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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l 16. 2024

그릇의 무게, 유지비의 무게


Menu 3. 그릇의 무게, 유지비의 무게


서울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 일이다. 후쿠오카 지방의 가정식을 하는 곳이었다. 재한 일본인들도 많이 찾는 맛집이라 그런지 매장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30분 정도 기다린 뒤에야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치킨난반 정식을 시켰다. 밥 하나에 네 개의 찬, 장국 하나가 나왔다. 이렇게 말하니 양이 작아 보이지만 반나절이 지나도 배가 꺼지지 않을 만큼 양이 많다. 당연히 음식의 무게 역시 상당할 터. 하지만 서버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이유는 쟁반과 그릇에 있었다. 쟁반은 가벼운 원목 재질이었다. 반찬을 담은 사기 역시 가벼웠다. 서버 둘이서 스무 개 가까운 테이블을 커버할 수 있는 이유였다.      


서빙의 형태를 좌우하는 건 제공하는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다. 고깃집이나 국밥집은 반찬의 가짓수가 많다. 뚝배기나 화로 등 무겁고 위험한 조리도구를 옮겨야 할 때도 있다. 이 경우 큰 트레이로 한 번에 쌓아서 몰고 가는 게 수월하다. 고깃집 같이 좌식 테이블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단품 식사를 파는 매장들이다. 이 경우 상당수가 쟁반에 음식을 올려서 제공한다. 쟁반 서빙은 치울 때 편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한 번에 1인분만을 옮길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그만큼 주방과 테이블을 오가는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피로도는 늘어난다. 여기에 쟁반과 그릇까지 무겁다면 직원들이 그곳에서 오래 일하기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즉, 쟁반의 무게는 서버의 근무여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개인적으로는 겨울에 찾아간 돈가스 전문점에서 그 중요성을 절감했다. 등심 정식을 주문했는데 무려 가로로 50cm에 달하는 쟁반에 담겨 나왔다. 쟁반은 쟁반이라기보다 차라리 가구에 가까웠다. 돈가스를 플레이팅 하는 접시와 채반은 두께 1cm가량의 철판이었다. 여기에 양배추를 담는 그릇과 반찬을 담는 종지는 모두 사기제품이었다. 멋있긴 한데, 결국 그릇은 소모품이다. 예쁘면 좋지만, 결국 깔끔하고 단정한 게 최고다. 그릇이 비싸면 결국 음식 가격에 교체비용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성 서버들이 테이블에 접시를 내릴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았다. 쟁반을 내릴 때마다 중심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테이블의 높이는 약 75~80cm. 키가 160cm 여성이라면 테이블은 골반이나 허벅지 밑부분에 위치한다. 이 무거운 쟁반을 내릴 때마다 허리를 숙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하루에 쟁반 열 개만 옮기고 치워도 적지 않은 피로를 느낄 것이다. 열댓 개 남짓한 테이블에 서버가 세 명인 게 이해가 됐다. 테이블이 두 바퀴만 돌아도 지쳐 쓰러질 게 뻔했다. 쟁반의 무게 하나 때문에 인건비를 추가로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담음새(플레이팅)는 중요하다. 그리고 이 담음새의 끝은 그릇의 디자인이다. 이것만 잘해도 가게의 미적 감각을 한껏 띄울 수 있고, 가게만의 고유함을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신경 쓰는 나머지 서빙의 효율성을 간과하는 가게들이 많다.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쟁반의 무게와 유지비는 정비례 관계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희생시키면 안 된다. 심미안과 효율성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하나 더 있다. 그릇과 쟁반의 마찰력이다. 마찰력이 떨어지면 쟁반이 살짝만 기울어도 그릇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많은 매장들이 목재 모양으로 찍어낸 플라스틱 재질의 쟁반을 쓴다. 뜨거운 국물요리를 선보이는 매장들은 여기에 플라스틱 냄비받침까지 쓴다. 쟁반과 그릇 모두 코팅이 된 재질이라면 높은 확률로 미끄러진다. 나 역시 그 때문에 큰일 날 뻔한 적이 있다. 고민 끝에 칼 가는 숫돌로 그릇 밑을 갈아낸 뒤 썼다.      


영업을 하다 보면 2, 3년 주기로 그릇이나 플레이팅에 변화를 주고 싶어 진다. 체인점이라면 본사에서 식기 관련 리뉴얼을 권유-제안하기도 한다. 샘플만 봐서는 잘 모른다. 가장 확실한 답은 언제나 실전 적용이다. 새로 쓸 그릇에 음식을 담아서 쟁반에 올린 뒤 테이블까지 이동해 보자. 그리고 직접 먹어보자. 바로 답이 나온다. 어딘가 부족함이 느껴진다고? 개인 매장이면 샘플을 더 찾아보는 게 답이다. 서두를 필요 없다.      


당신이 가맹 점주라면 본사에 사용 후 의견을 반드시 피력해야 한다. 당신과 계약을 맺은 본사가 강하게 나온다면, 나처럼 그릇의 바닥을 숫돌로 갈아라. 본사와 나의 이해관계가 늘 같을 수는 없다. 가맹 계약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것 또한 사장의 역량이다. 대신 눈치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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