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은우 Dec 13. 2017

“같이 놀자! (一緒に遊ぼう!)”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우리 아이들은 일본어라고는 정말 한마디도 할 줄 몰랐을뿐더러 외국어라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뭔가 여기서는 한국어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자 이건 일본말로 뭐라고 하는지 그리고 저건 또 일본말로 뭐라고 하는지 물어가며 슬슬 일본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알고 싶어 했던 일본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잇쇼니 아소보! (같이 놀자!)’라는 말이었다. 


   쌍둥이여서였을까? 우리 아이들은 아주 아기 때부터 사회성이 굉장히 좋은 아이들이었다. 낯을 전혀 가리지 않았고 누구를 만나든 밝게 웃으며 먼저 말을 붙였으며 특히나 또래 친구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일본에 처음 와서도 놀이터에만 나가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아이들 틈에 껴서 ‘잇쇼니 아소보!’, ‘잇쇼니 아소보!’를 외치며 신나게 뛰어다니곤 했으니 말이다. 유치원에 처음 들어가서도 아이들은 역시나 같은 반 친구들 틈에서 ‘잇쇼니 아소보!’를 외치며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모든 일이 다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둘째 아이가 친구 관계에서 조금씩 문제를 겪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쌍둥이였지만 이란성쌍둥이였기에 서로 얼굴도 성격도 완전히 달랐다. 뭐든 둥글둥글 원만한 성격에 딱히 승부욕이라곤 없었던 첫째 아이는 일본 친구들이 뭔가를 알려주고 가르쳐주면 말은 못 해도 방실방실 웃으며 그대로 잘 따라 했고 그런 첫째 아이를 일본 친구들은 마치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보살피듯 좋아했다. 


   하지만 매사에 의욕이 넘치고 승부욕에 불타던 둘째 아이는 친구들과 의견 다툼이 있을 때면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계속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고 결국 그게 안 되면 친구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 남편의 표현을 빌자면 유치원 친구들이 놀고 있는데 어디서 갑자기 말 한마디 못하는 아기가 나타나서 다 내 맘대로 할 거라고 떼를 쓰는 것과 같은 상황이랄까.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아이는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종종 문제를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종례를 마치고 유치원 정원에서 아이들을 놀리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뛰어다니며 잡기 놀이를 하고 있던 둘째 아이 쪽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아이는 손에 나무 열매 같은 것을 하나 보물처럼 꼭 쥐고 있었고 다른 두 남자아이가 그걸 빼앗으려 막 쫓아가던 중이었는데 대부분의 남자아이들 놀이가 다 그러하듯 놀이는 필요 이상으로 격렬해지고 있었다. 별거 아닌 나무 열매 하나일 뿐인데 둘째 아이는 그걸 뺏기지 않기 위해 이보다 더 필사적일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도망쳤고 나머지 두 아이도 그보다 더 필사적으로 둘째 아이를 쫓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쫓고 쫓기다가 결국 둘째 아이가 나머지 두 아이에게 잡히게 되었고 손에 보물처럼 꼭 쥐고 있던 나무 열매도 빼앗기고 말았다. 


   둘째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분에 못 이겨 한참을 씩씩대고 있었다. 분명 아이는 친구들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들을 단 한마디도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을 테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는 아이 대신 그 두 아이에게 ‘그 열매는 원래 은우가 가지고 있던 것 같은데 그냥 은우에게 돌려주면 안 될까?’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사실 나의 일본어 실력 역시 아이의 일본어 실력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기에 뭐라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아 이보다 더 서러울 수 없다는 듯이 엉엉 울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을 울던 아이는 갑자기 내게 한국말로 이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 한국 유치원으로 다시 갈 거야! 여기 싫어! 한국 유치원에서는 아무도 내 거를 이렇게 뺏어가지 않는단 말이야!” 


   아이는 정말 서럽게 울어댔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면서 나 역시도 아이와 함께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는데 아이는 알게 모르게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실 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만큼 나도 많이 지쳐 있었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일본 엄마들 사이에 덩그러니 끼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멀뚱 서 있어야만 하는 하루하루가 나에겐들 결코 쉬웠을 리 없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자 깜짝 놀란 일본 엄마들과 유치원 친구들이 아이에게 달려왔다. 다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아이를 달래주었고 아까 그 친구들도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다른 엄마들과 친구들이 다시 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아이와 나 단둘이 남게 되자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밀려왔다. 내가 너무 무모했을까?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한국 아이들이 좀 더 많은 유치원으로 옮겨야 하는 걸까?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내가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은우야, 우리 유치원 좀 쉴까? 며칠만 유치원 가지 말고 집에서 엄마랑 있을까?”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가끔 아이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말뿐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이가 정말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할까 봐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더란다. 그런데 이번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도 내게도 지친 마음을 달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이는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잘 보니 아이는 내 이야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는 듯했다. 아이는 두 손을 꼭 쥔 채 친구들이 있는 곳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다시 ‘은우야.’라고 부르려던 순간 양손을 꽉 쥐고 있던 아이가 결심이라도 한 듯 갑자기 친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더니 ‘잇쇼니 아소보!’라고 외치며 친구들의 뒤를 따라가 손을 꼭 잡는 것이 아닌가. 


   아, 그것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늘 아기 같고 늘 보살펴줘야만 할 것 같았던 나의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였다. 어른인 나마저도 힘들고 지쳐 이제는 다 그만두고 싶던 그 순간, 아이는 나보다 훨씬 더 씩씩한 모습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훌훌 털어내고 있었다.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씩씩하게 다시 뛰어나가던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뭔가 가슴 뿌듯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진한 아쉬움도 함께 밀려왔다. 늘 내 품 안에서만 있을 것 같았던 나의 작은 꼬마는 어느새 그렇게 나를 뒤로하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원래 소소한 일상들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있지만 사실 나 스스로가 먼 훗날 그런 작은 순간순간들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말 소중했던 순간 혹은 정말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은 따로 기록해두지 않는다. (이 이야기 역시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그 어디에도 적어둔 적이 없었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 어떤 사진도 그 어떤 기록도 남겨 놓지 않아서 오히려 그때 그 느낌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그런 순간 말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을 다 훌훌 털어내고 다시 친구들에게 씩씩하게 뛰어가던 그 날 아이의 그 뒷모습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을 추억할 때마다, 아니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마다 나는 아이의 그때 그 뒷모습을 언제고 다시 떠올리게 될 것 같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748369








이전 04화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가 없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