씬 비싸고 좋다는 뜻이다.


 소고기인데 한라산과도 잘 어울린다. 오늘도 한 병이라는 마음속의 소박한 마지노선을 가지고 마셔본다. 오이무침과 같이 먹는데 생마늘이 들어있다. 생각보다 좋은 조합이다. 혼자 소고기를 살포시 석쇠 위에 올려놓는 기분도 솔솔 하다.(초큼 괜찮습니다)


 강한 숯불에 고기는 잘 익어 가고 있다. 거기에 맞춰 한라산 잔도 속도를 맞춘다. 그런데 고기는 벌써 반 정도 소진됐다. 오늘은  속도가 빠르다.  혼자 구우려니 바빠서 그런가 보다. 이 시점에서, 고기 익는 약간의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본다. 여기도 오픈 주방이고, 가족분들이 운영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정도 분위기면 포근하다. 다만,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을 위한 바 형태의 자리는 없다. 바 형태가 훨씬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상당한 내공이 없으면 혼술 도전은 망설여질 수도 있겠다.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지금 오후 5시 49분에도 주변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으니 나를 어떻게 쳐다볼까 하는 의구심이 약간은 밀려온다.(아마도 이 집 식구려니 하지 않을까)하지만, 괜찮습니다.저는 혼술 고수거든요. 심지어 마시면서 책도 읽습니다. 넵. 그런 저입니다.


 고기를 먹다 보니 (전화받다 화로에 스쳤는데, 데었다. 아프구나) 고기가 두 종류인걸 이제야 눈치챘다.

역시 굽기에는 기름이 약간 있는 게 좋구나. 그래도 다행인 건, 혹시나 대식가로 불리길 두려워하는 나에게 양이 적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고깃집에서의 비용이 약 4만 원 이란 건데. 혼술 치고는 괜찮은 비용이다. 물론 해장국집에서의 궁극의 가성비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이제 아까 적절한 타이밍에 주문해 놓았던  김치말이 국수의 소면을 살짝 건드려야겠다. 역시나 약간 불어주셨는데, 글루틴에 사죄. 맛있네. 과음을 좀 해줬다면 큰일 날 뻔한 맛이다. 그런데 멈칫한 것은, 분명 5천 원이었으나 이것은 2인분에 가까운 양이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든다. 다 먹을 것이냐. 인간답게 1인분만 섭취할 것이냐. 자연의 섭리에 맡기기로 하고 진도를 나가 본다.


 알맞게 익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한 점 들어올리면서, 말도 안 되게 이 시점에서 인생의 진리를 생각하게 된다. 고기와 함께 즐길 수 있게 다채롭게 제공된 다양한 소스가 상위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가장 빈번한 선택은, 그러니까 최고의 선호를 보이는 소스는 소금, 와사비, 레몬 간장, 홀스래디쉬 중에서 결국 소금으로 귀결된다. 진리는 변하지 않고 가장 '심플'하고 '기본' 적인 것이 솔루션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소고기에 묻혀지는 소금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결국 소고기엔 소금이라는 얘기다.(내가 조금 이상한가 반성해 본다)


 아까부터 본의 아니게 옆 테이블의 취준생들의 이야기를 흘려듣게 됐다. 그들을 보며 옛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한다. 표현방식은 달라졌으나(얘들 욕이 장난 아님, 하지만 귀엽) 예나 지금이나 사는 건 다 똑같나 보다. 이 회사는 어떻고 또 저 회사는 뭐가 나쁘고, 누구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또 누구는 유학을 떠난다고 한다. 그 친구들의 고달픈 현실이 묻어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좀 안 좋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덕분에 이런 다양한 얘기도 듣게 되나 싶어 위안이 좀 되기도 했다. 사람은 가끔 다양한 사람과 환경을 만나야 더 인생이 풍부해지는 법이다. 그 친구들이 좀 더 희망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나가면서 그 테이블의 계산이라도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괜히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생각을 접는다.


 오늘은 300G이라는 안주의 중량 때문인지 한라산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 병만으로 음주의 욕망을 채우기로 한 결심 때문에 속도 조절한다. 요새는 술을 절제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연습은 항상 중요하다. 무엇이든 즐길 수 있으려면 통제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이제 종반전입니다. 도마 위의 남은 4점을 보며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잘하고 있다를 되뇌어 봅니다. 내일도 5시에 일어나야 하니까요.(내일은 월차다!!)



 하루키적 삶을 위해 저녁을 포기한 지금, 어정쩡한 낮술 겸 반주 겸 혼술을 즐기면서 조기 귀가를 계획하는 나를 잘하고 있다고 독려해 본다. 읽고, 쓰고, 마시고, 달리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너무 늦은 밤의 유희는 포기해야 하니까.

 

 고기는 다 올라갔고, 이제 혼자 앉아있는 게 약간은 뻘쭘해질 시점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신기한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압니다. 혼자 고깃집에서 술마시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 걸요.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답니다.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멀쩡히 아침마다 회사에 출근하고 있고요, 단란한 가정도 있어요.)


 아, 명이 나물을 잊고 있었네, 섭섭하지 않게 맛을 경험해본다. 앞에 앉은 나보다 더 아저씨가 이상하게 보지 않게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버섯도 뒤집는다. 약간 야만인이 되어가고 있다. 김치말이 국수의 소면을 1인 분량에서  초과해서 먹고 있는 것이다. 비난하기는 객관적으로 힘든 맛이다. 과연 설탕인가, 이 맛의 비밀이. 감칠맛에 가까운 약한 단맛이 매력이다. 집에서는 낼 수 없는 맛. 옆 테이블 가서 소면 시키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계산은 내가 못해요.


 오늘도 마음속의 명산 한라산을 가슴에 품고 간다. 목표대로 한 병만 마셨다. 10분 뒤면 일어날 거 같다. 고기가 다 익도록 버텨준 숯에 감사한다. 아, 그런데 앞 테이블은 소맥을 준비 중이다. 이런 걸 질투하면 안 되는데....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오해하실 까 봐 소면은 조금 남깁니다.

저는 혼자 왔다 가니까요.



조만간 또 오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튼, 혼술:기분 좋은 혼술과 한라산 2잔의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