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응?
엄마가 여사님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옆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담당의사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여사님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엄마가 여사님을 먼저 보고, 의사 선생님 얘기로 화제를 전환시킨 것 같았다. (엄마 센스 최고!)
여사님은 이 상황을 바로 눈치챘을 거다.
자신이 유일하게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에서, 담당의사가 환자와 보호자를 통화하게 해 줬다?
분명히 자신에 대한 얘기를 했다는 것을 알았겠지....
지난주, 영상통화 중에 엄마의 왼쪽 눈꺼풀에 다래끼가 난 것을 보았다..
엄마 근처에 계실 여사님을 불러서, 빨리 간호사에게 약을 받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여사님은 다래끼가 아니라며... 오히려 엄마의 눈꺼풀을 거즈로 문질렀다.
엄마가 ‘아파~아파~’ 하는데도,
곧 없어질 것 같다며 자신이 의료진인 것 마냥...짜증 투의 반박을 하시는데....
화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때 마침 엄마의 혈압을 재기 위해 들어온 간호사가 있어서, 다래끼가 아니냐고 물어보니.
간호사는 바로 약을 가지고 와서 엄마에게 발라주었다. 의사에게 말해서 소염제 처방도 받아주겠다고.
음...
엄마와 여사님의 대화를 들으니, 속에서 불이 더 올라왔다.
‘말도 안 돼.... 여사님이 우리 엄마를 혼을 냈다 이거지... 아프다는데 그 말을 무시했다 이 말이지...’
얼마 전, 휠체어 사건(엄마가 다리가 길어서 돌보기 힘들다고 투정 부린 사건)에서 이상하다 느꼈는데,
여사님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게 거칠어진 느낌을 또 받은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고생과 정을 생각해서,
다행히 엄마의 다래끼가 가라앉고 있으니.... 꾹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며칠 뒤, 난 또다시 여사님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확인했다.
담당의사에게 허락을 받고, 삼키는 연습을 시도해 보고자 요플레를 여사님께 사다 드렸다.
사실 6개월 전에 연하 검사에 통과되어 입으로 식사를 시도해보긴 했지만, 구토로 인해 중단되었었다.
이제 다음 달,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연하 검사를 또 해볼텐데, 통과되어 식사를 혼자 하실 수 있도록 하려면 지금부터 연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요플레를 전해 준 지 2시간 뒤, 불만을 토로하는 전화가 왔다.
여사님의 목소리가 워낙 큰 데다가,
같은 병실의 할머니가 엄마처럼 시도하다가 폐로 넘어가서 바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시는데.... 음... 이건 아니다! .
나한테 이런 저런 짜증을 낼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를 앞에다 두고 죽었다, 죽는다, 가망없다, 힘들다는 이런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내뱉으시니까 상당히 귀에 거슬렸다. 엄마가 걱정되어 저녁에 전화를 다시 하니, 여사님은 병실 모두가 주무시니까 내일 통화하자며 끊으셨다. 힝... 마음을 가라앉히자!!!
다음 날, 아침에 엄마의 표정은 정말 안 좋았다.
말씀을 못하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계시는데, 눈빛으로 나에게 뭔가를 얘기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휠체어 사건 때 간병비를 안 올려줬다고 이러는 건가?
엄마가 코로나에 걸려 나흘 쉬신 것 외엔, 일 년 반이나 계속 일을 하셨으니 지쳐서 이러는 건가?
엄마의 여사님에 대한 마음을 듣고 싶지만,
여사님이 계속 붙어 계시니 묻고 답할 방법이 없었다.
아 맞다!
재활 치료실엔 의사 선생님만 들어갈 수 있지?
유일하게 엄마가 여사님과 떨어져 있는 그 공간과 시간...
담당의사에게 양해를 구하며, 지금의 상황에 대해 상담을 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와 나는 의사 선생님을 매개로 힘들게 연결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초 정도 대화를 했을까?
여사님은 촉이 엄청 좋으시다.
쏜살같이 재활실로 내려와서 무슨 일이냐며 우리의 대화를 바로 끊은 것이다.
5분 뒤에, 담당 의사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깜짝이야....
눈치 백 단 아니 눈치 천단인 우리 여사님!
재활실에서의 상황을 간파하셨는지... 자신의 일자리가 지금 이 통화에 달려 있음을 안 것이다.
갑자기 활짝 웃는 얼굴로, 영상통화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응?
갑자기 웬 친절 모드...??
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여사님 입장에서 엄마를 돌보는 것이,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절대 힘들지 않았을 거란 말....
보수도 괜찮고,
보호자도 나같이 좋은(?) 딸 하나만 상대하면 되니,
굳이 그만 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다른 말을 할까 봐 그랬는지, 갑자기 의사 선생님과 여사님 칭찬을 쉬지 않고 이어가셨다.
엄마의 눈빛을 보고, 엄마의 뜻을 알았다!
죽는 날까지 영혼구원. 전도를 하시겠다는 포부였다.
자신이 아플지언정, 참고 희생하겠다는 것.
음.... 한숨이 나온다.
코로나 시대에 중환자를 둔 가족은
돈은 돈대로. 맘고생은 끝없이...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뀐 이 느낌....
그러나 그렇게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돈으로 얽힌 관계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엄마를 정성껏 돌보셨던 여사님의 정성을 알기 때문에...
그게 '정'이든 '정'이 아니든.
그냥 찝찝한 해프닝으로 이번 일은 덮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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