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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은우 Jul 26. 2018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와세다 유치원이 있나요?

에필로그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3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고 와세다 유치원을 졸업한 지는 3년 반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조금씩 잊힐 법도 한 기억들인데 책을 준비하면서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보고 또 그때 받았었던 유치원 안내문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 보면서 추억에 잠겨볼 수 있었던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적은 원고들을 읽으면서 남편은 늘 이런 말로 나를 놀려대곤 했었다. 


  “아니 애들 유치원 보낼 때는 그렇게 힘들다고 짜증 내고 투덜투덜하더니 글은 너무 멋있게만 써놓은 거 아니야!”


  그런데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기는 하다. 막상 애들을 와세다 유치원에 보내던 그 1년 동안은 그때 그 시절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고,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30분씩 걸어서 유치원에 가고, 틈만 나면 소집되는 학부모 모임에 참석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일본 엄마들 틈에 끼어 고군분투하면서 내가 이러려고 도쿄에 왔나 참 많이도 투덜대고 참 많이도 힘들어했었더란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아팠던 기억도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면 결국엔 다 좋은 경험이 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뭐 그런 것. 행복했던 시간만큼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도 함께 있었기에 내게는 더 의미 있고 소중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도쿄에서 지내면서 어떻게든 육아에서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보낸 유치원이었는데 바로 그 유치원에서 내 육아의 가장 아름답고 빛나던 1년을 보낼 수 있었으니 늘 느끼는 바이지만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요즘도 여전히 달님반 엄마들과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또 아이들 역시 동영상으로 서로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면서 말이다. 요즘 가라테를 배우고 있다는 유이는 가라테복을 입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을 보내주었고, 여름 방학 때 할아버지 댁에 갔었다는 타이는 동영상을 통해 그때 잡은 장수풍뎅이 두 마리를 신나게 자랑해 보였다. 장난꾸러기 노조무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았다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멋진 포즈를 취해 보였고, 이제는 호주로 돌아간 이쟈는 호주의 멋진 해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리고 마노의 엄마가 보내준 마노의 생일 파티 사진에서는 마노는 물론이고 어느새 또 훌쩍 커버린 미리야와 노조무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반가운 미소를 지어보기도 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십 년이 지나고 또 이십 년이 지나서 내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변해가고, 아이들도 이제는 다 커버려 모두 내 곁을 떠나가게 되었을 때 나 혼자 조용히 도쿄를 찾는 모습을, 그리고 그렇게 찾은 도쿄에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와세다 유치원을 찾아가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도 없는 와세다 유치원의 정문을 조심스레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리고는 텅 비어있는 유치원의 정원, 그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 조용히 추억에 잠겨 본다. 아마도 내가 바라보는 그 정원 안에는 친구들과 깔깔대며 신나게 뛰어노는 7살짜리 자그마한 내 아이들과 그 모습을 환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젊은 시절의 내가 있을 것이다. 아, 생각만으로도 뭔가 가슴이 울컥해지는 풍경이다. 


  내게 있어 와세다 유치원은 그런 곳이다. 내 아이들의 행복한 어린 시절이 있는 곳,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찬란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소중한 나의 젊은 시절이 있는 바로 그런 곳 말이다. 그 시절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 혼자 조용히 찾아가 그 기억들을 모두 다 떠올려 볼 수 있는 그런 추억의 장소를 가지고 있다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이란 말인가! 


  예전에 내가 자주 찾는 한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아직 어린아이들과 함께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 수많은 사람의 의견이 분분했던 적이 있었다. 어차피 아이는 크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 그런 여행이 굳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의견과 아이가 구체적으로 기억은 하지 못한다 해도 무의식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분명 아이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댓글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저희도 아이가 어려서부터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참 많이 다녔어요. 지금은 아이가 다 컸는데 사실 아이는 그때 그 여행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는 해요. 하지만 그래도 저와 남편이 기억하고 있죠. 아이와 함께했던 그 순간들을요. 나이가 들고 나니 남편과 그때 그 여행의 추억들로 밤새 이야기 나눌 때가 많답니다. 아이와의 여행은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사실 아이가 아니라 저희 부부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육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위주로 이야기하곤 한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혹은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좋을수록 아이의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거나 혹은 인격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사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그보다 부모에게 더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아직 아이들이 4학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 해 한 해 부쩍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아이들과 살 부비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와세다 유치원에서 1년을 보내며 아이들과 쌓을 수 있었던 그 수많은 추억들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장소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장소가 일본의 어느 한 유치원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아이와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와 매일 저녁 함께 동화책을 읽던 신혼집의 작은 거실일 수도 있고, 혹은 아이와 매일 아침 손을 잡고 등원하던 아파트의 산책길, 아니면 아이와 주말마다 함께 떠났던 신록이 무성한 집 근처의 어느 한 캠핑장일 수도 있으리라. 


  나에게 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와세다 유치원이 있듯이 여러분도 아이와 함께 여러분만의 와세다 유치원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아이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어 내게 이렇게 아름다웠던 1년을 선사해 준 2016년 와세다 유치원 달님반의 23명의 사랑스러운 꼬꼬마들, 자칫 힘든 기억만 남을 수 있었던 타국에서의 육아에 따뜻한 동료가 되어 주었던 달님반의 모든 엄마들, 그리고 언제나 소신을 가지고 따스하게 아이들을 이끌어 주셨던 사토 원장 선생님, 미나미 원감 선생님 그리고 키타하라 담임선생님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또 말 한마디 통하지 않던 그 낯선 땅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며 하루하루 멋지게 성장해 간 내 소중한 두 아이 연우와 은우, 그리고 일본어 한마디 하지 못하던 아내 옆에서 언제나 큰 도움을 주며 따스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남편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아직 미숙하던 내 원고가 훨씬 더 힘 있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신 이수미 선생님, 사연 많던 이 원고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손 내밀어 주신 최수진 대표님께도 감사함을 전한다. 


  책을 끝마치며 지금까지 부족한 제 이야기를 함께 해 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ありがとう、心を込めて。

고마워요, 마음을 담아서. 


ありがとう、そしてさようなら。

고마워요, 그리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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