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은우 Apr 07. 2018

우리는 꼬꼬마 한류 전도사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보니 일본에서 이미 오래 살았거나 혹은 앞으로 오래 살 예정인 사람들은 일본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남들에게 자신이 외국인임을 굳이 드러내 놓고 어필하면서 살지는 않는 듯했다. 특히나 한국인이라면 겉으로 보기에는 일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기에 본인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만 않는다면 외국인이라는 티도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처음 도쿄에 도착했을 당시 남편을 제외한 나와 아이들은 모두 일본어라고는 정말 한마디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남들에게 우리가 외국인임을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었고,어차피 1년 반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온 것이었기에 어떻게든 일본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일본에 있는 동안 추억이나 잔뜩 만들어 가자는 마음이 훨씬 더 컸다. 그래서 우리는 와세다 유치원에 다니던 그 1년 동안 유치원의 일본 친구들과 또 그 엄마들에게 우리가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임을, 그중에서도 특히나 한국에서 온 한국 가족임을 무척이나 열심히 알리면서 살았다. 


   가끔 한국에 잠깐 들렀다 올 일이 생기면 한국과 관련된 작은 기념품들을 사다가 유치원 친구들과 그 엄마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고, 할로윈 파티 때는 일부러 한인 마트까지 찾아가서 약과와 한국 과자들을 사 와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하기도 했다. 또 선물을 포장할 때는 항상 그 위에 일본어와 함께 한글로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화젯거리가 되어 주었고, 그러한 대화들을 통해 나 역시 일본 엄마들과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가 매번 이렇게 하다 보니 우리 아이들 역시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듯 했다. 유치원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종례시간이었는데 항상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젠이라는 아이가 갑자기 내 옆으로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배꼬빠요(배고파요).”


   순간 아이의 그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빵하고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 외에도 어느 순간부터 일본 꼬꼬마들은 우리를 만나면 너도나도 서툰 한국말로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면 또 다 같이 깔깔대며 ‘또 만나자!’라고 소리를 치고는 했다. 친구들이 어떻게 한국말을 하는 건지 도대체 누가 가르쳐 준 건지 묻자 너무도 뿌듯한 표정으로 ‘당연히 우리가 가르쳐줬지요!’하고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던 타이네 엄마가 내게 타이가 요즘 연우와 은우에게 배워 온 종이접기에 푹 빠져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종이접기라니 도대체 뭘 가르쳐 준 걸까? 그날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이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딱지 접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요새 아침마다 친구들하고 딱지치기해요. 료도 하고 유이도 하고 케이도 하고 다들 좋아해요!”


   일본에서는 주로 동그란 딱지로 딱지치기를 해서인지 아이들이 색종이로 접는 딱지는 생소해 하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아침마다 항상 색종이로 접은 딱지를 유치원 가방에 한가득 담아가더니만 그게 우리 아이들에게서 시작된 일이었을 줄이야. 일본 유치원에 갑자기 불어 닥친 한국식 딱지치기 바람이라니 참으로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학기에 있었던 개인 면담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도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이제 유치원 생활에 너무나 잘 적응한 것 같다고 하시며 요즘은 연우와 은우가 아침마다 친구들을 모아놓고 한국 유치원과 일본 유치원에 대해 일종의 비교 품평회를 할 정도라고 한참을 웃으셨다. 두 아이가 ‘한국 유치원에서는 명찰을 달고 다니지 않아!’, ‘한국 유치원에서는 손수건을 가져오지 않아도 돼!’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면 친구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너무나 재미있다는 듯이 한참을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단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 유치원에는 바깥 놀이용 모자가 따로 없어. 바깥 놀이를 할 때도 모자를 쓰지 않아.’라고 이야기를 하자, 일본 아이들이 모두 눈이 똥그래져서 ‘유치원에 바깥 놀이용 모자가 없다고? 정말? 그럼 여름에는? 여름에도 안 쓴단 말이야?’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유치원에서도 무척 엉뚱하기로 유명했던 쇼타로가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불쌍하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정말 한참을 웃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돌아온 탐험가처럼 잔뜩 신이 나서 한국 유치원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있었을 우리 아이들과 그 두 아이를 둘러싸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일본 친구들, 그리고 한여름에 바깥 놀이용 모자도 없이 논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불쌍하다!’를 외쳤을 쇼타로의 표정을 상상하고 있자니 너무도 만화의 한 장면 같은 그 모습에 도무지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이후로도 와세다 유치원 달님반의 꼬꼬마 한류 전도사로서 우리 아이들의 활약은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한 엄마로부터 연우와 은우가 유치원에 온 이후로 아이가 부쩍 한국에 관심을 가지며 나중에 한국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또 유치원 생활이 끝나갈 때 즈음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던 또 다른 한 엄마로부터 잊지 못할 칭찬이 담긴 휴대폰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그 메시지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연우와 은우네 가족 때문에 한국이 점점 더 좋아지게 되었어요!’ 


   우리 가족이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을 통해 수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것처럼 유치원의 다른 친구들 역시 우리로 인해 또 다른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통해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시간들, 그 시간들로 인해 우리는 그렇게 또 한 뼘씩 성장할 수 있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748369







 

이전 06화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