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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Mar 06. 2021

그들과 함께라면 우쿨렐레도 좋아

그들과 함께라면 우쿨렐레도 좋아(feat. ACDC)


오래간만에 메탈리카 1989년 시애틀 라이브 실황을 봤다. 메탈리카 팬이라면 누구나 최고의 공연 영상으로 이 무대를 꼽는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공연 영상이 올라봐 보고 있는데, 갑판 위로 날아온 날치마냥 날뛰는 20대 초반의 관객들과 당시 멤버들의 탱탱한 피부를 보니 새삼스러웠다. 보컬 제임스 헷필드의 창법은 지금보다 더 카랑카랑하다. 베이시스트 제임스 뉴스테드는 머리가 어지럽도록 긴 머리를 상모처럼 돌려댄다. 그것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지금은 뉴스테드 대신 트루히오가 있고, 여러 차례 음악 스타일도 바꾼 탓에 과거와 같은 퍼포먼스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갑자기 한창이던 시절의 모습을 보니까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가 대번에 느껴졌다.       


그건 마치 2020년 시점에서 <아이언 맨>1편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바라보는 팬들의 심정 같다 해야 할까. 그들의 전성기 시절을 보며 다짐했다. 다음에 내한 오면 그때는 정말 가야지. 이번에 못 가면 칠순이 다 되어서 볼지도 모르니까. 아마 그때는 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밴드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팬들이야 그들이 소극장에서 탬버린을 쳐도 좋아하겠지만, 그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을 수도 있으니까. 최고급 전용기를 타고 다녀도 아티스트에게 투어 일정은 꽤 많은 체력을 요한다. 실제로 젊은 밴드들도 전미투어가 힘에 겨워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물며 환갑이 넘은 밴드에게 월드투어란 그 자체로 큰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그들의 내한공연을 봐야 하는 것이다. 평일 공연이라면 이제는 쉬는 날짜를 바꿔서라도.     


생각난 김에 왕년에 좀 날린 메탈 밴드들의 현재 모습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머틀리 크루였다. 내가 태어나던 시절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밴드다. 사자머리에 스모키 화장을 하고 퇴폐적인 음악을 하던 미청년 집단으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대학교 때였다. 내가 찾아본 건 아니었고, 커뮤니티에서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메탈 듣는다면서 아직도 전설의 360도 공중회전 드럼을 보지 못한 게냐?’라며 공연 영상을 보여준 덕에 알게 됐다. 처음엔 드럼이 공중에서 360도 돌아간다는 게 말이 되냐고 따졌는데, 진짜도 돌았다. 영양센터의 전기구이 통닭처럼. 왜 굳이 공중에서 드럼을 돌려야만 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이후에 그들의 곡들을 접했다. <Wild side> 나 <Kickstar My Heart> 같은 곡들은 지금도 가끔 듣는다.      


문제는 그 모든 게 내가 태어난 시절의 모습들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아는 머틀리 크루는 여전히 1980년대의 모습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2017년 사진을 보니 누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다들 무섭도록 살이 쪘거나 주름이 져 있었다. 어렵게 전설의 360도 드럼의 주인공인 타미 리를 골라내는 것 까지는 성공했다. 그는 젊은 시절 내내 수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며 시끄럽게 살았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힘이 빠졌는지 세상이 주목을 안 하는 건지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당연히 앨범을 내지 않은 지도 꽤 됐다. 2007년에 낸 정규 앨범이 마지막이었는데, 행보를 보니 앞으로도 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게 메탈 커뮤티니의 중론이다. 사실 앨범을 내도 제대로 활동할 몸 상태가 되는지도 의문이다. 다들 젊은 시절 부어라 마셔라 놀아본 양반들이니까. 현재의 모습도 관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메탈 공연은 밴드나 청중이나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가만히 앉아서 보는 공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점프도 하고 헤드뱅잉도 하고 바디 서핑도 하고 기차놀이도 하고 슬램도 한다. 여기에 “오늘 날 잡고 왔으니 나를 죽여달라!”라고 울부짖는 관객들의 요구가 더해지면 공연장은 인간들의 거친 숨소리로 한층 후끈해진다. 다른 장르의 콘서트처럼 사회자를 불러 놓고 짤막한 토크쇼를 한다거나, 장시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 같은 건 거의 없다. 팬들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순간을 온몸에 새겨 놓고 싶어 한다. 밴드의 음악이 강할수록 공연 시간이 짧은 건 그래서다. 공연이 끝나면 밴드들도 관객들도 탈수기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상태로 집에 돌아간다. 거기서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밴드들이 거칠게 다뤄줄수록 추억도 진하게 남는다. 그제야 진정한 메탈 변태가 되는 것이다.                


