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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l 15. 2024

좋은 서버는 좋은 셰프만큼이나 구하기 어렵다



Menu 2. 좋은 서버는 셰프만큼이나 구하기 어렵다



몇 년 전, 서울에서 우육면을 잘한다는 가게에 혼자 찾아간 적이 있다. 벼르고 별러서 간 곳이었다. 맛있게 먹으려고 일부러 아침도 거르고 왔는데, 들어가자마자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테이블의 절반은 정리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손님이 떠난 테이블에는 치우지 않은 그릇이 그대로 널려 있고, 바닥에는 손님들이 쓰고 버린 휴지가 군데군데 버려져 있었으며, 어쩐 일인지 식사 중인 손님들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때임을 감안해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반면 종업원들의 표정은 웬일인지 여유로웠다. 급한 기색이 없었다. 둘이서 테이블을 주섬주섬 치우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게 뭐지? 싶었지만, 매장 안에 들어왔으니 갑자기 나가기도 뭐 해 일단 앉았다. 추천 메뉴인 우육면과 교자를 하나씩 시키기로 정했다.


근데 종업원이 안 돌아온다. 5분을 넘게 기다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올 기미가 없었다. 결국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향했다. 그때 주방에 있는 나이 지긋하신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결국 그에게 주문을 했다. 종업원들은 그로부터 5분 뒤에 다시 매장에 나타났다. 왜 손님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테이블 여덟 개에 서버가 둘인데 매장 상태가 이렇다면 두 가지 이유다. 지나치게 손님들이 몰렸거나, 서버의 움직임이 느리거나. 결과적으로는 둘 다로 보였다. 심지어 두 사람 다 책임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 사장님은 어디 계시지? 아마 높은 확률로 주방에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더 높은 확률로 자기 매장의 홀 서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고 있을 터였다. 상식적인 사장님이라면 이 상황을 그냥 보고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자로서 이런 일에 얼굴을 붉히는 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직업병처럼 매장의 동선과 테이블 구조를 보면서 방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황을 유추하는 편이다. 때는 평일 오후 1시 30분. 위치는 지하철역에서 15분 떨어진 구도심이다.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때였고, 그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점심시간이면 안주류보다는 볶음밥이나 면 중심의 요리들이 많이 나갔을 것이다. 면 하나가 제대로 익으려면 중면을 기준으로 약 3분 20~40초가량 걸린다. 면의 형태를 보니 수타가 아닌 업소용 제면기로 만든 듯 보인다. 그렇다면 매장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면탕기의 용량을 기준으로 한 번에 최대 6~8인분 정도 소화가 가능하다. 매장은 20평 남짓한 면적에 테이블 여덟 개. 여기에 서버 둘. 테이블 하나가 4인용이니까 최대 수용인원은 서른두 명, 일시에 손님이 몰려도 총 32인분이다. 숙련된 이들이면 충분히 해내고도 남는다.           


주방에는 세 명이 있었고, 점심시간에 대비해 밑작업을 해 놨다고 가정하면 약 32인분 가량의 메뉴가 15분 안에 막히지 않고 나올 수 있다. 손발이 잘 맞는다면 테이블이 세 바퀴쯤 돌 때까지는 거뜬하다. 사이드 메뉴 주문이 많은 중화요리 전문점 특성상 오가는 움직임이 많다 하더라도 테이블 상태가 이렇게까지 난장판이어선 안 된다. 결국 이 난장판은 서버의 역량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쉽게 할 수 없는 얘기지만, 이들이 내 직원이라면 나는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만두는 육즙 가득하고, 우육면은 듣던 대로 진한 국물에 부드러운 고기가 압권이었다. 면도 식감이 좋아 씹는 내내 즐거웠다. 생각보다 메뉴가 나오는 속도도 괜찮았다. 아마 나와 눈이 마주친 그분이 높은 확률로 사장님일 것이었다.


그때의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당은 요리와 서빙, 두 개의 날개로 날아간다. 서버는 그저 웃는 낯으로 그릇을 나르는 게 전부인 직업이 아니다. 아무리 음식 맛이 좋아도 서버의 역량이 부족하면 손님들은 재방문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요리사들이 아닌 서버들이기 때문이다. 엔진이 아무리 좋아도 타이어가 엉망이라면 어떤 교통수단도 고철덩어리일 뿐이다. 그게 요리사와 서버의 관계다.     


흔히들 사장이 주방을 쥐고 있어야 음식 맛이 제대로 유지된다고들 한다. 근데 이 논리를 서빙에 적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음식에 맛을 내는 기술이 존재하듯, 서빙에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며, 손님을 살뜰히 챙기는 여러 가지 요령들이 있다. 서빙을 책임지고 지휘할 사람이 반드시 매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서빙 책임자로서 갖춰야 할 역량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상태가 빨리 변하는 메뉴와 조리시간이 긴 메뉴를 구분하고 그 시차까지 계산해 서빙하는 능력. 적은 인원이 앉았다 간 테이블을 먼저 치운 뒤 다음 손님을 받는 재치. 인원수에 따른 자리 안내 센스. 여기에 손님의 불편한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눈치. 이 모든 판단을 짧은 시간 내에 해내는 순발력.


이게 다 되냐고? 물론! 매장 매니저 직함을 달고 있을 정도의 경험이라면 누구든 도달 가능한 경지다. 물론 할 줄 아는 것과, 완벽에 가깝게 해내는 건 또 다른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러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분명 세상에 존재하며 어느 외식업 체인에 가도 귀하게 쓰인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외식업 분야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또는 현장에서 경력을 인정받아 본사로 발령받는 게 목표라면, 매니저로서 위와 같은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좋다.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외식업 체인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테니까. 이들의 존재감은 같이 일할 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이 매장에 없을 때, 휴가를 떠났을 때 한여름 터져버린 변압기처럼 다가온다. 그러니 재능 있는 서버가 있다면 잘 챙기자.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때에는 이미 늦다. 땅을 치고 후회해 봐야 엎질러진 물이다.


그러니 당신이 창업을 생각하고 있거나 이미 가게를 운영 중이라면 홀 서빙을 주방의 보조쯤으로 생각하는 인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은 맛있는데 썩 가고 싶지 않은 가게가 될 지도 모른다. 인식은 방향이고, 방향은 곧 결말이다. 어떤 일들은 우리의 인식에 따라 흘러가기도 한다. 언젠가는 서버가 외식업에서 차지하는 가치가 재조명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식당은 요리와 서빙, 두 개의 날개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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