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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Mar 02. 2021

다시 평화누리길에 오르다

평화누리길 7코스 헤이리길

일단 시작하라고들 쉽게 말하지만 언제나 시작에는 많은 이유가 필요하다. 평화누리길 걷기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일 년 반이 넘게 걸렸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다고 해도 몸만 허락한다면 못 갈 것도 없는 길이었다. 하루면 갔다 올 수 있는 그 길을 다시 시작하기가 왜 그리 힘들었는지...


걷기를 멈춘 이유


걷기를 중단한 것은 돼지콜레라 때문이었다. 당시 휴전선을 오가는 멧돼지들이 콜레라를 옮긴다고 하여 보이는 즉시 사살조치 중이었다. 방역 중에 굳이 내 발길을 보태기 싫었고, 멧돼지로 오인하여 총알이 날라 올지도 모를 일이기에 걷기를 멈추었더랬다.


돼지콜레라에 이어 코로나가 왔다. 몇 달 사이 돼지가 아닌 사람이 방역의 대상이 될 줄도 몰랐지만, 아직도 바이러스 앞에 취약하고 무력한 인류를 넋 놓고 지켜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다. 멧돼지가 아닌 이상 멈추어야 했다.



중단이 길어진 건 개인적인 사정때문 이었다. 여행은 앞뒤의 삶을 구분하기 위한 부자연스럽고 의도적인 행위이다. 13코스를 끊어가며 일주하다 보니 긴 공백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상이 여행의 공백이 된다.  어쩌면 그 공백을 돌아보는 것도 두고두고 조금씩 걷는 평화누리길 색다른 재미이자 의미가 아닌 싶어 굳이 남들은 몰라도 되는, 알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다시 걷기 시작한 이유를 되돌아본다.


온 국민이 코로나로 갑갑한 한 해를 보낸 지난 해 내겐 몇 년 치 사건사고가 터졌다. 대충 큰 일만 돌아봐도... 코로나가 퍼지기 직전 1월 한 달 동안 베트남 호치민에서 글 작업을 했고, 돌아와서도 1년 동안 드라마 대본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그 사이 5월 작업실 옥탑방으로 이사, 6월 아버지 교통사고, 6월 장인어른 소천, 9월 아버지 뇌종양 발견, 12월 수술 후 1월까지 간병... 10년 전 대장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신 고령의 아버지가 또 한 번 큰 고비를 넘기고 건강을 회복하시면서 일상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힘들었던 1년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다시 걷기 시작한 이유


월남에서 글 작업을 하며 보낸 한 달과 수술 직전 다녀온 1박2일 여수 가족여행에 대한 여행기를 쓰지 못한 것은 당시에는 그 여행의 앞뒤를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80 고령 아버지의 뇌종양 투병기도 아직은 글로 남길 여유가 없다. 그리고 이제서야 지난 일 년을 인생의 한 시기로 구분 지을 이벤트를 감행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딸아이와의 여행도 숙제로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강릉 2박3일 여행을 다녀오면서 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둘만의 수학여행을 가자고 마음먹었었는데, 중학교 졸업여행을 가지 못한 채 1년이 지나버렸다. 4년 동안 딸아이는 몇 번인가 그때 이야기를 했다. 툭툭 던지는 말속에 다음번 여행은 더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늦게라도 구멍 난 약속을 메워야 했다. 다시 걷기 시작해야 할 이유의 화룡점정.


7코스에 오르며



7코스로 떠나며 품은 기대는 두 가지. 파주 통일로 구간인 7코스에는 어떤 이야기와 풍경이 숨어 있을까? 과연 4년 전 30분만 걸어도 주저앉고 힘들어 했던 딸아이는 7코스 23km를 완주 할 수 있을 것인가?


2월 20일. 딸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9시 반에 집을 나섰고, 광역버스를 타고 11시가 좀 안 되7코스 출발점인 성동사거리에서 내렸다. 아직은 대중교통으로 당일로 오갈 수 있지만, 파주를 벗어나 연천으로 넘어가게 되면 당일로는 어려울 것이다. 1박2일로 가기에는 더 많은 이유가 필요하겠지만, 지나온 길이 쌓여갈수록 그것이 곧 끝까지 가야할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추운 날을 피해 날을 잡았더니 미세먼지가 뿌옇게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걷기를 멈추고 있었던 동안 한 발짝도 진전이 없었던 남북관계가 뿌연 하늘과 겹쳐졌지만 나만의 과한 의미부여를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대신 장도에 오르기 전 보온병에 가득타온 커피믹스를 한잔 따라 딸아이에게 건넸다. 4년 전, 강릉 한옥스테이에서 아침을 먹고 아무도 몰래 커피믹스 한 봉지를 챙겨들고는 차마 타먹겠다는 말을 못한 채 내 뒤를 따라왔던 아이를 생각하며.   


통일을 기다리는 난개발



성동사거리에서 걷기 시작하자마자 프로방스마을이 나왔다. 프랑스풍도 아니고, 시골풍도 아닌 그야말로 주인 맘대로 모양을 낸 레스토랑과 카페가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듯 도로를 따라 자리 잡고 있었다. 딸아이도 이제 내 취향을 잘 아는지, 아니면 아이도 내 취향과 같은지 다행이 어디 한군데 들어가 보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코로나로 오랫동안 집에서 답답하게 지내다 나와서 그런지 미세먼지에 아랑곳없이 즐겁게 앞서 걸었다. 아이도 이 여행을 기다려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그 상쾌한 기분이 얼마나 갈지는 두고 볼일이지만.



