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 Nov 11. 2018

기이한 로맨스

그건 스토킹일지도 모른다

 

작년 이맘때쯤의 이야기다.


고향 친구놈이 카톡으로 '사업' 이야기를 하길래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려는구나' 생각했다. '청춘사업'이라길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단다.


아~ 그 사업~! 하고 나는 웃었다. 그런데 이어진 이야기는 참으로 기이했다. 일 년 전에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우연히 본 여자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단다. 내가 물었다.


- 그분은 널 알아?
- 음... 나의 존재는 알지. 근데 페이스북이랑 인스타로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네.

친구는 그 여자에 대해 잠시 떠들어댔다. 지인을 통해 주워들은 정보인데, 퇴근하고 함께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좋다고 했단다. 그래서 친구놈은 회사 사정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하는 김에, 그 여자의 동네에 집을 얻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메시지에 답이 없고 집이 어딘지 몰라 답답해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그 여자에 대해 네가 아는 건 뭔데?
- 음, OO 병원에 다니는 간호사야. OO 학교를 나왔더라고. 그리고 OO 살 이래. 결혼식 이후에 우연히 길에서도 나 혼자 봤는데, 인파 속에서 빛이 나더라.

나는 또다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친구는 혼자서만 딱 두 번 본, 대화도 해보지 않은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첫눈에 반한 걸까? 어릴 적에는 이런 이야기가 꽤 낭만적으로 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서른 살인 지금, 나는 친구의 말에 몸서리를 치며 약간의 공포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 모르는 남자가 날 좋아한다면서 내 동네로 이사를 오려고 한다... 진짜 무서운데..? 
그 여자 입장에서는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일단 아는 사이가 되는 게 먼저 아니야??

- ㅎㅎ... 그런가..?

나는 친구에게 그 감정은 너만의 것이라고, 혼자만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고 해주었다. 그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좋아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그 사람을 주제로 무언가 쓸 수 있을 만큼 많이 알아야 한다고 했다. 너는 일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애가 왜 사랑은 그딴 식으로 하니? 대놓고 핀잔도 준다.

물론 내 친구는 꽤... 정상적인 남자다. 십 년을 넘게 지켜봐 온 내가 조금 안다. 그런데 왜 친구의 순수한 로맨스가 나에겐 섬뜩한 스릴러로 들렸던 걸까. 같은 동네에 살았던 열여덟 동갑내기가 대학에 가고, 직장생활을 하고, 그렇게 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친구야, 그건 연애사업이 아니라 스토킹일지도 몰라.








엄지 umji.letter@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귀를 파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