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TTE에서 감명받은 메뉴를 집에서
제가 사는 곳은 도보 10분 거리에 트레이더조가 있습니다. 재료가 없으면 금방 뛰어가서 사 올 수 있습니다. 조류독감 여파로 요새처럼 계란이 귀할 때는 트레이더조 매장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찾아가 재고가 들어왔는지 확인하기도 쉽고요.
집을 구할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살다 보니 '트레이더조세권'의 위력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간단한 재료가 없을 땐 배민을 이용하거나 집 앞 슈퍼, 편의점을 이용했는데 이곳에선 그런 게 없다 보니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차를 타고 나가 식재료를 사 오는 것도 번거롭고요.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과 일요일까지는 트레이더조 매장이 있는 공용 주차장에 차들이 한가득 몰려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을 한 번에 사가기 위함이겠죠.
트레이더조 매장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가 봤더니 보스턴 지역에는 제 예상보다 매장 수가 많지 않더라고요. 역세권마다 대형마트가 하나씩 있는 서울과는 달랐습니다. 도심 기준, 보스턴에 3곳, 제가 사는 캠브릿지에 2곳, 서머빌에 1곳, 올스턴 1곳, 브루클라인에 1곳 정도입니다.
물론 홀푸드마켓이나 코스트코, 월마트, 타겟 등 다른 매장도 많아 고객이 분산되고 있지만 신선한 유기농 채소와 과일, 다양한 조미료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트레이더조에 대한 고객들의 선호도는 확실히 독보적인 것 같습니다.
외식 메뉴를 집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계기가 있습니다. 보스턴과 워싱턴에 주로 있는 브런치 카페 Tatte 에서 먹었던 샌드위치를 집에서 만들어봤는데 완벽히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메뉴는 이스라엘 출신 셰프가 중동과 유럽식 브런치 스타일을 표방합니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중동식 재료나 소스가 주로 쓰입니다.
Tatte에서 감동받았던 메뉴는 'broccolini&Squash humus pita'입니다. 태운 듯한 브로콜리와 후무스를 쫄깃한 피타빵에 넣어 먹는 음식인데요. 얼마 전에 나온 신메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태운 듯한 브로콜리의 맛을 좋아해 이 메뉴를 보자마자 바로 골랐습니다. 예전에 한남동 타르틴에서 먹었던 브로콜리 플랫브래드(지금은 없어진 메뉴)가 생각났습니다. 브로콜리를 겁나게 잘 구우면 이렇게 맛있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때의 맛이 혹시 나려나 기대가 됐거든요.
역시나 Tatte에서도 생 브로콜리가 아니라 브로콜리를 태워 사용했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한 끼였습니다.
제 입맛에 너무 맞아 문제였습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건강한 맛이었지만, 피타 샌드위치 하나에 12.5달러(약 1만7700원)라 매번 사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번 집에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운 좋게도 Tatte 메뉴판을 보면 재료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나와 있었습니다. 비건들도 자주 찾는 카페라 음식에 들어간 채소와 소스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료는 간단했습니다.
"브로콜리, butternut squash humus(땅콩호박 후무스), 버섯, 양배추, 타히니소스, 피타브레드"
브로콜리, 버섯, 양배추는 트레이더조에서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식재료였습니다.
중동 레스토랑에서만 봤던 후무스가 좀 난도 높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손쉬웠습니다. 후무스는 병아리콩과 올리브유, 레몬즙, 타히니(참깨) 소스를 갈아 만든 소스입니다.
트레이더조에서는 만들어진 후무스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땅콩호박 후무스가 생경하기도 했고 매장에 없어서, 시판 후무스로 대체했습니다. 가격은 2~3달러 수준으로 저렴합니다.
속재료를 감쌀 피타 브레드가 트레이더조에 있을까 싶었는데 이것도 있더라고요. 피타브레드는 안에가 비어있어서 절반을 자르거나 빵 끝을 자른 후 속을 채워 먹으면 됩니다. 여러 장이 들어있는 피타 빵은 트레이더조에서 2달러 정도하네요. 피타브레드 대신 발효종 빵으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 메뉴의 킥은 브로콜리입니다. 물기를 최대한 없애고 브로콜리를 약간 검게 그을리듯 구워내야 깊은 맛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태우듯 브로콜리를 구워낸 뒤 잠시 덜어두고, 같은 팬에 잘게 썬 양송이버섯을 구었습니다. 양송이버섯을 구울 때 쯔유를 조금 넣어 달달하고 짭조름한 맛을 입혔습니다. 쯔유가 없다면 간장과 설탕, 소금을 이용해 볶아내면 비슷한 맛이 날 것 같습니다.
Tatte에서는 양배추를 썼는데 저는 집에 토마토가 있어 잘게 썰어 살짝 구웠습니다.
이렇게 나온 재료를 한 그릇에 넣고 올리브유와 후무스를 넣고 한데 섞었습니다. 레몬즙이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없어서 생략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속재료는 반으로 자른 피타브레드에 욱여넣었습니다.
트레이더조의 피타브레드는 다소 얇은 편이라 잘 찢어지더라고요. 식감도 쫄깃하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다른 마트에서 쫄깃한 피타브레드를 찾는다면 그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