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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l 20. 2024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찾자


Menu 8.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찾자


“234만 원, 오늘 하루 매출액이야. 한 테이블 당 3만 원이라고만 치자. 과연 내가 오늘 몇 개의 테이블을 세팅하고 치웠을 거 같니?”     


영화 <극한직업>에서 장연수(이하니 분)의 대사다. 치킨집에서 잠복근무를 하던 김영호(이동휘 분)는 마약조직의 수괴인 이무배(신하균 분)를 발견해 추적하지만 동료 형사들이 치킨집 일이 바빠 아무도 무전을 받지 못해 이를 책망한다. 이 대사는 장연수가 김영호의 타박을 받아치는 과정에서 나왔다. 작중 김영호가 대답을 못했으니 내가 대신 대답하겠다. 그녀는 그날 총 78개의 테이블을 세팅하고 치웠다.


말 나온 김에 그녀의 노동량이 어느 정도인지 계산해 보자. 촬영지인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금곡로 6에 위치한 건물의 대지 면적은 246.0(74평)다. 여기서 주방과 카운터 면적 비율을 30%로 가정하면 168㎡(50평)의 매장 면적이 나온다. 가로세로 약 12.86m다. 이를 카운터에서 가장 먼 테이블까지의 거리로 대입하면 서빙 1회, 즉 왕복으로 25.6미터를 오가는 셈이다. 테이블 세팅에 왕복 1회, 빈자리 정리에 1회이니 테이블 하나당 이동거리는 최소 75m에 달한다. 토트넘 홋스퍼스의 주장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2019-2020 시즌 번리전에서 단독 질주해 넣은 골,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 게다. 그때 손흥민이 달린 거리가 약 75.5미터다.      


이 계산에 따르면 극 중 장연수는 이  총 5.8km를 쉬지 않고 걸어 다녔다. 프로급 수비수가 전반전 뛴 거리의 평균치와 비슷하다. 이는 반찬 리필, 추가주문 등 손님의 요청사항을 제외한 수치다. 이를 고상기 반장(류승용 분)과 함께 해냈다고 해도 상당한 수준의 노동량이다. 이게 말이 쉽지, 아르바이트생이었으면 다음날 연락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바쁜 날 나는 악몽을 꾼다. 젓가락을 든 왜구들이 쳐들어와 성이 함락되는 모습을 지켜보다 잠에서 깬다.   


그래도 장사가 잘 돼서 좋지 않냐고? 파리만 날려도 문제지만 예측하지 못한 날에 손님이 몰아쳐도 문제다. 주문이 적체되면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늘어진다. 손님이 불편을 겪으면 컴플레인이 여기저기서 날아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죽어라 팔아도 좋은 소리 한 번을 듣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러면 당일 매출은 좋아도 재방문율이 낮아져 발목을 잡는다. 무엇보다 생산력 이상으로 일한 탓에 다음날 출근이 힘들 만큼 피로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슬기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려면? 꾸준히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다. 서버의 이동거리를 최소화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동거리가 줄어들수록 한 자리에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추가로 인건비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가게의 비용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좋은 장수는 이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고 그 안에서 싸운다. 무엇보다 이 여건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시킬 수 있다.  

 


서버에게 있어 최적의 매장 구조는 ‘ㅁ’ 자 또는 H형 구조다. 11자형이나 직사각형 구조도 괜찮다. 가장 가까운 테이블과 가장 먼 테이블의 거리 차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핵심은 서빙의 출발점이 정중앙에 있는 것이다. 반대로 최악의 구조는 출발점이 측면에 몰려 있다. 테이블이 한쪽에만 집중돼 있으면 이동거리가 길어지고 방향전환 횟수가 늘어난다. 이러면 서버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몸을 트는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 사각지대가 많아서 서버와 손님이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고 부딪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식 카운터석 구조는 그런 점에서 이상적이지만 그릇을 치울 때가 문제다. 어쨌거나 손님이 떠난 자리는 깔끔히 치워야 하는데 이 경우 빙 돌아 나와야만 한다. 모든 고객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고려해야 한다. 카운터석 벽면이 청결하지 않은 경우도 여럿 봤다. 그릇이 닿는 곳 위주로 청소를 하다 보니 벽면에 국물 등 음식물이 튈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가게들이 많다.


카운터의 위치 또한 서버의 동선에 중요하다. 대부분의 식당들은 카운터가 매장 입구 또는 주방 앞에 붙어있다. 각 매장의 구조와 환경이 다르지만,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카운터와 주방이 붙어있는 구조가 한 곳에서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원칙에는 더 부합한다. 일 하다 말고 매장 입구로 뛰어나가 계산을 마치고 다시 주방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상상하면 이미 그 자체로 피곤하다.


아닌 것 같지만 일이 반복될수록 아주 작은 차이도 크게 작용한다. 한 번 서빙할 때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면 서너 시간 뒤에는 몸 여기저기가 결릴 것이다. 업무 능력만큼이나 환경이 중요한 이유다. 목수는 연장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경쟁이 치열한 분야일수록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작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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