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파티의 시절 6
글쓰기 모임에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자는 제안을 듣고 나자 문득, 내가 어릴 때 담배를 피우던 얘기를 한 번 써봐야겠단 생각이 왠지 들었다. 요즘에는 온갖 공간에서 쫓겨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흡연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 삼십대 중반까지 꽤 피웠다. 습관적인 흡연양은 많지 않았다. 하루에 두 대 정도? 하지만 술자리가 있는 날은 거의 스무 개비씩 줄담배를 피웠고 일주일에 적어도 서너 번은 술을 마셨으니까... 나도 꽤 흡연가였던 편이다.
처음 담배를 피웠던 게 언제인지는 전혀 생각이 안 나는데,,, 처음 담배 피우는 여자를 봤던 건 물론 대학에 입학해서였다.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여자 선배들이 남자처럼 아무렇지 않게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걸 보며 솔직히 충격을 받았더랬다.
아니, 그 전에도 이미 할머니들이 담배를 피우는 건 드물지 않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남자들이 담배 피우는 여성을 불쾌하게(버릇없게) 생각하며 “길거리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풍기문란법으로 잡혀가게 돼 있다”는 말을 떠벌이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난, ‘그럼 저기 담배 피우는 할머니는 여자가 아니란 건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아무튼 대학에 들어가 거의 매일 술을 마시게 되었고 술자리에 앉아서 다들 담배를 피워대던 시절이다 보니, 남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있느니 차라리 나도 피우는 게 이득(?)으로 느껴졌고. 그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담배를 익혔다.
요즘 옛날 사진을 뒤지다보면 입을 흉하게 삐죽 내밀고 담배 연기를 뿜고 있는 스무살의 긴머리 내가 나타난다. 또는 코로 매운 연기를 흘리며 절로 표정을 일그러뜨린 벌겋게 취한 얼굴의 사진도 보인다. 그런 사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좋을 때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떻게 보면 청춘은 술과 담배로 자신의 모습을 망가뜨릴 수 있어서,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게 사랑을 할 수 있어서 예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담배를 피운 곳은 술자리와 대학 캠퍼스 내로 제한되었다. 술집 안에서야 너도 나도 담배를 피우니까 ‘모임과 자리에 따라서’는 여자가 피우는 것도 별 상관없었지만 야외에서 담배를 피우는 70대 이하 여성은 볼 수 없었다.
사실상 대학 캠퍼스 안만이 일종의 해방구로 ‘여자’들이 야외에서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해방구는 몇몇 곳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대학 경영대에 다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밥을 먹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함께였다. 후식으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친구의 남자친구가 담배를 꺼내 물기에, 나도 한 대 달라고 해서 같이 피웠다.
그런데 나중에 친구가 우리의 만남 후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내색은 안 했지만 무척 놀랐고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저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걸 표시를 해야 하나, 인생 참 힘들게 산다.” 그리고 경영대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담배를 안 피운다고 알려줬다. 나는 그냥 담배가 피우고 싶어 달라고 했던 것뿐인데, 기가 막혔다.
동시대를 살아도 사람들은 서로 꽤 다른 시대를 살게 된다. 친구의 남자친구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요즘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을 보면 나 역시 내심 놀랄 때가 있는 걸 느끼고 혼자 피식 웃는다. 세상이 내 습관보다 앞서간 것이다.
근데 재밌는 건, 꼭 젊은 여자들만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 나이 든 여자들은 오히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 여자라고 해도 남자들처럼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지는 않는다. 꼭 흡연 구역에 서서 피운다. 남자들보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은 여자 흡연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제약이 남아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