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10시 26분경의 기록
10시 26분.
애매하고 힘없는 시간이 핸드폰 시계에 나타났다.
그런데 한참 동안 26분이었다.
1분이 길었다.
그래서 기억해 두기로 했다.
도서관에 반납할 책이 한가득이었다.
더위를 한겨울의 눈처럼 뚫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넘칠 듯한, 그래서
한 순간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담으며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이 한 대 지나가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매 여름 괴로움에 몸부림치지만
여름 햇살 아래 피는 그림자 때문에 약간은 이 계절을 좋아한다.
여름 그림자는 이상하게 살아있는 것만 같다.
내려가는 시선과 고개에 따라 나무의 움직임이 보였다.
바닥에 새겨지는 나뭇잎의 흔들거림이 움직이는
사진, 또는 그림처럼 느껴졌다.
어떤 할머니께서 갑자기 멈춰 서더니 건너편을
향해 바람아,라고 소리쳤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할머니의 옆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길 건너에 하얀 강아지가 있었다. 다른 할머니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셋은 웃고 있었다.
더운 여름, 그리고 주말 오전.
나서는 게 힘든 날씨이다 보니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치 어중간한 새벽 보라색이 된 차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동네는 멈춘 듯했고, 나는 빈 서버에 잘못 접속된 게임 캐릭터 같았다.
여름을 잔뜩 머금은 꽃이 곳곳에 피어 있었다.
어느 꽃은 나무에 기대고 있었고
어떤 꽃은 그저 싱그럽게 피어 있었다.
여름의 채도가 눈길을 끌어당겼다.
닫힌 가게 앞, 진한 색색.
강렬한 태양광.
어쩜 영화 속 여름은 그토록 아름다울까 잠깐
생각했다.
이렇게 힘겹고 또 힘겨운데.
무기력해지는 와중에 외면할 수 없는 생기가 있기 때문일까.
풀과 나무와 꽃, 매섭게 파란 하늘 때문일까?
땀이 마르고 상쾌해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좋았던 일만
골라 기억하니 말이다.
어쩌면 매 순간이 필름을 인화한 것만 같아서 아름답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일까.
알 것도 모를 것도 같다.
일단 지금은 그저 너무 뜨겁다.
너무도 뜨거워 정신을 못 차릴 것만 같다.
얼른 찬 물을 마시고 찬 물에 얼굴을 담가야지
그늘로 들어가야지
생각한다.
그렇게 여름을 난다.
작은 서늘함에 행복을 느끼며
영화 속 장면 같은 여름이 오길
기다리며
가을을 기다리며.
이 계절을 지그시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