광란에 굶주린 메탈러들을 능수 능란히 다루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관객들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메탈 뮤지션들에게 체력 이야기는 민감한 주제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밴드들의 명확한 지향점을 파악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인터뷰를 할 때에는 최대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하드코어 밴드 B에게도 체력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들은 ‘걱정이 안 되는 건 거짓말’이라 하면서도 동시에 뼈 있는 대답을 던졌다. “중요한 건 얼마나 더 강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독보적인 세계냐가 아닐까요.” 그들은 그저 강한 사운드만 추구하기보다 독자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러려면 일단 꾸준해야할 것이다. 어떤 재능을 가졌든 예외 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운보다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게 될 테니까. 매일 담배를 한 갑씩 피고도 세계 축구사에 족적을 남긴 요한 크루이프가 은퇴 후에 폐암으로 죽은 것처럼. 어쩌면 등장하자마자 세상을 뒤집어 놓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자기관리와 성실함이 필수니까.  


참 곱게도 나이 드셨다.


그런 의미에서 ACDC는 내게 특별한 존재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만든 밴드를 지금껏 유지하고 있으니까. 좋은 기억들도 있다. 1992년 발매된 그들의 라이브 앨범을 집어 들었을 때 레코드 가게 사장님이 “이야, 음악 좀 들을 줄 아네”하며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록 음악을 30년 들었다는 사장님에게 음악 좀 듣는다는 소리를 듣는 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그 전에도 ACDC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그들의 음악에 더 빠져들었다. 누가 더 세고 빠른지를 경쟁하듯 후려치는 사운드에 파묻혀 있던 때 농익은 블루스가 섞인 초기의 헤비메탈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안겨줬다.


1990년대 이후로 그들은 5년에서 8년 주기로 앨범을 내곤 했는데, 그 사이마다 나도, 세상도, 록 음악 시장도 달라져 있었다. 2014년 <Rock Or Bust>앨범이 나왔을 때 나는 이제 막 졸업한 백수였지만, <Power Up>이 발매된 지금은 동네에서 돈가스를 튀기고 있다. 게다가 그 사이에 한국에선 대통령이 바뀌었으며, 코로나 19바이러스가 전 지구를 집어삼켰고, 이제 10들은 더 이상 록스타를 동경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마울 수밖에. ‘우린 이제 그만 해야겠어’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좀 더 해볼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들이 내는 앨범이 좋은지 아닌지는 이제 내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저 꾸준하다는 것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한 것들이 세상에는 분명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 번에 불타오르는 게 천천히 사그라지는 것보다 낫다는 너바나의 리더 커트코베인의 말을 공책 한 구석에 적어 다니곤 했다. 매 순간 의미 있게 지내지 않는다면, 그런 삶이란 그저 생물학적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으며 지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떨어지는 체력, 늘어나는 주름, 무뎌진 감성. 그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용기임을. 특별할 것 없는 나날들을 살아내온 그 시간들 역시 하나의 독자적 세계일 수 있음을.       


이제는 불현듯 사라진 천재들에게 눈길이 가지 않는다. 내게 있어 그들의 생애는 희대의 걸작을 위해 자신을 파괴해 온 과정처럼 느껴진다. 그보다는 졸작 소리를 들을지언정 자신의 이름을 걸고 꾸준히 앨범을 내주는 록스타들에게 마음이 간다. 감성이 좀 무뎌졌으면 어때. 추억팔이 좀 하면 어때. 드럼 솔로도 기타 속주도 필요 없다. 당신들이 우쿨렐레를 쳐도 나는 열심히 머리를 흔들 테니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한번쯤은 생각나겠지. 수많은 난관과 좌절을 겪어가며 쌓아온 누군가의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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