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한동안 주말마다 일정이 있어서 사랑스러운 나의 공간을 비워두었다. 뭐, 솔직히 말해서 사랑스럽다는 오버긴 하지만 집순이에게는 주말 집콕이 국룰인 것은 틀림없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직종에 종사하는 중이지만 -어디까지나 영업직, 서비스직 기준으로 상대적임을 설명합니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서 얻는 긴밀한 스트레스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녹여 없애버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 달간은 주말마다 꼬박꼬박 사람들과 만나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내 상태는 거의 넉다운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 있던 약속을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모조리 빼버리고 이불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컨디션이 영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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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도 여러 버전이 있다.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자다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타입, 부지런히 혼자 집에서 뭔갈 하는 타입 등등. 나는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평일 동안 바쁘고 피곤해서 미뤄두었던 집안일도 열심히 해치운다. 오늘도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화장실 청소와 방 청소를 끝냈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이 작은 가정은 무너지기 십상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가 좋았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아싸 기질을 가지고 있단 뜻은 또 아니다. 누구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나서서 타인을 챙기기 좋아하는 어린아이였다. 다만 혼자만의 공간을 구축하게 된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를 형성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상처를 드러내길 거부하는 야생동물 같이 내가 받은 스트레스와 우울은 모두 나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다.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오롯이 내 공간, 내 시간이 존재해야만 했다. 부모님은 나를 별종 취급하듯이 쳐다보았다. 시간의 틈에서 아등바등 혼자 있길 원하는 나는 가족 중심 주의인 그분들의 눈에 충분히 이단아처럼 보일만도 했다. 그래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도 속박하지 않는 어떠한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여전히 속박의 굴레에서 살아가고 있다. 끝없는 업무 메일, 꼬박꼬박 날아오는 세금 고지서, 긴장되는 업무 평가와 주기적인 건강검진 같은 것들. 그렇기에 나는 혼자 있는 이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낮게 음악이 깔리고, 따뜻한 햇빛이 방을 비출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보내는 혼자만의 공간. 누군가 그랬다.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평일 5일 동안 쌓아왔던 작은 돌멩이 같은 우울들이 혼자 보내는 주말에 마시는 차 한 잔에 모조리 쓸려나간다. 그러면 나는 또 힘을 내서 하루를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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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세계에서 스스로 보듬으며 살아가자. 누구도 구원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나를 구원하자.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작고 단단한 공간에 스스로를 넣어두고 소중한 우리는 아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