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3. 그릇의 무게, 유지비의 무게
서울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 일이다. 후쿠오카 지방의 가정식을 하는 곳이었다. 재한 일본인들도 많이 찾는 맛집이라 그런지 매장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30분 정도 기다린 뒤에야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치킨난반 정식을 시켰다. 밥 하나에 네 개의 찬, 장국 하나가 나왔다. 이렇게 말하니 양이 작아 보이지만 반나절이 지나도 배가 꺼지지 않을 만큼 양이 많았다. 당연히 음식의 무게 역시 상당할 터. 하지만 서버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이유는 쟁반과 그릇에 있었다. 쟁반은 가벼운 원목 재질이었다. 반찬을 담은 사기 역시 가벼웠다. 서버 둘이서 스무 개 가까운 테이블을 커버할 수 있는 이유였다.
서빙의 형태를 좌우하는 건 제공하는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다. 고깃집이나 국밥집은 반찬의 가짓수가 많다. 뚝배기나 화로 등 무겁고 위험한 조리도구를 옮겨야 할 때도 있다. 이 경우 큰 트레이에 한 번에 싣고 가는 게 수월하다. 고깃집 같이 좌식 테이블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단품 식사를 파는 매장들이다. 이 경우 상당수가 쟁반에 음식을 올려서 제공한다. 쟁반 서빙은 치울 때 편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한 번에 1인분만을 옮길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이러면 주방과 테이블을 오가는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피로도는 늘어난다. 여기에 쟁반과 그릇까지 무겁다면 직원들이 그곳에서 오래 일하기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즉, 쟁반의 무게는 서버의 근무여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나는 지난겨울에 찾아간 돈가스 전문점에서 그 중요성을 절감했다. 등심 정식을 주문했는데 무려 가로로 50cm에 달하는 쟁반에 담겨 나왔다. 쟁반은 쟁반이라기보다 차라리 가구에 가까웠다. 돈가스를 플레이팅 하는 접시와 채반, 양배추 그릇과 반찬종지도 전부 묵직했다. 멋있긴 한데, 결국 그릇은 소모품이다. 단가와 생산성 역시 감안해야 한다. 그릇이 비싸면 결국 음식 가격에 교체비용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흔히들 간과하는 게 있다. 노동강도다. 흘깃 봐도 쟁반 무게가 상당해 보였다. 슬쩍 들어보니 승모근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 탓인지 여성 서버들이 테이블에 쟁반을 내릴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았다. 특히 중심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서버들은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테이블에 내릴 때마다 허리를 숙여야만 하는데, 쟁반이 무거우면 그 자체로 고통이다. 이 정도면 하루에 쟁반 열 개만 옮기고 치워도 적지 않은 피로를 느낄 것이었다. 테이블 열다섯 개인 이 매장에 서버가 세 명인 게 이해가 됐다. 이처럼 쟁반의 무게 하나 때문에 인건비를 추가로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담음새(플레이팅)는 중요하다. 그리고 이 담음새의 끝은 그릇의 디자인이다. 그릇만 잘 골라도 가게의 미적 감각을 한껏 띄울 수 있고, 가게만의 고유함을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신경 쓰는 나머지 서빙의 효율성을 간과하는 가게들이 많다.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쟁반의 무게와 유지비는 정비례 관계다. 여기엔 서버의 피로도, 즉, 인건비도 일부 포함돼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심미안과 기능성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희생시켜선 안 된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하나 더 있다. 그릇과 쟁반의 마찰력이다. 마찰력이 떨어지면 쟁반이 살짝만 기울어도 그릇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많은 일식-중식 매장들이 우드 패턴으로 찍어낸 플라스틱 재질의 쟁반을 쓴다. 광이 날 만큼 표면이 반질반질하다. 여기에 쟁반과 그릇까지 코팅이 된 재질이라면 빙판 위에 발을 디딘 것 마냥 미끄럽다. 나 역시 그 때문에 큰일 날 뻔한 적이 있다. 체인 본사에서 들여온 새 그릇이 문제였다. 그릇 바닥이 너무 매끄럽게 마감된 탓에 조금만 몸을 틀어도 쟁반이 미끄러졌다. 그렇다고 이미 사놓은 걸 폐기할 수도 없는 노릇. 고민 끝에 칼 가는 숫돌로 그릇 밑을 갈아낸 뒤 썼다.
영업을 하다 보면 2, 3년 주기로 그릇이나 플레이팅에 변화를 주고 싶어 진다. 교체해야 할 그릇의 수도 이 무렵을 기점으로 급증한다. 체인점의 경우 그 시점에 맞춰 본사에서 식기 관련 리뉴얼을 권유-제안하기도 한다. 샘플만 봐서는 잘 모른다. 이럴 때는 예행연습만이 답이다. 새로 쓸 그릇에 음식을 담아 쟁반에 올린 뒤 테이블까지 이동해 보자. 그리고 직접 먹어보자(그릇은 손님이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얼마든지 미끄러지거나 엎어질 수 있다). 바로 답이 나온다. 어딘가 부족함이 느껴진다고? 개인 매장이라면 시간을 두고 샘플을 더 찾아보자. 서두를 필요 없다.
만약 당신이 체인점의 가맹 점주라면? 반드시 본사에 사용 후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혹시 본사가 강경하게 나온다면, 나처럼 그릇의 바닥을 숫돌로 갈아라. 본사와 나의 이해관계가 늘 같을 수는 없다. 가맹 계약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것 또한 사장의 역량이다. 대신 눈치는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