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젊은 날의 필수 요소처럼 여겨진다. 20대에는 불안이 동기부여의 원천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 불안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걱정이 있어야 준비도 철저해지는 거야." "불안하지 않으면 안일해지는 거 아니야?" 이런 말들이 익숙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 이다. 하지만 마흔쯤 되면 문득 깨닫는다. 이제는 불안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보다, 도리어 나를 짓누르는 무게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불안은 원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불안은 단순한 방어 기제가 아니라 중독처럼 작용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걱정하는 습관을 길러왔다. 시험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불안을 동력으로 삼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불안과 함께하다 보니, 불안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아무 걱정이 없는 게 더 불안해."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게 오히려 불안하지 않아?" 따위의 말들을 흔히 하는 것도, 불안을 통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 자체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우려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이미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같은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대비가 아니라 불안을 위한 불안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불안을 스스로에게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불안해야만 열심히 사는 것 같고, 불안이 없다면 게을러질 것 같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불안은 바로 이 '자유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불안을 수반하는 선택의 순간들이 반복된다. 이직을 해야 할까, 결혼을 해야 할까, 아이를 가질 것인가 등등. 마흔에 접어들면 이런 선택들이 더욱 신중해지고, 결정이 불러올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으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로 작용하는 불안을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불안이 있다고 해서 선택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인정한 상태에서 나에게 최선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 불안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불안을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는, '필요한 불안'과 '불필요한 불안'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긴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불안이지만, 일이 끝난 후에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불필요한 불안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안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마흔 이후에는 불안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2, 30대 때처럼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무게는 점점 더 삶을 짓누를 것이다. 흔히 불안을 대비책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불안해해야만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고, 행여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에 따른 심리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어차피 다가올 일은 다가온다. 인간이 하는 걱정의 9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설령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대부분은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불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불안을 통해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통제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불안은 피할 수도 없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불안을 관리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대비책을 세웠다면 더 이상 같은 문제로 걱정하지 않는 것, 걱정하는 시간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 익숙해지는 것. 불안을 줄이려고 애쓰기보다는, 불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불안을 덜어낸다고 해서 삶이 나태해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집중해야 할 것에 더욱 집중하고, 중요한 순간에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불안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흔이 풀어야 할 삶의 과제 중 하나는, 불안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필요한 불안을 인정하고, 불필요한 불안과는 담담하게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비로소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