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은우 Jul 11. 2018

안녕, 와세다 유치원


 3월에는 아이들의 유치원 수료를 앞두고 지난 1년을 정리하는 여러 가지 행사들이 있었다. 학부모 주최 송별회가 대표적이었고 그 이외에도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또 동생들과의 송별회를 따로 가졌으며 선생님과 학부모들 간의 마지막 환담회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갔던 날은 도시락을 다 먹은 뒤에 그 도시락통을 스스로 깨끗이 설거지하고 그 안에 그간 도시락을 싸준 엄마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넣어놓는 깜짝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그동안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준 엄마를 위해 스스로 설거지를 하도록 시키다니! 아, 이 얼마나 와세다 유치원스러운 마무리인가! 


   그 이외에도 아이들은 곧 헤어지게 될 유치원 친구들과 더욱더 열심히 뛰어놀았고, 나 역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여러 일본 엄마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드디어 유치원 수료식 날이 되었다. 와세다 유치원의 수료식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격식 있게 치러졌다. 아이들은 모두 셔츠와 블라우스에 카디건을 입어야 했고, 모든 학부모에게도 짙은 색상의 정장 차림이 요구되었다. 턱시도를 입고 나타나신 원장 선생님과 평소에는 늘 질끈 묶은 머리에 트레이닝복 차림이셨던 키타하라 선생님의 화려한 기모노와 화장, 그리고 헤어스타일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수료식에는 한 살 어린 딸기반 동생들은 물론, 이제는 거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리신 와세다 유치원의 초기 졸업생분들, 그리고 와세다 유치원을 관할하고 있는 신주쿠 구청의 교육 담당자분들까지 참석하셨고, 아이들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좀 더 의젓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 거의 2주 전부터 꾸준히 연습과 준비를 해왔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의 유치원 수료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수료식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원장 선생님의 축하 인사가 있었고, 수료식에 참석해 주신 여러 내빈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들이 유치원 수료증을 받는 순서가 되었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호명되면 의젓하게 원장 선생님 앞으로 나아가 수료증을 받고 인사를 한 뒤 다시 뒤돌아 가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에게 그 수료증을 전달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수료증을 전달하면서 ‘그동안 항상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동안 항상 도시락을 싸주셔서 감사했어요.’와 같은 식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고, 부모는 그런 아이를 꼭 안아주는 따스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역시나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부모님과 꼭 끌어안으며 감동적인 순간들을 연출해 냈지만, 남자아이들이 제법 형님 티를 내며 창피하다고 몸을 빼고 난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우리 아이들의 차례가 돌아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이는 수료증을 전달하자마자 혹시라도 엄마가 안아 주기라도 할까 봐 줄행랑을 치며 도망을 쳤고, 큰아이는 심지어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다 자빠지기까지 했다! 여기저기에서 훌쩍훌쩍하고 있던 수료식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고 결국 우리는 아이를 안아주지 못한 유일한 부모가 되고 말았다. 엄마, 아빠가 혹시라도 너무 슬퍼할까 봐 이런 깜짝쇼까지 준비해 주다니! 아, 역시 우리 아들들이란! 하하하. 


의젓하게 수료증을 받는 아들들

   수료식은 아이들이 그간 연습했던 곡을 합창하는 부분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수료식장 안으로 아이들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학부모들의 훌쩍이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들은 혼자서 걷고 있었죠.

6년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난 이 자그마한 생명이.

맑은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건강할 때에도 아플 때에도

변함없는 상냥한 눈길이 우리들을 감싸 주었죠.

어느새 봄바람이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네요.

고마워요, 마음을 담아서. 고마워요 그리고 안녕.  

   

어디까지라도 먼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슬픔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이 마음.

다투고 화해하고 울고 웃고 격려하며

모두와 함께 우리는 이렇게 자랄 수 있었죠.

어느새 봄바람이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네요.

고마워요, 마음을 담아서. 고마워요 그리고 안녕.

    

맑은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건강할 때에도 아플 때에도

변함없는 상냥한 눈길이 우리들을 감싸 주었죠.

어느새 봄바람이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네요.

고마워요, 마음을 담아서. 고마워요 그리고 안녕.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고마워요, 그리고 안녕.’이라는 후렴구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가 아니라 ‘고마워요, 그리고 안녕.’이라니. 하지만 아이들이 소학교에 들어가고 나자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소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매일매일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던 아이는 혼자서 등하교를 하게 되었고 (일본은 소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스스로 등하교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집에서 먼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심지어 1학년 때부터 혼자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등하교하기도 했다), 매일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던 아이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그렇게 쉴 새 없이 이어지던 학부모 모임도 거짓말처럼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은 학부모가 학교에 가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아이는 늘 모든 것을 엄마와 함께 나누었던 그 어린 시절과 이별을 고하고 그렇게 또 한 발짝 자신만의 세상으로 나아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와세다 유치원의 엄마들 중에서도 유치원 활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은 큰아이가 있는 엄마들이었던 것 같다. 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부모 모임에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도 그 엄마들은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여유롭게 그 일들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그 엄마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아이가 내 곁을 떠나 자신만의 세상으로 훨훨 날아갈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말이다. 그렇다, 와세다 유치원의 졸업은 곧 내 아이의 어린 시절과의 또 다른 안녕을 의미하기도 했다. 


   수료식이 끝나고 유치원 정원으로 나오자 한 살 어린 딸기반 동생들과 그 엄마들이 달님반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하며 멋들어진 꽃길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와 함께 그 꽃길을 통과하며 함께 했던 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뒤이어 친구들, 선생님들과도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언제 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까. 그리고 그때는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그 1년을 또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까.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왔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웠던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과 안녕을 고했다. 


   안녕, 와세다 유치원. 


   안녕, 언제나 그리울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여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748369







이전 08화 우리가 진짜 주인공! - 어린이 학예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