7코스는 대체로 자유로를 따라 조성되어 있었다. 지난 6코스의 풍광과 코스가 다채로웠기에 7코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아쉽게도 도보 길은 난개발의 연속에 가까웠다. 군부대와 썰렁한 마을 사이사이 급히 들어선 공장과 위락시설들이 외따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전망 좋은 언덕을 깎아 전원주택 단지를 짓고 있었고, 비어 있던 논들은 듬성듬성 택지로 메워지고 있었다. 공사가 많다보니 덤프트럭이 자주 지나갔고, 길 또한 거칠게 패인 곳이 많았다. 자유로 근처 통일에 대한 준비는 과도할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풍경이 파주에서 자유로를 따라 문산 신도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경기도에서 이곳만큼 계획과 질서가 필요한 곳은 없지 않을까 하는 정도.  

거칠기 만한 길을 오래 걸었다. 도보 길은 차들이 질주하는 자유로 옆으로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식당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 차도 옆 개장 휴업 중인 캠핑유원지 앞 벤치에서 간식거리를 꺼내 점심을 때웠다. 아쉬운 마음에 아이 눈치를 보며 ‘하필 오늘은 경치가 별로 없네’ 하자 딸아이는 ‘괜찮아, 언제 또 이런 고속도로 옆을 걸어보겠어.’ 하며 쿨하게 받아쳤다. 나에겐 볼 것도 없고 이야기도 없는 길이지만, 아이에겐 그저 낯선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모양이었다. 강릉 해변과 솔 숲길도 힘겨워하던 아이였는데 4년 사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진 것 같았다.


반구정 가는 길

오후 4시가 넘어 문산 어름에 이르자 길이 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신도시 뒷산의 야트막한 능선이 7코스의 끝이자 8코스의 시작인 반구정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반구정 : 기러기와 함께하는 정자라는 뜻. 파주가 고향인 황희 정승이 말년에 지내기 위해 임진강 가에 지은 집과 정자) 비교적 편안하게 이어진 산책로에 가까운 산길이지만 20키로를 걸어 온 뒤 오르락  내리락 걸어야하다 보니 제법 다리를 풀리게 하는 맛이 있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산길. 능선 아래로 금방이라도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뛰어다닐 것 같은 쌩쌩한 참호들이 전방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반갑고도 유일한 볼거리였다. 삼국시대 이래 분명 수많은 피와 목숨이 서린 야산일 것임에 틀림없지만 전적을 알만한 지명도 표식도 없었다. 땅속에 뿌려진 피를 미루어 애도할 여유도 없이 속으로 반구정 반구정을 되뇌이며 하염없이 걸었다.


초조하고 조급해하는 나와 달리 딸아이는 느긋하게 잘 걷고 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였으나 잠깐의 휴식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를 독려하며 일어섰다. ‘여기까지 왔는데 가야지...’ ‘그래, 가 보자...’. 그렇게 마지막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뎠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산길이 끝나고 터널 아래 평화누리길 8코스 시작을 알리는 관문에 도착했다. 그 관문을 지나니 반구정이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고, 오늘 유일하게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는 반구정에 도착했으나... 반구정을 둘러친 한옥 담장 사이 철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우리가 늦게 온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로 잠시 폐쇄를 한 것인지. 담장너머 바위 위에 곧추 선 두 개의 정자가 노을에 붙 타고 있었다. 거기 서서 바라보는 낙조는 분명 오늘의 힘든 여정을 보상하고도 남을 것임이 분명했다.



어디서 이 여행을 끝내야 할까. 문 닫힌 반구정 옆에는 최전방 임진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으리으리한 한옥 장어집이 성업중이었다. 강변을 장벽처럼 막고 선 장어집 옆으로 샛길이 나 있었다. 어슬렁 어슬렁 식당주방 앞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뒷마당이 나왔다. 철조망 너머 임진강에 해가 지고 있었다. 다른 코스에서는 흔하디흔한 철조망이지만 오늘은 처음이기에  반가웠다. 그런대로 오늘의 여정을 축하할만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철조망 앞 벤치에 앉아 임진강의 낙조를 바라보며 여정을 끝냈다. 허탈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딸아이의 얼굴에 이번엔 해냈다는 뿌듯함이 번지고 있었다.



함께 걷는 길


평화누리길 7코스(헤이리길)는 풍경도 이야기도 없는 지루한 길이었다. 다행이 딸아이와 함께 온 덕에 덜 지루했고, 훌쩍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큰 보람을 느꼈다. 둘만의 수학여행이라는 구멍 난 약속을 때운 것도 큰 소득이라면 소득.


애초 평화누리길 걷기는 남북화해에 대한 흥분과 기대를 달래기 위한 나만의 순례길 삼아 시작했더랬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데에는 오랫동안 닫힌 그 문이 활짝 열리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내가 다시 걷는다고 언 길이 녹을 리야 없겠지만... 남북이 다시 시작한다면, 아무 볼 것이 없어도, 멋진 풍경으로 통하는 문이 닫혀 있어도, 함께 걸어간 만큼 웃을 수 있고, 그 힘으로 끝내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P.S – 경기도 평화누리길 7코스 담당공무원에게 드리는 건의


1. 성동사거리 누리길 출발 관문과 반구정 도착 관문 옆에 잠시 숨도 고르고 가방도 정리할 벤치라도 하나 놓아주세요. (다른 코스들도 마찬가지)


2. 자유로 주변 개발에 대한 규제와 계획이 필요해 보입니다.


3. 7코스 파주와 문산 사이 차도 옆으로 인도가 아예 없는 구간이 많아 너무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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