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지만 괴물엄마가 된 이야기 - 5화
이해해주지 못할 아이보다, 안아주지 못할 내가 더 밉다.
29개월 아이가 또 새벽에 울었다.
"안아줘, 엄마!"
그 자지러지는 울음에 눈을 떴고, 제일 먼저 올라온 감정은 짜증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이토록 깊은 새벽, 이토록 무력해질 줄은.
누군가 미리 말해줬다면 조금은 덜 당황했을까.
나는 원인을 찾으려 했다.
'낮에 사랑을 덜 줬나? 애착이 부족했나?'
내 나름의 해답은 '그래, 아이가 새벽에 울면,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자.'라는 단순한 공식이었다.
그걸로 육아일기를 쓰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육아에 공식이 있을 리 없었다.
요즘 첫째는 새벽마다 아빠 방과 아이 방을 오가며 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가도, 이내 또 시작되는 울음에 모든 감정이 사라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울었다.
"엄마 안아줘! 안아!"
내가 반응하지 않자 아이는 "아빠"를 외쳤고,
남편이 아이를 안방으로 데려가 겨우 재웠다 싶었지만,
한 시간도 안 되어 또 울었다.
"엄마아.. 엄마..."
그 소리에 짠함보다 먼저 올라오는 건 짜증이었다.
남편은 다시 아이를 내게 데려왔고, 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한다.
"일어나서 안아!"
나는 눈을 떴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거운 눈꺼풀, 눌린 심장, 절대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버텼다.
예전엔 등을 토닥이고, '엄마가 곁에 있어', '많이 사랑해'라며 속삭이면 다시 잠들던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통하지 않는다.
내가 손을 내밀자 아이는 그 손까지 뿌리쳤다.
더 크게 울고, 더 세게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진짜 안아달라는 걸까?'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서 우는 걸까?'
나는 고민 끝에, 결국 안아주지 않기로 한다.
한 번 안아주면, 그건 십 분이 되고, 한 시간이 되고, 끝이 없는 새벽이 되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건, 둘째가 깰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두 아이가 동시에 울기 시작하면, 그 순간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
둘째는 밤새 잘 자는데, 왜 너만 이럴까.
작은 키도 걱정인데, 이제는 잠까지.
이 모든 게 겹쳐, 나는 미칠 것 같다.
아이가 울수록, 내 안의 감정도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도망치고 싶다.
이 지독한 새벽을 몇 번이나 더 견뎌야 할까.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
"시끄러워!"
그 순간 아이는 더 크게 울었고, 울음 위로 죄책감이 나를 덮쳤다.
피로보다 더 무거운 감정이 나를 짓눌렀다.
나도 잠을 자야, 낮에 웃으며 너희와 놀아 줄 수 있다.
내가 나쁜 걸까. 부족한 걸까.
아이의 울음을 수없이 해석해 봤지만, 정작 아이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육아에는 예측이라는 단어가 없다.
내 삶의 리듬은 통째로 뒤집혔고, 나는 아직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검색해 보니, 29개월 아이들이 새벽마다 깨는 건 흔한 일이라고 한다.
혼자라는 감각, 낯선 어둠, 애착 문제, 분리불안 등.
그 모든 이유가 울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남편이 새벽마다 안아주었던 것이, 아이에게는 하나의 기대되는 루틴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괴물 엄마였다.
우는 아이를 보며 먼저 해석하려 들었다.
'지금 안아주면, 더 큰걸 원할 거야'라는 불안에 빠져 외면했다.
그 해석이 정말 정답이었을까?.
육아일기를 쓰며 오늘도 반성한다.
하지만 반성은 항상 그때뿐이다.
오늘 밤은, 과연 나는 안아줄 수 있을까?
다시 눈을 감은 채 외면하지 않고, 그 불안한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사랑만으로는 버틸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또 사랑으로 다시 시작해 본다.
아이가 다시 날 부른다면, 이번에는 조금 덜 두려워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사실 1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을 쓰는 게 아직 서툴고, 그래서 5편부터 연재로 묶게 되었어요.
1~4편은 제 프로필에서 따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엄마이자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싶은 저의 기록입니다.
1화. 나는 혼자이고 싶지만, 여전히 엄마이길 바란다.
2화.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닿지 않았다.
3화. 함께자고, 함께 깨어나는 삶을 선택했다.
4화. 아빠는 점점 멀어지고, 아이는 나만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