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래오 Sep 05. 2021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화창한 날이었다. 축구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이곳에서 곧 시작할 경기의 엄청난 의미를.


"유럽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유에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전 세계인의 축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유럽축구연맹에 소속된 축구클럽으로 한정되어 있고, 매년 개최하는 대회였지만,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참가하고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보다 그 관심도가 훨씬 우위에 있었다. 


게다가 올해 결승전 장소는 축구의 성지라고 불리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웸블리 스타디움.

축구 종주국 영국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축구 경기장이었다. 


"그럼 전 세계 축구인들의 축제를 시작하겠습니다!"


8만 명이 넘는 관중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경기전 잠시 동안 침묵했다.

베테랑 주심은 긴장한 듯 옅은 한숨을 짧게 내뱉은 뒤 힘껏 휘슬을 불었다.


"와아!!!"


잠시 묶여있던 관중들의 고삐가 일순간에 풀려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광경은 마치 대지가 흔들릴 정도로 소리가 컸고, 웅장했다.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두 팀의 경기는 결승전답게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 잠시도 멈춰 있을 줄 몰랐고, 발이며 손이며 머리며 온몸 모든 곳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공에 갖다 대었다.


위이이잉


치열하고 속도감 넘치는 경기에 집중한 선수들과 관중, 그리고 스태프들과 해설진들까지 언젠가부터 경기장 위에 떠있는 비행물체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 저거 유에프오 아니야?"


전반전이 끝나고서야 웸블리 스타디움 위에 떠있는 비행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발견 이후 8만 명 모두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비행물체를 확인했지만 아직 45분의 경기가 남아있었다.


그 비행물체의 정체는 전혀 알 수 없었고, 혹여나 8만 명 관중을 향한 대규모 테러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스태프들 역시 정부나 인근 군부대에 문의를 해봤지만 아무런 훈련계획도 테러징후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후반전을 그대로 진행했다. 이대로 경기를 중단했다간 경제적인 손실은 물론이고, 유럽 축구계의 명성에 금이 갈게 뻔했기 때문.


그때였다.


후반전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조용히 떠있기만 하던 비행물체가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놀란 선수들은 재빨리 그라운드 밖으로 대피했고, 겁먹은 관중들 역시 몇몇은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들리는가 인간들아."


가까이서 보니 더 거대한 크기의 비행물체에서유창한 영어가 새어 나왔다. 사용하는 단어는 다소 어색했지만 소통을 하는데 전혀 문제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즐기는 걸 보니 동그란 걸 발로 차는 놀이가 인기가 많은 가보구나."


사람들은 두려우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인 게 맞으니깐.


"사실 우린 지구를 정복하러 이곳에 왔다. "


정복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더욱 동요했다.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은 서로 깔려 죽기도 했다.


"너희는 분명 우리를 보고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계속 이 공돌이를 했다. 그 말은 즉 죽어도 좋을 만큼 이게 재밌다는 거겠지? 그럼 이곳에서 공놀이를 하던 22명이 지구에서 이 놀이를 가장 잘하는 인간들인가?"


비행물체에서 흘러나오는 물음에 관중석에서 내려온 FIFA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닙니다. 유럽에서 가장 잘하는 팀들은 맞지만 남미나 아시아 등에 더 뛰어난 선수들이 또 있습니다."


FIFA 회장의 말에 유럽축구연맹인 회장은 혼잣말로 투덜댔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고.


"그래? 흥미롭군. 그럼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오늘부터 딱 1년 후 우리 11명과 지구대표 11명이 이 공놀이를 하자. 만약 너희가 이기면 지구를 살려주겠다. 하지만 만약 진다면 계획대로 지구를 우리 맘대로 하겠다."


상상만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축구팬들 사이에선 외계인들과 축구경기를 하면 지구인 대표로는 누가 뽑힐까라고 종종 토론이 일어나곤 했다.


"전 세계 축구선수들이 유럽에서 뛰는 게 꿈인데 그냥 우리 유럽 사람들끼리 해결하지. 외계인쯤이야 호날두 선에서 정리 끝 아닙니까?"

"그래도 메시, 네이마르 정도는 포함시켜야지요. "

"아시아는 출전할만한 선수가 정녕 없는가?"

"이게 무슨 올림픽입니까? 대륙별로 나눠서 선수를 뽑게?"


전 세계 축구연맹들은 모여서 지구대표를 뽑기 위한 회의에 돌입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최고의 선수들을 골라냈고, 최고의 팀워크를 끌어내기 위해 감독도 선임하고 남은 기간 동안 합숙에 들어갔다.


1년 후


"오늘 지구의 운명이 걸린 축구경기가 곧 시작되겠습니다. 외계인들의 전력은 밝혀진 게 전혀 없지만 우리는 우리 인간대표들이 반드시 이겨주리라 믿습니다!"


이 경기는 월드컵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보다 훨씬 큰 관심을 받았다. 당연히 생사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전 세계인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경기 종료


"90분간의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인간은 인간이었을까요?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 인간들은 과연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하루입니다. 지구의 마지막 날 여러분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구의 운명이 달린만큼 선수들은 죽기 직전까지 뛰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로봇과 경기를 하는 듯 그들은 지치지도 않았고, 멘털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처참하게 패배했지만 최선을 다한 인간들은 지구의 마지막을 겸허히 받았들었다.


"약속대로 우린 10분 뒤 지구를 없애겠다."

"10분? 너무 빠른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촉박한 시간에 빠르게 핸드폰을 들어 가족, 애인 등에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남겼다. 슬퍼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다 같이 죽을 테니.


약 5분 후


트위터나 각종 , SNS에도 엄청난 글의 수가 등록되어 있었다.




"날두 저 새끼는 퇴물 다 됐는데 왜 뽑혔는지 이해가 안 되네."

"메시는 외계인이랑 경기를 해도 어슬렁거리네."

"와아 아까 패스미스 봤냐? 저런 것들이 지구대표라고..."

"밥 먹고 축구만 한 놈들 수준이 이 정도면 말 다했지 때려치우자 이런 거 볼 바엔 죽는 게 낫다."

매거진의 이전글 확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