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잡설
‘닛신(Nissin) 컵누들’을 먹어 보았는지?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일본의 국민 컵라면이다. 나는 싱가포르 교환학생 시절 야식으로 사 먹곤 했다. 오리지널, 씨푸드, 치킨수프 같은 무난한 맛부터 호불호의 대명사인 똠양꿍, 락사 맛까지 다양한 맛이 있다. 시식 평을 하자면, 한국 컵라면보다 특별히 맛있는 것은 아니더라. 오히려 양은 더 적다. 현지 학생들 사이에서도 차라리 신라면이 가장 인기 있었다.
닛신 컵누들이 정말 특별한 점은 바로 모든 컵라면의 원조라는 것이다. 닛신의 회장 안도 모모후쿠는 치열한 라면 시장의 경쟁을 타개할 신제품, 컵라면을 고안해냈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컵라면용 면과 스프를 힘들게 개발했더니 다음엔 컵라면의 밀폐용기를 어떻게 제작하느냐가 문제였다. 고심을 거듭하던 중 뜻 밖의 힌트가 찾아왔다. 안도 회장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마카다미아 넛을 먹게 되었는데, 이 땅콩은 납작한 알루미늄 캔에 종이 뚜껑 포장으로 제공되었다. 그는 이 캔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회장은 빈 캔을 들고 나와 연구실로 향했고 곧이어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게 된다. 첫 번째 컵라면의 탄생이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란 유연하고 혁신적인 사고로 기회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내식 땅콩에서 기업의 해결책을 찾다니, 안도 회장은 훌륭한 기업가정신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어디서나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천원에 살 수 있다. PC방에서 컵라면 한 사발 뚝딱할 때면 그의 기업가정신에 감사해야겠다.
비행기에서 기내식 땅콩을 받고 놀라운 생각을 해낸 기업인이 한 명 또 있다. 바로 대한항공의 조현아 前 부사장이다. 그녀 역시 안도 회장처럼 포장에 담긴 마카다미아를 제공받았는데, 모종의 사고 과정을 거쳐 이것이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곧바로 승무원을 모욕하며 폭언을 쏟아냈고 비행기를 회항하라며 난동을 피우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땅콩회항 사건 역시 땅콩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 재미있지 않나. 두 명의 기업인이 똑같이 땅콩 기내식을 받았지만, 한 기업인은 회사를 살리고 사람들에게 편리를 주었고, 다른 한 기업인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기업에 치명적인 오명을 남긴 것이다.
기업인의 기내 난동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닌가 보다. 땅콩 회항 전에는 포스코의 라면 상무가 있었다. 최근에는 재벌 2세, 정확히 두정물산의 사장 아들 임범준이라는 사람이 객실을 개판으로 만들었다. 그는 전에도 기내 난동 전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 미국 가수의 트위터로 생중계를 당한 것이다. 물론 기업인의 경거망동은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다. 사례를 적느니 논란 전과가 없는 기업인 리스트를 뽑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이쯤 되면 ‘기업가정신’이라는 단어에 사전적 정의를 하나 추가해도 되겠다. “기업가정신 [명사] - 2. 경제적 지위에 도취된 기업인들이 보이는 거만하고 반인륜적인 태도”
2017년 2월 17일, 국내 최대의 기업인(의 아들) 이재용이 구속되었다. 여기에 한국무역협회의 김인회 회장이 말했다. “기업가정신이 후퇴할까 걱정이다.” 도대체 그가 말하는 기업가정신이란 무엇일까. 안도 모모후쿠 회장이 보여준 정신에는 불법이나 편법, 정경유착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의 기업가정신은 정직한 젊은이들이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무언가이다. 기업인에 대한 신뢰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기업가정신에 담긴 혁신과 진취 그리고 도전의 가치까지 폄하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