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지내던 1년 반 동안 많은 흥미로운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일본어가 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에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당연히 미국으로 갔어야지 왜 하필 일본이냐며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막상 나는 그런 말들에 조금 시큰둥했었다. 어릴 때 1~2년 살다 오는 것 가지고 외국어가 과연 늘어야 얼마나 늘겠냐고 어차피 돌아오면 다 잊어버릴 텐데 별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1년 반을 지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가끔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일본에서 아이들이 내게 보여준 일본어 습득력은 그만큼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아이들이 일본어를 습득해 가는 과정은 사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아이들이 단어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차근차근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초반 한두 달 동안 우리 아이들은 좀처럼 일본어로 입을 열지 않았다. 쌍둥이라서 유치원에서도 서로 한국말을 쓸 수 있을 테니 그래서 일본어가 늘지 않는 걸까?
문장으로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몇몇 단어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일본어로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면서 아이를 데리고 우리보다 몇 달 먼저 일본에 와 계시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아마 몇 달만 더 지나면 그때는 오히려 아이가 한국말을 쓰지 않으려고 해서 그걸 고민하시게 될 겁니다.”
이미 한 달도 넘게 지났건만 아직도 저렇게 입을 떼지 않는데 과연 그럴까. 솔직히 나는 조금 의구심이 들었었다. 두 달 정도가 지나가자 약간 더 적응이 빠른 편이었던 큰아이는 조금씩 일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둘째 아이는 여전히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원을 위해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원감 선생님이 내게 은우가 오늘 드디어 일본어로 문장을 말했다며 너무도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것이었다. 아이가 무려 ‘초코 바나나 구다사이(초코 바나나 주세요)’라는 말을 했다고 말이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는 순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두 달이 넘게 지나서 처음 나온 말인데 선생님이 그토록 흥분하시기에는 너무 쉬운 문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후로 정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아이는 그 문장을 시작으로 해서 마치 그간 일본어를 못 해 한이라도 맺혀 있었던 아이처럼 줄줄줄 일본어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3개월쯤부터 입을 열기 시작한 아이들은 6개월쯤 지나자 일본 아이들과 어울려 유치원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되었고 평소에도 늘 재잘재잘 말이 많던 큰아이는 1년쯤 지나자 일본 엄마들도 놀랄 만큼 그 반에서 가장 말이 많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즈음이 되었을 때는 아이들이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면 주변 일본 사람들이 깜짝 놀라 아이가 어떻게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느냐고 물어서 원래 한국인이라고 설명을 해주어야 할 정도였으니 아이들의 외국어 습득력이란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일본어 실력이 늘어가는 것이 꼭 그렇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아이의 일본어 실력이 점점 늘어갈수록 아이의 머릿속에서 한국어가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쯤 지나면서부터는 집에서도 계속 일본어만 쓰려고 하고 엄마인 나에게조차 자꾸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려고 해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일본어 실력이 아이의 일본어 실력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내가 아이에게 한번 직접 물어보았다.
“연우야, 왜 엄마한테 자꾸 일본말로 얘기하는 거야? 엄마한테는 한국말로 해야지.”
그러자 아이가 이런 답변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 말이 한국말로 자꾸 생각이 잘 안 나서요.”
세상에, 이제 일본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곧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이었기에 결국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의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엄마하고 얘기할 때는 한국말로 해야 하는 거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주고, 한국에서 잔뜩 싸 들고 간 한글책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주말에는 따로 한글학교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덕에 아이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자유롭게 구사하는 완전한 바이링구얼(이중언어 사용자)이 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일본어로 재잘재잘 떠들다가도 엄마인 나와는 순간적으로 한국어로 언어를 바꾸어 이야기하고 또 금방 친구들과 다시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부모로서 무척 뿌듯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고, 영어교육을 전공하기도 했으며 나 스스로도 어느 정도 바이링구얼의 측면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나는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사람들의 맹점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본 아이들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일본어를 구사했지만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분명 차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일본어를 사용해 왔고 집에서도 계속해서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 아이들에 비교해 우리 아이들의 일본어는 어휘력과 표현력 면에서 당연히 많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어 역시 일본에 오기 전 나이 또래 아이들의 수준에서 더 이상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두 가지 언어를 모두 다 잘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두 가지 언어를 모두 다 잘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아이를 두 개의 언어를 모두 ‘완벽하게’ 사용하는 사람으로 키운다는 것은 역시나 너무도 힘들고 복잡한 일이었다.
1년 반의 도쿄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들의 일본어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의 일본어가 이토록 많이 성장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로서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겨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일본어 학교 같은 것이 있나 알아볼까, 일본어 학습지를 시켜볼까, 개인 일본어 선생님을 알아볼까 여러 가지 방면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영어라면 또 모를까 한국에서 일본어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또다시 한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 속도만큼 일본어도 빠른 속도로 잊혀 갔다. 아이들이 일본어가 필요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익혀나갔던 것처럼 일본어가 필요 없는 환경이 되자 자연스럽게 다시 일본어를 잊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히는 일본어만큼 아이들의 한국어가 다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보게 되자 나는 결국 내 마음속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나와 남편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어로 보여주는 것 말고는 따로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거나 일본어를 쓰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일본에서 있었던 그 수많은 추억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께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이 일본에서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눈을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좋은 추억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일본에서 보냈던 즐거웠던 시간, 와세다 유치원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했던 그 시간, 가족이 온전한 가족으로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다시 일본어를 접하게 될 때, 언젠가 또다시 일본어가 필요하게 될 때 그 무엇보다 큰 원동력이 되어 아이들을 다시 일본어의 세계로 이끌어 주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일이든 배움이란 결국 그런 호감과 관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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