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있다. 그날은 각진 얼음이 가득 든 컵에 물을 마신 일이 하루중 가장 보람찼다. 하루 종일 얼음을 머금은 텀블러를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멍을 때리기도 하고 노래를 듣고 가족과 시답지 않은 잡담을 나누며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일본어를 공부해야지 하고 교재를 샀다. 그리고 2년이 넘었다. 20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교재를 꺼냈다. 그것을 꺼낸 날마저 2주가 흘렀다. 안되겠다 음악이라도 j pop을 들어보자 하며 마구 검색을 하고 마구 다운을 받았다. 그렇게 또 1주일이 넘었다. 나는 대충 안될 놈이다 그냥 살던 대로 살자고 다짐하며 음악이나 들어야지했다. 이후 마음에 드는, 눈에 띄는 j pop가수를 찾아봤다. 그러다 라임스터라는 이름의 가수가 눈에 들어왔다. 셔플로 재생. jpop이 내 방을 서서히 울려왔다.
괜스레 잠이 안 올 거 같다. 낮잠을 실컷 자서 그런가. 얼음 물을 너무 많이 마셨나. 멍청한 고민과 무의미한 멍 그 사이에서 sns를 들여다봤다. 요즘은 sns를 봐도 재밌지가 않다. 불필요한 정보 90, 재미없는 정보 5, 실웃음 짓는 계시물3, 꼭 필요할 거 같지만 별로인 정보 2 인거 같다. 다들 나와 같은 느낌일 거 같은데 생각한다. 어? 그러면 망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꿋꿋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싸이월드, 미투데이,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속 얼음처럼 쉽사리 안 녹는다. 맛있거나 시원해서 그렇겠지.
나는 노래 들을 때 가사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아니지만 가사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런 맥락에서 팝송을 잘 안 듣는다. 뭐라 뭐라 하는데 뭐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막 즐길 수 없다. 경쾌한 멜로디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알고 보니 슬픈 가사라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난 그걸 모르고 리듬을 타는 게 싫다. 그런데 가끔 귀에 착착 감기는 노래가 있다. 셔플 재생해놓은 곡에서 계속 귀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 인트로부터 내 귀를 집중시킨 곡이라니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알아가고 싶었다. 마치 첫눈에 반한 그녀처럼. 곡 재목은 after 6 란다. 사실 이외에도 내 귀를 중독시킨 몇몇 곡이 있었다. 그래서 좋아요를 눌러두고 훗날 다시 내 귀와 만날 기회를 줬다. 쨋든, 오늘은 after 6를 알게 됐으니 가사 해석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정식 플레이리스트에 넣기로 했다. 다음에 꼭 다시 듣기로.
얼음이 가득 든 텀블러의 물을 쭉 들이켠다. 오직 얼음만 가득한 텀블러는 시원한 소리가 난다. 자박자박 얼음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조용하지만 명확한 소리가 있는 악기이다. 메탈, 록처럼 시끄러운 소리는 아니지만 낮고 부드러우며 울림이 있는 인디음악이다. 축구와 발표를 좋아하는 활발한 학생은 아니지만 묵묵히 수업에 참석하고 눈빛이 빛나는 학생이다. 얼음이 별로 없는 텀블러에는 깡깡 한 높은 소리가 난다. 높기만 하고 울림은 적은 비명 같은 소리가 난다. 하지만 각기 다른 형태와 각기 다른 녹은 점을 가진 얼음들이 모이면 낮지만 분명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갈증이 조금 나더라도 물을 포기하고 잠깐 얼음의 소리를 듣는다.
저녁잠을 살짝 포기한다. 낮잠을 푹 잔 대가다. 사실 포기하면 편하다. 포기하면 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텀블러 속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만 깨있을까 생각하지만, 내 입으로 들어가 사라질 확률이 다분하다. 괜히 사람의 인생이랑 얼음이랑도 비교해 본다. 얼음과 인생은 닮았다. 비슷하게 태어났지만 각기 다른 형태로 깎이고 순서는 없으나 사라져 증발하는 것. 그리고 언뜻 보면 보석 같은 형태를 띠어 꽤나 아름답다는 것까지 말이다.
밤이 깊어간다. 음악소리도 서서히 줄인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지 모르지만 당장 오늘 하루를 넘겨본다. 오늘은 음악과 얼음이 친구가 되어줬다. 내일 되면 다 녹아버릴지라도, 내일 되면 잊어버릴지라도, 이 밤은 이 밤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글로써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이렇게 조금 더 이 순간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